은호원이 성장하면 어떤 여성이 될까?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혜영이 된다면 어떨까? 변혜영은 부모에게 남자친구와 동거한 사실을 들키고 난 뒤, 결혼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인지 설명하며 변화된 가치관을 대변한다. 부당한 상황에서는 ‘역지사지(역으로 지랄을 해줘야 사람들이 지 일인 줄 안다)’ 정신을 몸소 실천한다. 이런 여성들을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은호원과 변혜영의 미래는 ‘누구’일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우리는 ‘유리천장을 깬’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과 문서 쪼가리들이었다”라며 부당한 남성 사회와 끊임없이 싸워온 피우진 보훈처장,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의 이름 앞에 모두 ‘여성 최초’와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제야 그 존재를 알았다는 듯 호들갑스럽게 등장한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역설적으로 여전히 현실에 존재하며 견고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유리천장이 깨졌다”고 하지만 여성들 대부분은 ‘높은 유리천장’에 이르기도 전에 바로 머리 위 ‘낮은 강철 천장’에 존재를 욱여넣으며 버틴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출산 전날까지 이를 악물고 야근하다가 애 낳고 2주 만에 출근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승진에서 소외되는 만년 과장 조석경처럼 말이다. ‘워킹맘’에 ‘이혼녀’라는 꼬리표는 조 과장의 경력과 능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이상해〉의 이미도 과장 역시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이지만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한다.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유리천장은 저항 없이 깨지지 않는다 과연 ‘일부’ 여성들이 깬 유리천장이 다른 여성들에게,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여성들의 성공 서사에 주목하여 안도하기보다 학력과 성별 등을 이유로 ‘강철 천장’에 갇혀 있는 여성들의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은호원과 변혜영처럼 현실을 제대로 자각하고 응시하며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Go Wild, Speak Loud, Think Hard)’ 존재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한다. 유리천장은 무저항과 무중력 상태에서 저절로 깨지지 않는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여성들이 이제야 발굴되는 남루한 현실, 여전히 ‘유리천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구조의 문제를 외면하는 빈곤한 사회의 민낯을 자각할 때다. 이제 겨우 희미한 금 한 줄이 그어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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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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