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선호도는 50%가 넘는다. 사진은 5월22일 ‘EU 프로젝트 데이’에 참석한 모습.

5월14일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의회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기민당)이 33% 득표율로 31.2%를 얻은 사회민주당(사민당)에 승리를 거두었다. 2012년 선거에서 39.1%를 득표한 사민당이 8%포인트에 가까운 표를 잃은 반면 기민당은 6.7%포인트 표를 더 얻었다. 사민당은 올해 있었던 자를란트·슐레스비히홀슈타인·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세 곳의 의회 선거에서 모두 기민당에 완패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독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오는 9월 연방의회 선거의 전초전으로 주목받았다. 광업과 철강업이 발달한, 전통적 공업지역으로 ‘라인 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전후 독일 경제 부흥의 중심지였다. 오래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었고, 한국의 파독 광부들도 주로 이곳에 정착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대다수 탄광이 문을 닫고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퇴락의 길을 걸었다. 실업과 도시 슬럼화 등 문제가 불거졌다. 산업 노동자들이 인구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1960년대 중반부터 사민당이 높은 지지를 받았다. ‘사회적 정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슐츠와 사민당에게는 승리에 대한 기대가 컸던 지역이다. 사민당으로서는 자신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패한 것이다. 이번 결과로 메르켈과 슐츠의 명암이 갈렸다. 메르켈의 기민·기사당 연합이 연방의회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그만큼 사민당과 슐츠가 승리할 가능성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증폭되고 있다. 5월15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유럽의 대다수 언론들은 이번 선거로 메르켈의 재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9월 연방의회 선거 관련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3월 중순 1%포인트 차이까지 근접했던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의 지지율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주간지 〈슈테른〉과 RTL 방송이 여론조사 기관 포르자에 의뢰해 5월8~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민·기사당 연합이 전주보다 2%포인트 올라 38%, 사민당이 전주보다 3%포인트 하락해 2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또 같은 기관에서 동시에 진행한 차기 총리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도 메르켈 총리가 50%의 지지를 얻었고 슐츠는 24%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메르켈 총리가 기사회생한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난민 문제와 테러 위협 등 메르켈 총리 지지율은 하락세였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은 난민 수용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고 안보를 강화하는 데 중도좌파 정부(사민당)보다는 메르켈 정부에 더 많은 신뢰를 보냈다. 메르켈의 지지율 회복은 우호적인 언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트럼프나 유럽의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해 독일 언론에 보도되는 메르켈은 매우 성공적이고 긍정적이다.

사민당, 구체적 공약으로 공략 나섰지만…

우호적인 언론 환경뿐 아니라 메르켈 총리의 선거 전략도 지지율 회복에 한몫했다. 독일 유력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5월15일자 보도에 따르면, 2013년 선거운동 당시 메르켈은 전략적으로 공약을 강조하지 않았다. 대신 메르켈의 슬로건은 이랬다. “여러분은 저를 알고 있습니다.” 이 간명한 슬로건이 유권자들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이미 메르켈 정부의 정책들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얻을 효과들도 예측하고 있었다. 메르켈과 기민·기사당 연합은 이번 선거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사민당은 매우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해야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분석했다. 유권자들은 사민당이 집권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다른 언론들도 슐츠의 선거운동에 구체적인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REUTERS 5월14일 선거 개표 직후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슐츠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의회 선거 패배 이후 ‘사회적 정의’라는 슬로건 외에 유권자들에게 공약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5월15일 사민당은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선거 공약집 초안을 발표했다. 공약집 초안을 살펴보면, 교육에 대한 지원 강화가 먼저 눈에 띈다. 탁아시설부터 대학과 직업교육까지 전 교육과정에 정부가 책임지며 개인이 쓰는 비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업과 재취업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교육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메르켈 정부와 보수당의 강점으로 꼽히는 안보 관련 공약도 상세하다. 경찰 인력 1만5000명을 늘리고 테러리스트와 범죄자 유입을 막기 위해 유럽연합 국경에 대한 감시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세금 관련 공약도 제시하며 메르켈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어떤 세금을 누구에게 걷을 것인가는 슐츠와 사민당이 주장하는 사회적 지원 강화의 폭과 방향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다. 예를 들면 거액의 유산 상속에 대해 세금을 더 걷는 상속세 강화를 약속했다. 소득세에 대해서도 부자 증세를 공약했다. 한마디로 세금에 대한 이번 공약의 큰 틀은 서민과 중산층의 세금 부담은 줄여주고 고소득층과 거대 기업의 세금 부담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사민당은 구체적인 공약을 내세워 주 의회 선거의 잇단 패배를 만회하려고 한다. 세금 관련 공약처럼 메르켈 정부와의 차이점을 부각해 집권 이후 변화를 강조하는 게 전략이다. 프랑스에서 불었던 마크롱 바람도 이용하려 한다. 바로 유럽연합의 공동재정 운영을 통해 투자를 강화하는 정책이다. 마크롱 프랑스 신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유럽연합의 공동재정 운영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직후 슐츠는 유럽연합의 공동재정 필요성을 강조하며 마크롱에게 공감을 표시했다. 슐츠는 마크롱의 친유럽 노선을 모델로 삼아 긴축재정을 고집하는 메르켈 총리를 압박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차별화 전략이 성공을 거둘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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