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영국 맨체스터 아레나 참사 현장에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곰인형과 꽃다발이 놓여 있다.

맨체스터는 유명 프로 축구 구단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영국 제2의 도시다. 이곳에서 5월22일 밤 10시30분쯤(현지 시각)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영화 〈미녀와 야수〉 주제곡을 부른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가 끝난 뒤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갈 무렵 매표소 부근에서 폭탄이 터졌다. 테러가 발생한 맨체스터 아레나는 1995년 개장한 유럽 최대 실내 공연장 겸 체육관이다. 최대 2만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데 이날 만석이었다. 8세 초등학생 소녀를 포함한 22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2005년 7월7일 5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 ‘77 테러’로 불리는 런던 지하철 참사 이후 최대 비극이다.

ⓒAP Photo5월22일(현지 시각) 자살 폭탄 테러가 벌어진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 부상자들이 쓰러져 있다.

5월23일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조직인 이슬람국가(IS)는 성명을 내고 “칼리프 국가 병사가 군중 사이에 폭탄을 설치했다”라며 자신들이 이번 테러의 배후임을 밝혔다. 이번 테러는 여성 가수와 팬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녀들을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IS는 짧은 의상과 강렬한 음악을 죄악시한다. 게다가 IS는 공포를 극대화하려고 인파가 밀집한 곳을 노리는 경향이 있다. 범인은 리비아 출신 이민 가정의 살만 아베디(22)로 밝혀졌다. 그는 현장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맨체스터에서 태어나 영국식 교육을 받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리비아 출신인 부모는 무아마르 카다피 시절 독재정권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아베디는 네 형제 가운데 둘째다. 한 살 터울의 형 이스마일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자 리비아로 돌아갔다(아버지 라마단과 남동생 하심은 리비아 현지 기관에 체포되었다). 아베디는 테러 현장인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겨우 1.6㎞ 떨어진 샐퍼드 대학에 2014년 입학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사실상 중퇴하고 형 이스마일과 함께 올해 1월까지 케이크 공장에서 일했다.

ⓒTHE SUN 갈무리
사건 후 맨체스터 디즈버리 모스크(이슬람 사원)는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아베디는 사건 직전까지 이곳에 다녔다. 영국 태생인 아베디가 자살 폭탄 테러범이 된 데에 이 사원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추정이 난무했다. 이곳은 과거 지하디스트를 위해 자금을 모집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필자가 디즈버리 모스크에 수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한 끝에 어렵게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무스타파 씨(38)는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영국의 기자란 기자는 다 찾아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아베디에 대해 묻자 그는 “그저 조용한 청년이었다. 테러범이 아베디라고 해서 많이 놀랐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다면 최근 아베디가 수염을 기르고 이슬람 전통의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모스크에서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아베디가 세뇌당했을 가능성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전혀 그런 일이 없다. 이맘(이슬람 성직자)께서도 IS나 알카에다의 테러리즘을 비판하는 설교를 여러 번 했다”라고 말했다. 아베디의 아버지와 친하다는 사이드 씨(57)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리비아 출신 이민자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베디의 아버지는 리비아로 돌아가며 들떠 있었다. 카다피 치하에서 도망 나왔던 우리들은 카다피가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베디와 형인 이스마일은 리비아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아베디가 갑자기 급진적으로 변한 계기를 묻자 이들은 “아마 리비아에 몇 차례 다녀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리비아는 IS와 알카에다의 영향권에 있다. 시르테 인근은 이미 IS가 점령했다. 만약 아베디가 IS와 관련된다면 시르테에서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거기서 폭탄 제조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유럽에는 ‘트럭 테러’ 혹은 ‘돌진 테러’라 불리는 신종 테러가 성행했다. 지난해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지난 3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인근 웨스트민스터 다리에서 차량 테러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 맨체스터 테러범 아베디는 폭탄이라는 고전적 테러 방식을 택했다. 그가 사용한 이른바 ‘네일(nail·못) 폭탄’은 조악하지만 치명적이다. 가방 하나에 들어갈 만큼 부피가 작은데, 폭탄 안에 못과 압정, 쇠구슬, 볼트, 너트 따위가 채워져 있다. 인명 살상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이 폭탄이 터지면 사방으로 못과 볼트, 너트가 날아간다. 이 파편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맨체스터 아레나 인근 병원의 응급실 의료진은 사상자 몸에서 수도 없이 많은 쇳조각과 못을 빼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2년 서유럽 테러 희생자만 300명 넘어

ⓒEPA맨체스터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5월2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서 총으로 무장한 경찰이 경계를 서고 있다.

트럭 테러가 ‘외로운 늑대’라 불리는 자생 테러리스트가 택한 신종 방식이라면, 네일 폭탄은 전문 테러리스트가 쓰는 방식이다. 아베디는 전문 테러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디는 영국이 아니라 리비아에서 IS나 알카에다와 접촉해 세뇌당하고 폭탄 제조법을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2년 사이 서유럽에서는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 총 3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 맨체스터 테러는 2015년 이후 서유럽에서 터진 13번째 테러다. 대부분 IS나 IS 추종자들이 테러를 일으켰다. IS가 기독교의 상징인 로마를 타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서유럽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시리아나 이라크 혹은 리비아에서 활동하던 서유럽 출신 IS 대원들이 대거 귀국한 뒤 이른바 ‘귀국 테러’를 일삼아 테러가 빈번하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연합군이 이라크와 시리아 폭격을 강화하자 두 나라에서 탈출하는 IS 전사가 늘었다. 유엔 대테러 사무국은 “외국인 전사 40∼50%가 IS 점령 지역을 떠났다”라고 밝혔다. 이들 중 유럽 출신은 위조 여권으로 손쉽게 귀국한다.

맨체스터 테러 또한 불특정 다수, 즉 소프트 타깃을 노렸다. 이번처럼 공연 관람객을 노리거나, 파리 샹젤리제나 런던 웨스트민스터 다리처럼 유명 관광지를 찾는 이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테러의 공포를 확산하려는, IS나 알카에다 연계 조직이 펼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런 심리전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테러 조직의 존재감을 부각한다. 5월27일부터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이 시작된다. IS는 매년 “라마단 기간에 순교하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라며 테러를 부추겼다. 영국 정부의 신경이 더욱 곤두서 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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