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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선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69)이 중동 순방 중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 쇼를 하고 있다”라며 냉소를 보냈다. 지난 5월19일 선거 이후 첫 내외신 기자회견(5월22일) 자리에서다. 트럼프는 5월20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잇달아 방문하면서 이란을 맹렬히 질타했다. 이란(시아파)과 숙적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이스라엘과 함께 안보협력 체제에 포함시키기 위한 트럼프의 행보로 해석된다. 맹숭맹숭한 관계인 두 나라를 엮으려면,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57.1%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 하산 로하니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미국이 경계하는 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수행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하산 로하니는 1979년 이란 혁명의 원로 중 한 사람이다. 1960년대 중반 학생 시절부터 아야툴라 호메이니를 추종하며 당시 국왕인 팔레비 타도 투쟁에 나섰다.

혁명 이후에는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군사 및 외교 부문에서 재능을 나타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당시에는 ‘전쟁 부사령관’ 등을 맡아 이란군을 지휘했다. 1986년 레이건 행정부가 ‘적성국가’ 이란에 무기를 판매한 대금으로 니카라과의 반정부 군사조직을 지원하다 들통난 이란 콘트라 스캔들 당시에는, 미국 측과의 비밀 교섭을 통해 무기를 사들인 사람이 바로 로하니다. 2003년 10월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이 드러나며 시작된 서방국가들과의 협상도 그가 총지휘했다. 협상 당시 로하니는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는 등 유연한 노선을 견지했다. 그러나 측근들에게는 “협상과 양보를 통해 핵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오히려 벌었다”라고 자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로하니는 음모에 능한 과격파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란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개방 지향적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핵 협상에서도 강경파들을 다독이며 서방국가들과 대화·신뢰 분위기 조성을 강조했다. 2013년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파의 지지로 당선된 이후에는 국제관계 정상화를 위해 ‘핵 투명성’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1월에는 서방국가들과 ‘핵 개발을 중단하고 사찰을 받는 대신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의 합의를 체결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압박으로 전면적 시행에 이르진 못했으나, 인터넷 검열을 반대하고 여성 권리를 옹호한다. “신은 남성과 여성을 인간성·지성·신앙심 등에서 다르지 않게 창조했다”라고 연설하며 마수메 에브테카르 부통령 등 여성들을 정부 요직에 임명했다. 보수파인 이란혁명방위군(이슬람 체제의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군대) 사령관이 “이란 체제가 서방의 독트린에 오염되고 있다. 혁명방위군은 이런 사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위협할 정도였다.

5월19일 치러진 이란 대통령 선거는, 개혁파 로하니와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의 대결이었다. 재선한 로하니 대통령이 국내외 정적과 투쟁하며 대선에서 공약한 정치·사회 개혁과 개방 노선을 어떻게 실현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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