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사람들은 한 마리 말 못하는 동물에게서 사람한테는 찾아볼 수 없는 소리 없는 기쁨을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자면서 우는 짝꿍을 물끄러미 보다가, 깨웠다.


“왜 울어?”

“꿈에 이쁜이하고 깡깡이가 나왔어.”

이쁜이와 깡깡이는 짝꿍이 오랫동안 키웠던 고양이다. 어느 날 둘은 하늘나라로 갔다.

이제 여기에는 없고 거기에는 있는 고양이들이 꿈에 납시어 자다가 울어버리는 인간을 나는 옆에 두고 있다. 나는 아끼어 키우던 동물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착한 일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그런 눈물이 없었다.

종종 짝꿍의 지극한 고양이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지금보다 사람도, 고양이도 더 살기 좋았던 시절에 과연 그는 어떤 어린아이였을까. 고양이를 사랑하려는 아이였을까. 고양이의 사랑을 받으려는 아이였을까. 자주는 아니나 어쩌다 한 번씩 듣는 짝꿍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그가 사람에게서 먼저 발견한 것이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기쁨이 짝꿍을 먼저 발견했더라면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침묵에서 먼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짝꿍은 한 마리 말 못하는 고양이에게서 사람한테는 찾아볼 수 없던 소리 없는 기쁨을 발견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침묵이 전해주는 기쁨을 너무 이른 나이에 찾은 사람은 슬픈 인간으로 오래 늙는다. 침묵이 전해주는 슬픔을 너무 이른 나이에 찾은 사람이 비극적이게도 영원히 슬픔의 젊음을 살듯이.

한때는 나도 동물에 빠졌었다. 한순간이었지만, 한 마리 작은 개가 내 생의 낙인 적도 있었고 오로지 한 마리 작은 개만이 나의 마음을 위로한다고 믿은 때도 있었다. 강아지에게만 짝사랑하는 아이의 이름을 말해주었고 그런 이유로 그 작은 개가 바로 그 아이가 되어 곁에 두고, 안고 잤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작은 개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을 슬퍼하지 않았다.

어느 날 홀연히, 작은 개는 인간의 곁을 떠났다. 찾아도,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의 부모는 그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 떠난 거라고 믿었고, 죽을 때가 다 되어 집 나간 개는 찾지 않는 것이라는 부모의 진리에 나는 수긍했다. 그러나 그 개의 편에서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 실종은. 늙어 죽을 때가 되어서 가족을 떠나 자신들이 점찍어둔 죽음의 장소로 떠나가는 두 남자 부부에 관하여 시를 쓴 적이 있다. 그들을 찾기 위해 부부인 두 여자가 겨울밤 산을 오르는 풍경을 적은 시였다. 인간의 선의에 대한 것이었다. 동물의 선의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고양이들을 아파트 지하실에 가둬 굶어죽게 하는 악의는 오로지 인간만의 것일 테다.

‘마리’라는 의존명사가 주는 다정함

동물을 아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그만큼 사람도 아낄까. 짝꿍은 아무래도 사람을 아끼는 사람. 그는 사람을 쉬이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기본적으로 가까이하지 않고 사람과 근본적으로 가까워지려 한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관여하게 된 동물의 삶이 자신의 삶 이상으로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 어린 시절 잠시 거두었던 노란 병아리와 한철 마음을 주었던 작은 개, 아무에게도 도움받기 싫을 때 가만히 다가와 자신의 앞발을 손등에 올려놓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겨드랑이 속으로 파고드는 한 마리 도마뱀 때문에 인간세계의 냉정을 견디어본 사람은 알리라. ‘마리’라는 의존명사가 있어서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더 다정해졌는지를.

가끔 짝꿍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짝꿍 쪽에서는 자신이 나를 키운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그가 나에게로 와서 연약한 반려동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참 좋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해 내가 그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은 짝꿍을 품에 안는다. 폭 안겨 있는 사람의 뒷모습은 믿을 만한 것이다. 안은 사람과 안긴 사람은 그 자체로 믿음의 덩어리이다. 곁에 나를 위한 동물을 두는 것은, 나를 위하여 동물이 내 곁에 있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한 약속일까.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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