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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60곡, 4시간.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는 장르를 총망라하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듣고 나면 묘하게 뿌듯하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6월 02일 금요일 제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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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의 책장을 쭉 둘러본다. “다 읽지도 못할 걸 대체 왜, 심지어 지금도”라는 후회의 물결이 먼저 나를 압박한다. 그중에서 유독 두꺼운 책들을 골라서 펼쳐본다. “이건 진짜 반의반도 안 읽었네. 내가 미쳤나”라는 자괴감에 얼굴이 빨개진다. 그런데 잠깐 조금 더 살펴보니 정말 다 ‘읽어낸’ 것들이 눈에 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등이다.

아,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있었지. 이 정도는 내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완독하지 않았을까? 다시 밀려오는 자괴감에 고개를 푹 숙이려다 내가 번역한 <모던 팝 스토리>가 900쪽인 걸 깨닫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글쎄, 황사 낀 뿌연 하늘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60곡. 그리고 4시간이다. 그렇다. 지난 5월1일 음원으로 등재된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The Fleeting Moment)>는 일단 분량만으로도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 앨범이다. 3분, 아무리 길어도 4분 이내의 곡이어야만 한 자리 겨우 얻을 수 있는 세상에 이 정도면 거의 반역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기실 이 음반은 ‘앨범 단위’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총 6장의 CD 혹은 LP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작동하는 까닭이다.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에는 총 60곡이 들어 있다.

이 음반들에서 지미 스트레인은 당연하다는 듯 장르를 총망라한다. 팝, 포크, 피아노 연주, 심지어 헤비메탈까지, 과연 <찰나>는 어떤 광기가 서려 있지 않았다면 결코 완성하지 못했을 앨범이다. 지미 스트레인 자신이 엄청난 음악광이기도 하다. 피아노 2중주로만 이뤄진 파트 1에서부터 포크와 소프트 록에 대한 취향을 드러낸 파트 2, 그리고 헬조선의 풍경을 담아낸 파트 3까지만 들어봐도 그가 얼마나 잡식성 음악 애호가인지 알 수 있다.


도무지 뭘 들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커밍홈(Coming Home)’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접한 뒤 ‘메이비(Maybe)’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집어삼키고, ‘은과 네온과 유황의 시’가 힘차게 표출하는 희망의 정서를 만끽하기 바란다. 그래, 맞다. 이 앨범은 단일한 방향으로만 저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서정이 있는가 하면, 절망적인 현실이 있고,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한 약속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장르라는 형식을 넘어선, 진정한 의미에서의 집대성이다.

장르를 넘어선, 진정한 의미의 집대성


이 글의 첫 단락에서 ‘읽다’가 아닌 ‘읽어냈다’라고 썼다는 점을 상기해주기 바란다. 그러니까, 솔직히 나도 힘들었다. 그런데 듣고 나니 묘하게 뿌듯했다. <만들어진 신>을 처음 다 읽고 난 뒤에 다가온 상쾌함이 나를 슬쩍 붕 뜨게 했던 때의 기억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내가 뭔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던, 그런 기억. ‘읽어낸다’는 태도가 없었다면 아마도 느끼지 못했을, 그런 기억.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신의 글에서 최고의 문학을 “읽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없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비단 문학만은 아닐 것이다. ‘보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영화’, ‘플레이하기 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게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2017년에 한정한다면, 음악 쪽에서는 바로 이 작품,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가 꼽혀야 마땅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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