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언제부터 감칠맛 조미료 MSG를 먹었을까? 쉽게 말해 언제부터 미원을 먹었을까? 100년도 더 전부터다. 1908년 일본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세계 최초로 MSG 합성에 성공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듬해인 1909년 MSG는 ‘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상품명으로 일본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1910년에는 타이완과 조선에서도 아지노모토가 판매되었다. 일본·타이완·한국 사람들은 MSG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이를 입에 넣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 셈이다.
아지노모토는 여러모로 낯선 상품이었다. 그전까지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만을 기본적인 맛으로 쳤다. 전통적인 다섯 가지 맛이라고 하면 여기에다 지금은 통각으로 치는 매운맛을 집어넣는다. 이케다 기쿠나에가 다시마 국물이나 콩으로 빚은 장에서 나는 독특한 풍미에 착안해 또 다른 맛과 맛 물질을 찾아낸 때가 겨우 1907년이다. 발견 직후에는 이를 ‘감칠맛(うま味:우마미)’이라 정의했다.
MSG가 만들어지자마자 먹은 일본·타이완·한국
당시 보통 사람에게 낯선 풍미를 품은 낯선 제품을 팔자니 아지노모토 사는 광고 홍보 및 판촉에 사운을 걸 수밖에 없었다. 거의 매일 아지노모토 광고로 신문과 잡지의 광고 지면을 도배했다. 빈도로 보나 액수로 보나 조선을 통틀어 최대의 광고주였다. 영화와 만화영화 광고, 세계적인 예술인 최승희를 모델로 한 광고를 내보냈다. 장터와 음식점에 판촉 인력을 뿌려 슬쩍 아지노모토 입소문 내기, 국숫집과 냉면집에 아지노모토 뿌리기, 음식점에 경품 제공, 신식 요리 강습회와 요리 책자를 통한 판촉 등 아지노모토 사는 전례 없이 공격적으로 광고 홍보를 했다. 또한 이 땅에서 무슨 ‘데이’ 행사를 처음 펼친 회사 또한 아지노모토 사다.
그림은 〈동아일보〉 1929년 9월26일자에 실린 광고다. 그해 9월12일부터 10월31일 열린 조선박람회에 발맞춘 ‘아지노모토 데이’ 행사 광고다. 이 행사에는 상당히 극적인 구석이 있다. 김영삼 정부 때 철거된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된 해가 1926년이다. 조선총독부 신청사는 경복궁을 폐허로 만들며 태어났다. 조선박람회는 폐허가 된 경복궁 옛터를 놀이터로 만들어 일본제국의 위세를 뽐냈다. 박람회에서는 오사카, 도쿄, 교토, 규슈, 나고야의 위용을 자랑하는 전시물이 가득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도 낯선 세력권이던 타이완, 홋카이도, 만주와 몽골, 그리고 사할린을 주제로 한 특설관까지 마련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를 여유만만하게 굽어보는 구도였다.
아지노모토 사는 조선박람회 기간과 그 이듬해까지 연속 광고를 집행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지노모토 데이’다. 광화문 뒤로 조선총독부가 버티고 섰다. 아지노모토 광고탑이 조선총독부 지붕보다도 높이 섰다. 당시 아지노모토 부스는 경회루와 연못 밖을 잇는 돌다리 북쪽에 설치했는데, 관람객이 아지노모토 부스로 가는 동안 일본 전통 석등 모양을 본뜬 아지노모토 옥외 광고물이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었다.
광고 속에는 ‘무료진증권(無料進呈券:무료증정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1929년 9월26일자 광고를 일주일 갖고 있다가 10월1일 아지노모토 데이에 부스로 오면 아지노모토 한 병을 준다는 것이다. ‘조선에 처음 되는 박람회는 청명한 가을날’ 열리게 되었단다. ‘구경하고 돌아가실 길에’ 주머니에 돈 있거든 아지노모토 한 병 사서 돌아가면 되고, 아니면 우리 광고 일주일 간직한 사람에게 거저 한 병 주겠단다. 마무리는 ‘이왕가어용달(李王家御用達)’이다. 아지노모토가 일본 황실(왕실)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조선 왕실에도 조달되는 제품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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