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5월15일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장소가 며칠 사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섭외한 장소의 대관 담당자는 내용을 듣고 ‘논란이 될 만한 토론회’라는 석연찮은 이유로 대관을 거절했다. 다시 장소를 섭외하고 보니 신청자 모두가 들어가기에는 객석이 부족했다. 더 큰 장소가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5월15일 서울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고 서울시 성평등기금이 후원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제목은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페미니스트 상봉의 날이네요”라는 이소희 민우회 활동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참가자들은 마포구청 대강당 1층 316석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2층 객석까지 메웠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토론회는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겨우 마무리됐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페미니즘 물결이 열어젖힌 토론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론회가 열린 시기는 5월17일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 추모 분위기와도 맞물려 있었다. 강남역 사건은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처럼 만연한 일상의 폭력을 새삼 환기시켰다. 서로가 서로의 용기가 되고, 목소리는 목소리를 붙잡고 이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페미니스트 선언과 공동체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지난 역사가 보여줬던 것처럼 이 ‘울퉁불퉁한 길’은 실수를 예비하고 있었다. ‘강간 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의 고통을 드러내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때로 누가 더 고통받는가를 경쟁하는 길로 쉽게 빠지거나,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뒤섞이고 오용되는 일이 왕왕 벌어졌다. 이는 가해자로 하여금 쉽게 ‘반격’의 길을 열어주거나, 사건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식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쌓아왔던 역사를 복기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고 필요하다. 이날 토론회는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 오용에 대한 ‘비평적 개입’의 필요성에서 기획됐다. “몇 가지 개념으로 서로의 목을 치는 상황에 대한 개입(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인 셈이다. 토론회를 통해 그동안 비공개 집담회 형식으로만 진행해왔던 이야기들이 17년 만에 공개적으로 논의됐다.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는 2000년 조직된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 위원회)’의 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정립됐다. 이 두 개념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갖는다. 이날 토론회에서 ‘100인 위원회가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을 발제한 여성주의 활동가 전희경씨가 〈페미니스트 모먼트〉(그린비, 2016)에 쓴 것처럼 “그동안 (두 개념의 문제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어떤 곳에서는 ‘당신이 하는 말이 바로 가해’라고 지목하지 않는 한 절대로 입을 닫지 않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2차 가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2차 피해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성폭력 사건은 공론화 과정에서 쉽게 2차 피해를 불러온다. 피해자는 사건 당시 옷차림이나 이전의 성경험 등으로 수사기관이나 조력 단체들로부터 재단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순결을 상실한”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손쉽게 ‘꽃뱀’이 되는 식이다. 이처럼 경찰이 피해자의 말을 불신하거나, 언론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재현하는 따위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2차 피해는 1차 피해(성폭력)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를 지속시키는 데 일조해왔다. 이때 그러한 행동이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한편 피해자에 대한 역공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됐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용어 역시 사법절차 과정에서 만연한 가해자 중심주의에 대응하며 사용된 ‘맥락적’ 지식의 결과였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래서 조직과 사회에 균열을 가져온 피해자는 단순한 피해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때 피해자는 ‘싸우기로 한 사람’이며, 이러한 주체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반성폭력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등장한 말이 바로 피해자 중심주의다.

다양한 문제를 ‘성폭력 사건처럼’ 다뤄서는 안 돼

하지만 이처럼 ‘매뉴얼화’한 개념은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가 생략된 채 잘못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2차 가해 개념은 단죄의 언어가 되었다. 사건 해결을 돕는 조력자들로 하여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는 데 기여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들 역시 “2차 가해라는 용어가 성폭력에 대한 질문이나 공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했다”라는 진단에 대부분 동의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역시 ‘피해자의 의사’를 제외한 모든 공적 논의를 끝내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피해자에게 사건을 묻거나 논의하거나 제안해서는 안 되었다. ‘당사자’라는 것 자체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식이다. 이때 피해자 역시 고통을 증명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 개념들이 문제가 된 것은 반성폭력 활동을 넘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다양한 젠더 갈등을 다루는 데서도 ‘거침없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전희경씨는 “100인 위원회 운동 이후 매뉴얼화한 일군의 ‘용어 세트(가해자·피해자·피해자 중심주의·2차 가해 등)’가 다양한 문제 상황을 ‘성폭력 사건처럼’ 해결하는 데 동원됐다”라고 진단했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재빠른’ 지지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행동까지 모두 2차 가해 범주 안에 넣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2차 가해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이 시간차를 가지고 여전히 효과를 나타낸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발제자로 나선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조직과 연구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국장은 “어떤 개념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현재까지도 민주노총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2차 가해의 개념은 강력한 규제로 작동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5월19일 추모 포스트잇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를 빼곡하게 감쌌다.

강남역 사건이 촉발시킨 일련의 흐름이 보여주듯 고통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에서 운동은 시작된다. 전희경씨는 “상처를 전혀 받지 않으면서 하는 투쟁은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시절 운동의 과정에서 정립된 개념들이 나름의 역사와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되, 새로운 판을 짜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개념의 운명도 2017년의 페미니스트들이 반성폭력 운동을, 젠더 문제를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에 달렸다. 다 같이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다양한 문제 제기자들’로, 2017년의 페미니스트는 2000년의 페미니스트보다 더 엄밀하고 더 다양해질 수 있을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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