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
박윤선 지음 사계절 펴냄
타고나길 겁쟁이라 한국 밖에서의 삶을 꿈꿔본 적 없다. 물론 한두 달 정도 한국이 아닌 어딘가에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야 자주 하지만, 그 ‘망상’ 역시 여행의 범주에 포함해야 옳다. 아예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대단한 결심과 어느 정도의 통장 잔고와 뛰어난 어학 실력과 무언가 하나쯤은 뛰어난 재주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처럼 여겨졌다. 실제로야 어떻든 간에 말이다. 학창 시절 그 흔한 워킹홀리데이도 흘깃대본 적 없다. 나는 매일 당장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는 청년이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리가. 그래서 나는 ‘탈조선’이 가능한 친구들을 많은 동경과 조금은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책은 싸게 살 수 있는 항공권이다. 펼치기만 하면 어디든 떠날 수 있다. 자, 이번에는 프랑스로 가보기로 한다. 〈밤의 문이 열린다〉(2008, 새만화책), 〈개인 간의 모험〉(2016, 사계절) 등을 펴낸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만화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를 집어 들었다. ‘집에서 한숨 쉬는 일밖에 할 게 없는 백수’였고,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그렸던’ 스물아홉 살 만화가 지망생의 프랑스 정착기. 다른 삶을 살고 싶었는데 살아보니 실은 어디에도 대단한 다른 삶은 없다는 결론 같은 것들. 알고 있지만 확인받고 나면 괜히 안심이 되는 그런 마음에 먼저 안도한다.

당연히 단순 ‘탈조선기’는 아니다. 책에는 저자를 비롯해 다양한 이방인이 등장한다. 그 덕분에 사회·역사·정치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이야기가 어렵지도 따분하지도 않은 까닭은 이야기의 출발점이 동네에서 만난 할아버지의 삶이기 때문이다. 인종이나 민족, 국가 따위로는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작가의 눈을 통해 펼쳐지는 순간이야말로 기적 같다. 떠나고 죽고 죽이고 사라지는, 이 금방 망할 것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 나와 당신의 얼굴이, ‘어디서든 그냥 나여도 괜찮은’ 우리들이 이 책 속에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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