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소년서윤후·노키드 지음, 네오카툰 펴냄“일인분의 점심을 차리는 일에 능숙합니다. 홀수와 짝수가 나란해집니다.”

시인 서윤후와 만화가 노키드가 만나 ‘만화시편’이라는, 세상에 없던 장르를 만들어냈다. 시인의 말마따나 “구체적인 장면으로 시를 읽어가는 일”은 독자에게도 새로운 경험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데는 편집자의 공이 크다. “시인과 만화가, 이렇게나 좋은 두 재능이 만나면 뭐가 돼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라는 기획의 변이 눈에 띈다.책을 펼치면 시의 한 연 한 연이 한 컷 한 컷으로, 차곡차곡 그림이 된다. 이미 알고 있던 시들은 낯설고, 새로 만나는 시들은 반갑다. 만화로 먼저 시를 경험하고 나면 그 뒤에 시와 시에 대한 시인의 해설을 만날 수 있다. 애초 해설은 “시집은 거의 읽지 않았던” 만화가에게 시인이 보낸 다정한 편지였다. 책에 함께 수록되면서 독자에게는 든든한 안내자가 되었다. 책에 수록된 스무 편 중 열 편은 미발표 시다.

절반의 중국사가오홍레이 지음, 김선자 옮김, 메디치 펴냄“지금까지 우리가 ‘중국사’라고 불러온 것은 반쪽짜리 중국사이다.”

학교에서 배운 중국사는 암기 과목이었다. ‘하은주춘추전국진한….’ 한족이 세운 왕조를 외우고, 이들이 한반도에 끼친 영향과 갈등을 암기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짜리다. 지금 중국이 자리한 터전에는 흉노, 선비, 돌궐, 거란, 말갈, 토번, 저, 월 등 각자의 환경에 맞춰 문명을 일궈간 수많은 소수민족이 살아왔다. 〈절반의 중국사〉는 중국 주류 역사학이 놓쳤던 이들 소수민족의 삶과 역사를 들춰낸다. 역자의 역량이 빛난 번역서이기도 하다. 중국사 전문가인 김선자 박사는 적극적인 해설가 역할을 자임했다. 역자는 150쪽이 넘는 역주를 통해 작가가 설명하는 역사의 구체적인 결을 보충하고, 작가의 서술을 보완 혹은 비판한다. 교양서로도, 학술서로서도 가치가 높은 결과물이다.

자주파 VS 사대파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펴냄“한국사는 자주파 대 사대파의 투쟁이었다.”

‘자주파 대 사대파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역사를 다뤘다. 삼국시대부터 최근의 사드 논쟁까지 우리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마다 대외 관계 노선에서 나타난 갈등들을 간략하고 강력하게 서술했다. 모두 10개 에피소드 가운데 고려시대의 ‘묘청과 김부식’을 다룬 대목이 특히 흥미롭다. 저자는 신채호가 ‘모화주의(중국 숭배)의 결정체’로 격하시킨 김부식을 ‘전략적 사대주의자(상대국의 장점을 배우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한)’로 높이 평가한다. 송나라와 금나라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쳐 고려를 성공적으로 보전했다는 이유다. 조선 중기 이후의 선조, 인조, 친일파, 사드 배치론자 등을 ‘광신적 사대주의자(강한 이웃 나라를 위해 본국의 이익까지 저버리는)’라 부르면서 최근 시사까지 엮어 질타하는 솜씨는 거침없고 씩씩하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이현우 지음, 현암사 펴냄
“20세기를 살아간 작가 중 누구도 혁명의 물결을 비켜갈 수 없었다.”

헝가리 좌파 비평가 죄르지 루카치는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은 1917년 10월 혁명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지구상 최초 사회주의 국가는 모든 걸 바꿔놓았다. 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실제는 어땠을까? 러시아 문학은 사회주의 혁명의 반대편에서 꽃피었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 사회주의에 비판적이라 공식 출간될 수 없던 ‘비공식 문학’이다. 대부분은 1991년 소련 체제 붕괴 후에 재발굴되었다. 결국 루카치의 말은 절반의 진실만 담은 셈이다. 1917년과 1991년을 함께 읽어야 한다. ‘로쟈’ 이현우가 이러한 혁명의 안과 밖에서 만개한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쉽게 설명해준다.

별맛일기 1·2심흥아 지음, 보리 펴냄“지극히 일상적이라 소중한 요리들이 담겼다. 섬세한 절제미와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다.”

봄동 겉절이, 막걸리빵, 김치말이 국수, 부추전…. 이런 평범한 음식만으로 요리만화가 성립할 수 있을까? 성립한다. 그것도 서서히 빨려드는 뭉클한 매력으로. 작가는 음식을 완성시키는 것이 둘러앉은 밥상임을 그림으로 설득한다. 싱글맘의 아들로, 할머니 옆에서 음식 만드는 걸 거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별이는 이웃에게 음식을 돌리며 새로운 세상을 알아간다. 다문화·동성애 가족 등이 아이의 이웃이다. 음식을 나누며 들여다본 이들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하다. 32가지 요리마다 소개되는 별이 할머니의 레시피처럼.읽다 보면 기름기 다 빼낸 정갈한 밥상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만화. “만화 그리는 것만큼 살림이 중요하다”라는 작가의 전작이 새삼 궁금해진다.

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김명식 지음, 뜨인돌 펴냄“슬픔이 기억되지 못하는 공간, 아픔을 기억하지 않는 사회, 비극을 지우려는 도시.”

밀란 쿤데라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에게도 ‘기억의 의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저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개인, 움직이지 않는 지성, 각성하지 않는 사회’에서 침몰한 인문주의를 부상시킬 방법으로 기억을 꼽는다. 그리고 근현대 건축물을 기억의 매개물로 삼는다.저자는 고통을 체험하고 상기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산을 씌워주기보다 함께 그 비를 맞고, 우는 이를 달래기보다 함께 울기 위해 움직였다.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그리고 일상이 고통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하게 한다. 여기에 도시 건축에 대한 기본 이해를 곁들였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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