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2015년 9월10일 베를린의 난민 수용소에서 한 남성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오른쪽)와 셀카를 찍고 있다.
‘난민 엄마’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다. 2015년 9월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 국경에는 시리아 난민 4만여 명이 몰려 독일 영토 내로 진입하려고 아우성이었다. 대다수가 가족 단위인 난민은 기나긴 여행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황. 일촉즉발, 언제라도 독일 경찰과 충돌이 일어날 기세였다. 이날 경찰과 대치 중이던, 시리아 홈스 출신 아흐메드 사이크 씨(34)는 “나는 아내와 젖먹이를 포함한 세 아이 그리고 노모까지 함께였다. 무려 3개월이나 걸려 독일 국경까지 왔다. 누구든 막으면 죽음도 불사할 생각이었다”라고 증언했다.

메르켈 총리는 디터 로만 경찰청장에게 물었다. “이번 일로 이미지가 실추하는 걸 우리가 감수할 수 있겠느냐” “아이를 품에 안은 난민 500명이 국경수비대를 향해 돌진하면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총리가 난민을 막아서길 망설이자 로만 청장은 화를 냈다. 그는 “현장의 경찰 지휘관이 적절하게 조처할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메르켈 총리는 끝내 난민을 막으라는 승인을 하지 않았다. 2015년 한 해 동안 독일이 수용한 난민은 총 89만명이다. 다수가 시리아 난민이지만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 다른 전쟁 국가에서 탈출한 난민도 적지 않다.

동독 출신 물리학자였던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의 1인자로 불린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독일의 연방 총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일제국 성립 이후 최초로 연방 총리직에 오른 여성이다. 탄탄한 국내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12년째 장기 집권하며 유로존 경제 침체, 난민 대량 유입 등 유럽 위기 해결에 앞장서왔다. 2015년 미국 잡지  〈타임〉은 메르켈 총리를 ‘자유세계의 총리’라 부르며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힘들어하고 있다. 균열은 독일 국적 청년들이 시리아로 향하면서 시작되었다. ‘독일인 지하디스트’의 출현이었다. 2016년 독일의 국내 담당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BfV)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독일 청년 840명이 시리아와 이라크로 향했다. 이들 가운데 140명이 IS가 활동하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3분의 1인 약 280명은 독일로 돌아왔다. 여성도 전체의 5분의 1이나 됐으며 다수가 30세 이하였다. 처음 독일 언론이 관련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독일 정부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수가 터키계 이민자였기 때문이다. 차츰 토종 독일계 청년들도 이 행렬에 가세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다.

독일 청년이 시리아로 가면 IS는 그들의 이름 끝에 알 알마니라는 성을 넣어 독일 출신임을 표시한다. 알 알마니란 아랍어로, 독일을 뜻한다. 이 성을 가진 독일 IS 대원들은 집성촌을 이뤄 살며 각종 테러와 전투에 참가한다. 연합군의 공습이 심해져 IS가 와해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최근 대거 귀국한 것으로 보인다. ‘귀국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시한폭탄이다. 독일 정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랴부랴 2014년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이 독일에서 IS와 관련된 모든 선전 및 지지 활동을 금지하는 ‘IS 금지법’을 발표했다. 이 법을 어길 경우 최대 징역 1~2년에 처한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의 경기장 테러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 이 테러는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 충격을 주었다. 테러범 중에 벨기에 출신이 있었는데 이는 테러범들이 유럽 각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범인 중 일부가 난민을 가장해 시리아에서 파리까지 왔다는 증거가 나왔다. 유럽 각국에 비상이 걸렸고 독일인 역시 메르켈 총리의 난민 정책을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현재 독일 정부는 자국으로 유입되는 난민 수를 줄이려고 애쓴다. 2015년 89만명에서 2016년에는 28만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3월 유럽연합과 터키가 난민의 주요 유입 경로인 발칸 루트를 폐쇄한 덕분이었다. 독일 정부도 덩달아 국경을 닫았다. 이로써 메르켈의 난민 신화는 사실상 막을 내린 셈이다.

잇따른 난민 범죄에 메르켈 역시 변해

메르켈 총리도 변했다. 그녀는 “시리아에 평화가 돌아오고 이라크에서 IS가 격퇴되면 난민이 여기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시리아가 평화로워지면 바로 떠나라는 뜻이다. ‘난민의 엄마’가 싸늘해진 데는 이유가 있다. 난민이 이미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독일에서 난민 범죄가 크게 증가했다. 독일 내무부가 공개한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독일로 건너온 비유럽 국가의 이민자 중 17만4000명이 각종 범죄 혐의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보다 무려 52%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18∼21세 젊은 난민층의 범죄율은 같은 연령대 독일인보다 무려 4배나 높다. 2015년 12월31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새해맞이 행사에서는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이 떼로 몰려다니며 성범죄를 저질러 독일 국민의 공분을 샀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난민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이 범죄를 촉발한다”라고 설명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난민이 비좁은 수용소 안에서 복작대다 보니 갈등이 폭발해 범죄율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반(反)이민·반무슬림을 기치로 내건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독일대안당)’으로서는 메르켈 총리를 공격할 호재였다. AfD의 지지율은 3%에서 15%로 치솟았다. 나치를 겪은 독일은 극우 세력의 등장을 극도로 꺼리는데 난민이 극우 세력에 힘을 돌려주고 있다. 난민 포용정책이 시행된 지 1년 만에 치러진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의회 선거에서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은 19%를 득표해 3위로 추락하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메르켈의 거실에서 저항의 폭풍이 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EPA지난해 12월19일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트럭 돌진 테러가 일어나 12명이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신종 테러 위협까지 덮쳐왔다. 지난해 12월19일 ‘크리스마스 트럭 테러’가 터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19t 트럭이 카이저 빌헬름 메모리얼 교회 인근의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돌진해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는 1년 중 제일 큰 명절이며 가족과 쇼핑을 하는 것이 연례행사이다. 독일인은 이런 행복한 시간과 공간에서 테러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테러범은 튀니지 난민 출신이었다. 연이어 난민 출신 테러범이 사건을 일으키자 메르켈 총리는 원망을 샀다. 그녀는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추모 현장과 교회 추도식에 잇따라 참석해 민심을 달랬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장 테러범은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도망쳤다가 사살되었다. 난민은 독일이 받았더라도 그 위험은 유럽 각국으로 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메르켈 총리가 난민의 유럽 유입을 독단적으로 허용해 독일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까지 위험에 노출시켰다”라고 비판했다.

지금껏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폭탄이나 무기에 의존한 테러를 벌였다. 수사 당국은 폭탄을 만드는 재료나 무기를 수색해 테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럭을 몰고 무조건 인파 속으로 돌진하는 이런 방식은 예방이 불가능하다. 차량 테러는 IS에 합류해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자생적 테러리스트, 즉 ‘외로운 늑대’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테러 방식이다.

지난해 7월 관광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니스에서도 축제를 즐기던 인파를 트럭이 덮쳤다. 이 트럭은 30여 분간 시속 60㎞로 광란의 질주를 벌여 무고한 시민 86명을 죽였다. 최근에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시내의 최대 번화가에서 도난당한 맥주 운반 트럭이 인파를 향해 돌진해 10여 명 사상자를 냈다. 유럽뿐 아니라 2014년 캐나다 퀘벡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관 1명이 숨졌다.

이런 변종 테러에 대한 불안 역시 메르켈 총리를 향한 분노로 바뀌었다. 극우 정당 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는 “모든 국경을 통제하고 이슬람 사원을 폐쇄해야 한다. 하지만 메르켈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아냥댔다. 반(反)난민 정서는 증오 범죄를 유발한다. 지난해 독일에서 하루에 열 번꼴로 난민이 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난민이나 이민자에 대한 공격이 총 3533건 발생했으며 부상자 560명 가운데 43명이 어린이였다.

ⓒEPA지난해 1월9일 독일 쾰른에서 극우 단체 회원들이 난민 반대 시위를 벌이자 독일 경찰이 물대포를 쏘면서 저지하고 있다.
테러 불안에 난민 공격하고 차별하는 악순환  

테러 불안감은 난민 공격으로 이어지고 난민들은 차별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뮌헨에 사는 실비아 씨(35)는 “내 아이들이 난민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안하다. 나도 그들이 도착했을 때 물과 담요를 들고 갔던 사람들 중의 하나다. 하지만 메르켈은 왜 시리아 내전이 독일까지 이어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 정착한 시리아 알레포 출신 무스타파 알리 씨(49)는 “메르켈은 우리를 받아주었지만 독일은 언제든 짐을 싸두라는 태도이다. 우리는 이방인으로 우리 아이들을 키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민자는 관용과 개방, 종교와 표현의 자유 같은 독일의 가치를 존중하고, 우리 삶의 방식에 호기심을 더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독일인 역시 난민에게 개방적이어야 한다면서 “(이민자로부터)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불평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메르켈 총리는 세 차례 임기 동안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유럽 안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설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전 유럽의회 의장인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후보에게 밀리고 있다. 오는 9월 메르켈은 3선을 넘어 4선에 도전한다.

※ 이번 호로 ‘테러의 기원을 찾아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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