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프랑스 대선을 강타한 11.5%의 무효표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유권자 11.5%가 백지나 훼손된 표와 같은 무효표를 던졌다. 이는 정치 무관심이 아닌, 마크롱과 르펜 두 후보 모두에 대한 거부의 표현이다.

파리·이유경 통신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5월 25일 목요일 제505호
댓글 0
ⓒAFP PHOTO
5월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이 경찰을 덮쳤다. 현재 프랑스 청년실업율은 24.6%이다.

지난 5월7일, 프랑스 새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승리 연설을 했다. 이날 연설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얻은 34%의 민심까지 껴안겠다고 밝혔다. 기존 정치 세력이 아닌 스스로 만든 정당 ‘앙마르슈(전진)’를 기반으로 당선된, 서른아홉 살 젊은 대통령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기존 정당을 벗어난 정치와 극우 정당의 대결’이라는 구도 외에, 이번 프랑스 대선에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 1969년 이후 최고치에 달하는 25.4%의 기권표이다. 결선 투표율(약 75%)이 1차 투표(약 77%)보다 낮았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프랑스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결선투표의 유권자는 4700만여 명이었다. 등록 유권자의 무려 11.5%가 백지나 훼손된 표와 같은 무효표를 던졌다. 1969년 대선 때의 무효표보다 2배에 달하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직접 가서 어떤 후보도 택하지 않는 ‘무효표’를 던졌다. 또 25.4%는 기권했다. 높은 기권층은 정치 무관심이 아닌 마크롱과 르펜 두 후보 모두에 대한 거부라고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 정치에서 무효표(백지 표)는 역사가 깊다. 이미 제5공화국(1958년~현재) 초기부터 무효표는 정치적 행위로 주목받았다. 정치권에서 무효표를 장려한 적도 있다. 2002년 극우 성향 장마리 르펜의 결선 투표 진출에 항의하는 의미에서다. 당시 장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하자 충격을 받은 프랑스 의원들은 어떤 표기도 하지 않는 무효표 투표를 독려했다. 무효표를 ‘잘못된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시민적이고 중립적인 행위’로 인정해 기권표와 구분해 발표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내무부의 이번 발표 역시 이 법안에 따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적극적 투표 거부 움직임은 결선 투표 이전부터 징후가 보였다. 지난 4월 말 1차 투표 이후 프랑스 곳곳에서는 ‘마크롱도 아니고, 르펜도 아니다(Ni Macron, Ni Le Pen)’라는 슬로건이 등장했다. 두 후보 사이에서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무효표를 행사하자는 반(反)투표 운동이다. 우파 후보였던 니콜라 사르코지와 프랑수아 피용, 좌파의 브누아 아몽, 마뉘엘 발스, 그리고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까지 마크롱을 전폭 지지했으나 SNS를 통한 기권 운동은 걷잡을 수 없었다.

높은 무효표에 영향을 준 것은 극좌 성향 장뤼크 멜랑숑 후보다.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1차 투표에서 4위에 그쳐 결선투표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지지자가 적지 않았다. 3위 프랑수아 피용 후보(19.9%)에게 고작 0.3%포인트 뒤지는 19.6% 지지를 얻었다. 피용 후보가 1차 투표 이후 마크롱 후보 지지 선언을 한 것과 달리 멜랑숑 후보는 “르펜을 뽑지 않겠다”라는 모호한 말만 남겼다. 멜랑숑의 태도를 두고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공개적으로 비판이 터져 나왔다. 노엘 마메르 의원은 “멜랑숑이 마크롱과 (극우 성향) 르펜을 같은 선상에 두는, 크게 책임질 일을 했다”라고 비판했다. 마크롱 지지를 선언한 베르나르 카즈뇌브 현 총리 역시 “지금은 책임감을 가져야 할 중요한 순간”이라며 극우 정당 집권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 같은 정치권의 설득에도 프랑스 젊은 유권자들은 마크롱에게 압도적 지지를 몰아주지 않았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은 1차 투표부터 맨 오른쪽과 맨 왼쪽에 있는 후보에게 쏠렸다. 프랑스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Ipsos)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마크롱 후보를 지지한 18~24세 유권자는 18%밖에 되지 않았다. 30%는 멜랑숑 후보, 21%는 르펜 후보를 지지했다. 25~34세 유권자층에서도 마크롱 후보는 28% 지지를 얻었으나, 멜랑숑 후보와 르펜 후보 역시 각각 24% 지지를 얻었다. 34세 이하 젊은 유권자 절반가량이 맨 왼쪽 후보인 멜랑숑과 극우 후보인 르펜에게 쏠린 셈이다. 결선 투표에서도 젊은 유권자들의 마크롱 거부는 이어졌다. 34%는 기권을 택했다. 투표한 유권자들 가운데에서도 세대별 지지율 차이가 드러났다. 60~69세와 70세 이상 유권자들이 각각 마크롱 후보에게 70%, 78% 표를 준 반면, 18~24세는 66%, 25~34세는 60%가 지지했다.

ⓒAFP PHOTO
1월27일 한 작가가 프랑스 대선 후보 거인상에 색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린 르펜, 프랑수아 피용,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청년 유권자들 극좌와 극우에 쏠려

중도 성향 마크롱 후보가 극단으로 쏠린 젊은 유권자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까닭은 두 가지다. 멜랑숑 후보 지지자들은 마크롱 후보를 ‘엘리트주의자’ ‘친기업 후보’라고 불렀다. 멜랑숑과 마크롱 후보의 정책 사이 간격이 작지 않다. 1차 투표 이틀 뒤인 4월25일 마크롱 후보가 멜랑숑 후보의 ‘노동법 폐지’ 제안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올랑드 전 대통령이 지난해 밀어붙인 개정노동법은 ‘친기업 노동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저임금 인상, 60세 정년 보장, 35시간 근로시간 유지를 내세웠던 멜랑숑과 달리 마크롱은 개정노동법 유지, 33% 법인세를 25%로 인하, 일요일 영업 허용 등을 주장했다.  

현재 프랑스 실업률은 10.1%인데 청년 실업률은 24.6%에 달한다. OECD 회원국 중에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 다음으로 높다. 프랑스 국적 기업의 해외 진출과 경기침체에 따른 폭탄을 프랑스 젊은이들이 맞았다. 청년 유권자들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워 친기업 정책을 내세운 마크롱 후보가 탐탁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노동정책만 두고 보면, 멜랑숑과 마크롱보다 멜랑숑과 르펜의 정책 차이가 더 작았다. 르펜 후보도 멜랑숑 후보와 마찬가지로 개정 노동법 폐지, 35시간 노동시간 유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안보 불안도 마크롱 후보가 청년들의 표심을 이끌어내는 데 악재였다. 지속되는 테러 위협은 ‘프랑스 국민을 위한 프랑스’라는 마린 르펜 후보의 슬로건에 설득력을 더했다.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들은 “진정한 안보만 있다면 더 적은 자유를 누릴 준비가 되어 있다”라며 르펜의 국가주의적 정책을 지지했다. 올랑드 정권의 안보·경제 정책에 대한 실망도 ‘또 다른 중도 성향’ 후보를 믿지 않게 만들었다.

프랑스 청년들도 유럽연합, 유로존 탈퇴 등을 공약으로 내세운 국민전선이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본다. 르펜 후보는 낙선했다. 그러나 극우 정당이 결선투표에 올라간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수치’라고 여기던 15년 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프랑스 현지에서는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 대해 ‘공화국 전선’을 붕괴시킬 수 있는 변수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극우 정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나머지 세력이 결선투표에서 연합하는 전통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불안감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을 두고 국내외에서는 “구시대 정권 인물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대통령을 배출했다”라고 평가한다. 기존 정치권 인물을 거의 영입하지 않은 채 선거를 치른 최연소 대통령 마크롱에 거는 프랑스 국민들의 기대도 크다. 그러나 인물이 아닌 정책 면에서는 새로울 게 없고, 그렇기에 기득권 엘리트 정치권에서 지지를 받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내는 냉소적 시선도 적지 않다. 전례가 없던 기권·무효표의 비율, 세대 간 투표 성향의 격차가 젊은 대통령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극단적 자본주의자’라는 비판을 극복하고 정책적 견해가 판이한 정치 세력들과 화합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앙마르슈(전진)가 맞닥뜨릴 첫 시험대는 다가오는 6월 총선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