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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제3의 길 ‘극단적 중도’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마크롱(사진)은 ‘시장주의 강화’ 노선 위에 좌·우파의 공약을 섞어 버무렸다. 이 극단적 중도주의가 ‘제3의 길’로 작동할 수 있을까?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7년 05월 25일 목요일 제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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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자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이른바 중도주의(Centrism). 사회당 올랑드 정부의 내각에서 경제장관까지 지낸 인물로서는 놀라운 발언이다. 미국의 유력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마크롱을 ‘근본주의적 중도주의(Radical Centrism)’, 심지어 ‘극단적 중도(Extreme Center)’라고 부른다. ‘중도’와 ‘극단’만큼 붙여 사용하기에 어울리지 않은 개념도 없을 텐데 말이다.

마크롱이 ‘극단적 중도’로 불리는 이유는 프랑스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중도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은 사회당과 공화당이다. 사회당 대통령 후보인 브누아 아몽은 기본소득(매달 전 국민에게 750유로)을 공약했다. 공화당 후보인 프랑수아 피용은 정부 지출을 1000억 유로 삭감하고 공무원을 50만명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결선투표에서 마크롱과 격돌한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이민자 증가를 막고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정부 지출은 오히려 늘리겠다고 했다. 좌파당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는 부자 증세(연봉 40만 유로 이상에게는 소득세율 90%), 정부지출 확대, 보호무역 등의 공약과 함께 EU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정부의 역할’을 기준으로 분류한다면, 피용 외에는 모두 ‘큰 정부’를 지지한다. EU와 자유무역에 대한 견해에서는 ‘국제주의자(피용·아몽) 대 국가주의자(멜랑숑·르펜)’로 나뉜다. 더욱이 마크롱을 제외한 후보들의 노선은 모두 ‘현 체제’를 근본부터 뒤흔들 만한 것이었다. 공무원 50만명 감축(피용), 기본소득(아몽), EU 탈퇴(멜랑숑과 르펜) 등이 그러하다.

ⓒAFP PHOTO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된 5월7일 밤(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에 모인 지지자들이 대선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근본적 변화 없이도 이럭저럭 해나갈 수 있다’는 속삭임 


이런 정치적 환경을 전제하고 본다면, 마크롱은 ‘극단적’으로 ‘중도’적이다. 공무원을 감축하되 그 수는 12만명(피용은 50만명)에 그친다. 퇴직자로 인해 발생하는 결원을 충당하지 않는 방법이다. 정부지출은 2022년까지 600억 유로(피용은 1000억 유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건강보험(150억 유로)과 실업급여(100억 유로)에서 250억 유로나 덜어내므로 그만큼 프랑스의 복지 수준은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500억 유로를 정부 예산으로 추가 편성해 청년 실업자들에 대한 직업교육이나 ‘녹색 에너지 산업’ 육성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공무원 감축과 지출 삭감이 우파 노선이라면 정부 주도의 직업교육과 녹색 에너지는 좌파(부분적으로는 르펜 지지자들로부터도)의 호의를 얻기 위한 공약이다. 공약의 강도(공무원 감축 규모를 50만명에서 12만명으로)도 완만하게 조정했다. 어떻게 보면 좌우파 양측의 공약을 모두 받아들여 온건화해서 ‘중도’를 만들어냈다. 극단적으로 ‘중간’에 집착한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어느 쪽 방향으로든 ‘근본적 변화’를 선동하면서 격렬한 기대와 불안감을 부추겼다. 마크롱은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지 않아도 이럭저럭 해나갈 수 있다’고 유권자들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마크롱의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극단적 중도’를 넘어 ‘시장주의 개혁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프랑스는 ‘큰 정부’의 나라다. OECD 통계에 따르면, GDP 대비 공공지출 비율(전체 경제활동에서 정부의 비중)이 2015년 현재 57%에 달한다. 핀란드와 공동선두다. 독일(44%), 영국(42.8%)보다 10%포인트 이상 높다. 한국은 31~32% 정도다. 노동시장도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경직된 것으로 평가된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과 액수도 후한 편이다. 이런 경제 시스템이 지난 10여 년 동안 큰 곤경을 겪었다. 실업률이 10.1%(독일은 4% 정도)인 데다 청년 실업률도 24.6%에 달한다. ‘시장주의 강화 쪽으로 방향을 트느냐’ 혹은 ‘완전히 새로운 길을 채택하느냐’가 이번 대선의 화두였다.

마크롱은 올랑드 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일할 때부터 친기업·친시장 규제 개혁으로 화제를 뿌린 인물이다. ‘일요 노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해고를 쉽게 만들었다.

마크롱은 OECD 최고 수준인 33% 법인세율을 25%(EU 평균)로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금융 수익에 대한 과세는 세율을 크게 낮추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프랑스의 경우, 금융 및 부동산 투자로 발생한 이익에 부유세를 부과해왔다. 법인세율과 함께 임금 생활자에 대한 소득세율도 낮춰서 200억 유로 규모의 감세 효과를 발생시키겠다고 한다. 다만 퇴직연령을 높여서 연금 수령 기간을 줄이거나 연금 급여를 낮추는 조치는 삼가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세수와 정부지출을 축소해서 GDP 대비 공공지출 비율을 2022년까지 52%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도 마크롱의 주요 의제다. 프랑스에서는 노사 교섭이 크게 산업과 개별 기업 차원에서 이중으로 이뤄진다. 산업별 노동자 대표와 경영 측 대표가 협상해 고용조건 및 임금에서 큰 틀을 만들고 기업별 교섭에서 구체적 방안이 결정된다. 마크롱은 기업별 교섭을 강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경영진이 산별 교섭(노총이 큰 영향을 미치는)에 크게 얽매이지 않게 된다면, 개별 기업 차원의 노사협상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실업급여를 지금보다 받기 힘들게 만들어, 노동자들에게 취업을 강제하고, 정부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노동 측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다만 기업주나 농부, 자영업자들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마크롱이 말하는 ‘수구파’는 좌우 거대 정당


정부지출 축소 등 마크롱의 공약들은 EU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EU는 회원국들의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3% 룰). 만약 특정 회원국 정부가 정부지출을 늘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국채를 발행해서) 파산 지경에 이른다면, 공동 통화인 유로화의 지위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3% 룰’의 이행을 약속했다(최근 프랑스의 재정적자 규모는 GDP의 3.5~3.9%). ‘EU 공동예산’을 창설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다.

‘EU 공동예산’은 남유럽 국가들처럼 재정위기에 처한 회원국들을 EU 차원에서 지원하는 수단이다. EU의 중심국인 독일은 반대한다. ‘시민들이 과다한 정부지출에 의지해서 방만한 삶을 즐기는 나라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독일인들의 시각에서는, 프랑스도 ‘방만한 나라’에 포함된다. 마크롱으로서는 강력한 정부지출 축소, 노동시장 개혁 등 구조조정으로 독일의 양해를 얻어 ‘EU 공동예산’의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는 속셈이다.

마크롱은 2014년 11월 친EU·친시장주의 민간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CER)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는 좌우가 아니라 수구파와 개혁파로 갈려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나오는 ‘수구파’엔 좌우 거대 정당(사회당과 공화당)은 물론 르펜과 멜랑숑 등의 노선도 포함된다. 그러나 ‘시장주의 강화’라는 기본 방향 위에 좌우파의 공약을 섞어 버무린 ‘극단적 중도주의’가 지속 가능하고 새로운 ‘제3의 길’로 작동할 수 있을까? 마크롱은 우선 감세와 정부지출 축소를 병행하는 동시에 500억 유로의 추가예산을 편성하는 마술부터 성공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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