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자리에 상하 구분이 없었다. 자리만 봐선 누가 지도자인지 몰랐다. 식사가 끝나면 함께 산보를 했다. 산보하며 담소를 이어갔다. 식사는 관저뿐 아니라 휴양지에서도 이어졌다.


문재인 청와대 이야기가 아니다. 1946년부터 1969년까지 재임한 타게 에를란데르 전 스웨덴 총리의 일화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지지 않았다. 스웨덴도 한때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었다.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하면 재계는 직장 폐쇄로 응수했다. 노사는 함께할 수 없는 적이었다. 빈부 격차도 컸다. 그런 적대 관계와 격차 사회를 해소한 게 사회민주당(사민당) 정부였다. 노조의 지지를 받았던 사민당이지만 노동자들만의 집이 아닌 ‘국민의 집’을 주창했다. 1928년 페르 알빈 한손 총리는 국회에서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이런 국민의 집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특권 상류층과 저변 계층의 사회·경제적 격차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을 실현하기에는 소수파 정부였다. 한손 총리는 보수당 계열 정당인 대지주 중심의 농민당에 손을 내밀었다. 사·농 연정으로 노사를 압박해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을 이끌어냈다. 이 협약은 스웨덴식 노사 평화, 경제성장, 복지의 인프라를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협약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노사 양쪽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불협화음을 없애고 ‘국민의 집’을 완성한 주인공이 바로 후임 에를란데르 총리다. 노사 불만을 해결한 비책은 특별하지 않았다. 총리는 “난 목요일이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라며 노사 대표를 식사 자리에 초대했다. 식사 정치는 목요일마다 이어져 ‘목요클럽’으로 정례화되었다. 스웨덴 현대사의 교훈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국가의 이익이 정당이 추구해야 할 최대 목표다’ ‘대안을 가지고 타협하라’ ‘극단을 배제한 점진주의를 택하라’ ‘지도자가 먼저 실천하라. 반대편을 포용하고 먼저 다가가라’ ‘투명한 정치, 특권 배제의 정치를 펴라(〈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최연혁, 2016).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지도자에게는 더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참모진과 원탁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든 채 산보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간다. 지난 4년간 보기 드문 장면이라 더 화제를 모았다. 중요한 것은 형식보다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첫 외부 행사로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스웨덴처럼 이런 대화 정치가 격차 사회를 해소할 묘안일지 모른다.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먼저 다가가 대화하는 그런 대통령을 계속 보고 싶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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