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한 마리가 집 근처를 맴돌았다. 황색 털에 동그란 눈이 제법 귀여웠다. 현관을 나서면 “야옹” 하고 아는 체했다. 귀갓길에는 골목 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였다. 주인을 잃고 떠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몸통의 반 정도 털이 잘려 있어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사라졌다. 내가 사는 빌라 앞이 세상의 전부인 양 행동반경이 좁았던 녀석이다. 간밤에 들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비명을 지르는 듯 기분 나쁜 소리였다.

얼마 후 현관에 붙은 전단지를 통해 고양이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이웃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았던 유기묘 레몬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글쓴이는 고양이가 ○일 새벽 살해되었으며 다음 날 사체를 발견해 자신이 거두었다고 밝혔다.

전단지는 이런 말로 끝났다. ‘사람에게 버려지고 또 사람을 믿은 죄밖에 없는 레몬이가 고양이 천국에서나마 행복하길 잠시 기도해주세요.’ 전단지 사진 속 레몬이는 동그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 천진한 눈동자가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새벽을 틈탄 고양이 살해는 끔찍한 범죄다. 아직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런 사람이 이웃으로 산다는 게 섬뜩했다. 그러나 이윽고 내가 그 범죄에 얼마간 마음을 보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길고양이의 존재가 불편했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현관 앞을 지키고 있는 녀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가까이 오면 혹시 물지 않을까 거리를 두었고, 현관 앞에서는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잽싸게 문을 닫았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긴장하게 되니 가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반가움 반, 원망 반이었다. 솔직히 고양이가 사라졌을 때는 조금 홀가분한 기분이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미움과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고양이 살해범의 마음속에서도 싹텄을 것이다. ‘고작 고양이 때문에 내가 왜 불편함을 겪어야 하지?’

레몬이가 없어진 텅 빈 집 앞을 나선다. 이제야 불편해야 할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이곳은 내 집일 뿐만 아니라 길고양이 레몬이의 집이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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