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꼭 아이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예술 장르다. 요즘 그림책 분야 사람들이 주제가처럼 되뇌고 다니는 명제다. 이 명제를 제대로 구현해내는 유쾌한 책 한 권이 나왔다.

〈중요한 문제〉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다. 등장하는 아이라고는 그의 약점을 놀려대는 녀석들뿐이다. 주인공은 ‘더 이상 아이들이 귀엽지 않다’고 푸념한다. 제목이기도 한 중요한 문제란 일부 어른들의 고민거리인 원형탈모다. 수영 강사인 주인공의 적나라한 겨드랑이 털과 목욕하는 알몸 뒷모습이나 옆모습 같은 비주얼, 맥주에 대한 거듭된 언급들도 독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아니, 이런 책을 어떤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하려고 그러지? 놀라움에 이어 그 용기에 대한 감탄과 우려가 따라 나온다.

그러고 보니 작가 조원희는 이미 상아 사냥에 대한 통렬한 비난을 과감한 색조와 충격적인 비주얼로 던진, ‘어린이책답지 않은 그림책’을 낸 바 있다. 코끼리가 인간 어금니를 수집한다는 역지사지 모티프도 꽤 과감했지만, 벌거벗은 아이에게 코끼리들이 쏜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와 박히는 장면이라니! 분노와 슬픔과 준엄한 경고를 꾹꾹 눌러 담은 듯한 〈이빨 사냥꾼〉(이야기꽃, 2014)은 2017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강렬한 이미지에 메시지를 실어 전하고 있다”라는 평과 함께 스페셜 멘션상을 받았다. 전통적 그림책 개념에 붙들리지 않은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중요한 문제〉에서 더욱 굳건해진 것 같다.

〈중요한 문제〉 조원희 지음, 이야기꽃 펴냄
원형탈모가 시작된 네모 씨에게 의사가 ‘심각… 중요한 문제… 주의… 반드시…’ 운운하며 처방을 내린다. 굳게 마음먹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네모 씨. 그러나 그 일은 지금까지 누리던 소소한 삶의 기쁨을 모조리 앗아간다. 땀 흘린 운동 뒤 시원한 바람, 뜨거운 목욕 뒤 차가운 맥주, 복슬복슬한 강아지 털의 감촉. 웃음을 잃어버린 네모 씨가 그 모든 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찾아낸 해결책은?

아, 해결책보다도 작가는 먼저 중요한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더 정확히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중요한 문제로 몰아가는 전문가가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니 표지인물이 단 한 장면 등장한 의사 두꺼워 씨(Dr. Thick)겠지. 그는 전문지식과 권위, 환자의 불안감, 상투적인 전망을 이용해 네모 씨를 옭아맨다. 그 올가미에서 풀려나 웃음을 되찾은 네모 씨를 보니, ‘중요한 문제’를 강조하는 전문가라는 존재에게 의혹의 눈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어떤 영화에서 한 소녀가 일갈했듯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를 새삼 물어야 할 것 같다. 네모 씨에게는 ‘좋아하는 것들,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 중요했다. 그는 머리카락을 내주고 그것을 지킨다. 싹 밀어버린 그의 머리가 참 자유로워 보인다. ‘대머리 독수리’라고 놀리는 아이들을 팔 휘두르며 쫓아가는 뒷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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