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6일 파격적인 감세안을 발표했다. 법인세율을 현재 수준의 절반 이하로 낮추겠다니,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감세안이자 세제개편안”이라고 자화자찬할 만하다. 세율을 낮추면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고 고용은 증가해 세금 수입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신념’에 따른 정책이다. 먼저, 미국의 세금제도가 어떠했기에 이토록 과격한 개편안이 나왔을까?

미국의 법인세율은 세계 최고다. 다만 모든 사업체(business)가 법인세를 내지는 않는다. 사업체를 어떤 형태(business type)로 설립하는가에 따라, 세금 내는 방법 역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법인(Corporation)으로 설립된 사업체는 법인세를 낸다. 법인(法人)은, 문자 그대로 ‘법적인 인간’이다. ‘자연적 인간’이 아니지만 납세자로 인정받는다. 미국의 법인은 연간 순이익이 10만 달러 이상이면 대체로 32~35%를 납부한다.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도 35%(최고 법인세율) 이상 납부하지 않는다. 순이익 중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은 법인 내에 보유하거나 주주(법인의 소유주)들에게 배당금으로 배분한다. 주주들은 이 배당금을 다른 소득과 합산한 금액을 바탕으로 개인소득세를 납부한다. 어떻게 보면, 법인의 순이익에 대해 세금이 두 차례(법인세와 개인소득세) 부과된다고 할 수 있다. ‘이중과세’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주주들이 업체를 법인 형태로 설립·유지하는 이유가 있다. 법인의 활동(돈을 빌려 투자)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기 때문이다. 법인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감당해야 하는 사고를 저질러도, 주주는 금전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자신의 지분만 포기하면 된다(유한책임). 소유주인 주주 처지에서 볼 때 법인은 세금 면에서 불리하고 책임 면에서는 유리한 ‘사업조직 형태’다.

ⓒAFP PHOTO4월26일(현지 시각)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오른쪽)이 법인세 감세안을 발표한 뒤 질문할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법인 이외의 사업조직도 다양하다. 일단, 한 명의 개인이 전적으로 소유·운영하며 이익과 책임을 전담하는 소자영업(sole proprietorship)이 있다. 파트너십은, 소수의 동업자들이 업체를 꾸려 수익을 나눠 갖고 책임(채무)도 함께 진다. S-법인(S-Corporation)은, 법인과 마찬가지로 소유주들이 책임에서 면제된다. 그러나 주주의 수가 100인 이하로 제한되어 있는 등 설립이 쉽지 않다. 해당 업체의 주식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다. 이런 사업조직을 통틀어 ‘비법인(non-Corporation)’이라고 부른다. 비법인의 경우 법인과 달리 사업체 차원에서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수익을 할당받은 소유주들이 개인소득세만 내면 된다. 세금을 한 번만 내면 된다. 납세 의무가 사업체를 ‘통과’해서 소유주에게만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비법인 사업체를 ‘(세금) 통과 기업(pass-through)’이라 부른다.

미국의 개인소득세는 소득 규모에 따라 7구간으로 나뉜다. 당연히 수입이 많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현행 세법에서 연소득 ‘9275달러 이하’ 가구는 10%만 내면 되지만, 점점 세율이 인상되어 최고 소득 구간인 ‘41만5050달러 이상’ 가구에는 39.6%가 적용된다.

세금 측면에서는 비법인 사업체가 훨씬 유리하다. 어떤 업체의 연간 순이익이 1억 달러인데 법인이라고 가정하자. 법인세(35%, 3500만 달러)를 내고 나면 6500만 달러가 남는다. 이 돈이 주주들에게 배분되면, 그들의 개인소득이 된다. 6500만 달러에서 39.6%(최고 개인소득세율, 2574만 달러)를 납부하면, 주주들의 순소득은 3926만 달러에 그친다. 그러나 같은 업체가 비법인이라면, 1억 달러가 고스란히 소유주들의 개인소득으로 넘어온다. 소득세(39.6%, 3960만원)를 납부한 뒤에도 6040만 달러가 남는다.

국적 중심에서 영토 중심 징수 체계로 전환

트럼프 세제개혁안의 핵심은 연방 법인세율을 현행 35%(주 단위에서 부과하는 세금까지 합치면 38.91%)에서 15%로 절반 넘게 내리는 것이다. 비법인 사업체들이 소유주들에게 배분하는 금액에서도 현행 39.6%가 아니라 15%만 걷기로 했다. 비법인 부문의 세금 부담을 줄여 중소 자영업체들을 살리겠다는 대의명분이다.

미국의회연구소(CRS)에서 나온 보고서 〈법인세 시스템(The Corporate Income Tax System)〉에 따르면, 비법인은 단지 중소업체가 아니다. 헤지·사모 펀드나 로펌, 부동산 개발 업체(트럼프도 부동산 사업자임)처럼, 규모는 작지만 초고수익을 누리는 업종들이 주로 비법인으로 조직된다. 더욱이 2013년 말 현재 미국의 사업체 전체가 창출하는 수익(business income) 가운데 비법인 부문의 몫이 50%에 이른다. 대기업이 많은 법인 부문의 수익은 1980년에는 사업체 전체의 수익 가운데 80%에 달했다. 지금은 50%에 불과하다. 갈수록 법인 수가 줄고, 법인 부문 수익 및 세수도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추세다. 1952년(법인세 수입이 가장 높았던 해)에는 연방정부 세수 가운데 32.1%에 달했던 법인세 수입 역시 2013년에는 9.9%로 쪼그라들었다.


법인세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다수의 사업체가 절세하기 위해 비법인 형태로 설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제, 면세 등 법인세를 깎아주기 위한 수많은 세금우대 정책이 시행 중이기도 하다. CRS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법정(법률로 정해진) 법인세율은 OECD 평균(미국 제외)보다 10%쯤 높다. 그러나 납세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실효세율은, OECD 평균이 27.7%인 데 비해 미국은 27.1%로 오히려 낮다. 후한 세금 우대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과 비법인 부문의 세수를 모두 절반 이상 줄이면 재정적자만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10년 동안 2조2000억 달러 정도의 세수가 증발되리라 추정된다. 그러나 개혁안의 다른 부분을 보면, 트럼프는 법인세율 인하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체제 변혁을 노리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미국 세법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얻는 수익에 대해서도 법인세율 35%를 어김없이 징수하게 되어 있다. 미국 국적 기업이라면 어느 나라에 소재하든 세금을 받아낸다는, ‘국적 중심 징수 체계(resident based tax system)’다. 다만 해외 자회사의 경우, 현지에서 올린 수익을 미국 본사로 송환할(repatriate) 때까지 납세를 연기(defer)해준다. 이는 해외 수익을 미국으로 송금하지 않는 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에서 번 천문학적 수익을 조세회피처에 묻어두고 버티는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15년 말 현재 미국 기업(금융사 제외)들이 해외에 묻어둔 돈이 1조7000억 달러에 달한다. 국민소득 기준 글로벌 10위권 국가인 한국의 GDP(약 1조4000억 달러)를 웃도는 규모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해외 자회사의 수익을 미국으로 반입하면, 10%만 징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번 개혁안에도 포함했다. 다만 므누신 재무장관은 “해외에 묶인 수조 달러에 대한 세금을 내리겠다”라고만 밝혔다. 구체적 수치를 뺀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궁극적 목적은 ‘글로벌 기업에 대한 징수 체계’를 국적 중심에서 영토 중심(source-based tax system)으로 바꿀 심산이기 때문이다. ‘영토 중심’ 세제에서는, 미국 기업이 해외 자회사를 통해 올린 수익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만 미국 영토 내에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징수한다. 그러므로 영토 중심 세제를 채택하려면 법인세율을 파격적으로 낮춰야 한다. 세율이 낮으면, 해외 자회사에서 수익을 미국으로 송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굳이 트럼프가 공약한 10%까지 낮추지 않아도 된다. 더욱이 높은 법인세율을 피해 해외로 나간 미국 기업들이 돌아오거나 심지어 외국 기업들까지 빨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이 많아지면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트럼프 개혁안의 법인세율 15%는 OECD 최저 수준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4월28일)가 트럼프 개혁안을 “글로벌 세금 전쟁을 촉발한다”라며 거세게 비판한 이유는, 중국에 대한 해외투자가 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법인세율은 25% 정도다.

ⓒAP Photo4월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감세안에 중국은 우려를 나타냈다.

세제 개혁 실패하면 재정 악화 불가피

트럼프 행정부는 개인소득세에 대해 누진 구간을 7단계에서 3단계(10%, 25%, 35%)로 줄이는 한편 최고세율 역시 39.5%에서 35%로 내리자고 제안했다. 법인세율을 워낙 많이 내렸기 때문에 개인소득세율의 인하 폭은 공약(33%)보다 작다. 또한 최저한도세(세금 감면을 받더라도 최소한 납부해야 하는 금액)와 상속세, 고소득일수록 더 많이 내야 하는 ‘의료보험 추가세’ 등도 폐지할 계획이다. 자본소득세도 23.8%에서 20%로 인하한다. 〈뉴욕타임스〉는 “부유층은 물론 거의 모든 계층의 세금 부담을 완화했다”라고 세제개혁안을 평가했다.

그러나 가장 큰 혜택을 입을 계층은 단연 최고 부유층이다. 미국 유력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4월26일)에 따르면, 비법인 부문의 70%인 소규모 업체들은 이미 15% 이하의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수익의 30%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고수익 업체(펀드나 부동산 개발업 등)는 비법인 업체 가운데 2.4%에 불과하다. 이런 업체들의 소유주가 바로 소득 기준 최상위 0.01%인 ‘슈퍼리치’다. 〈뉴욕타임스〉(4월28일)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자신도 이번 개혁안이 통과되는 경우, 매년 최소 6000만 달러 정도의 절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상속세까지 폐지되면 트럼프 일가는 무려 12억 달러 정도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세제 개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계층은 최저 소득층이 될 것이다. 극빈층을 위한 무상 의료제도인 메디케이드 등 각종 복지제도가 우선 폐지 대상으로 거론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세제개혁안은 연방의회의 인준을 받아야 시행 가능하다. 그러나 부자 증세를 지향해온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과 트럼프의 ‘셀프 감세’ 논란으로 인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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