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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혼자서 회견문을 써내려갔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조연출이었던 이한빛씨가 마지막 촬영 날 현장에서 사라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비인격적 대우를 유서로 고발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7년 05월 16일 화요일 제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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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씨에게 아들은 존중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뉴스를 보다가도 어떤 사안에 대해 물으면 명쾌하게 이면의 진실까지 해석해주었다. 영화 <변호인>이 흥행할 때 변호인과 변호사의 차이를 설명해준 것도 아들이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성당에 다녀오면 내리쬐는 햇볕 아래, 183㎝ 장신의 아들이 빨래를 널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구석구석 캠퍼스 구경을 시켜주었다. 참 괜찮은 아들이었다. 잘 보이고 싶었다. 아들이 즐겨 보는 영화 잡지를 읽고 부러 질문을 던지던 것도, tvN 드라마 <혼술남녀>를 꼬박꼬박 챙겨본 것도 그래서였다. 얼굴 보기 어려운 날이 이어져 염려되었지만 어떤 선택이든 잘하리라 믿었다. 항상 존중했으니까. 지난해 10월 그 아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아들 이한빛씨는 2016년 1월 CJ E&M에 입사했다. 대학 4학년 때 PD의 꿈을 이룬 셈이다. 첫 작품이 tvN <혼술남녀>였다. 서울 노량진을 배경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과 학원 강사들의 삶을 그린 드라마다. 청춘의 삶을 위로하는 내용으로 시청률 5.8%를 기록(닐슨코리아 기준)하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7월5일 첫 촬영에 들어갔고 9월5일 첫 회가 방영되었다. 마지막 촬영이 있던 10월21일, 이 PD가 사라졌다. 10월25일 최종회가 방영됐고 그가 빠진 채 뒤풀이가 진행됐다. 다음 날 어머니 김혜영씨가 회사를 찾았다. 아들을 수소문하기 위해서였다. 한 시간가량, 선임 PD한테 아들이 불성실하고 비정규직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가 그에게 사과한 뒤 돌아선 날,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유서가 있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유서 중).’

ⓒ윤성희
고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씨는 아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다.
그 후 6개월간 김혜영씨의 일상은 단순했다. 교감으로 있는 중학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다. 자식의 죽음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동료들도 묻지 못했다. 퇴근 직후 아들이 안치된 성당에 가서 신에게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갔느냐’고 한 시간씩 울며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돌아와 밥을 밀어넣고 저녁 7시30분부터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더 이상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한 달 전기요금이 9000원 나왔다. 교직 생활 30여 년, 김씨는 스스로 소심한 데가 있고 패배주의 근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 도봉구 도봉동에 사는 그녀가 연락이 닿지 않는 아들을 찾으러 마포구 상암동을 찾았을 때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높은 빌딩이 많고 화려했다. CJ E&M 건물도 웅장했다. 대기업이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덤빌’ 수 있을까.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가슴 한구석 불덩이가 묵직해졌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 급작스러운 비보를 들은 김씨의 둘째 아들 이한솔씨는 위장크림도 지우지 못한 채 터미널로 향했다. 휴가 나올 때마다 시간을 쪼개 형과 일했던 스태프를 찾아갔다. 당시 상황을 물었다. 이한솔씨는 자신이 조합원으로 있던 청년유니온의 도움도 받았다. 이들은 이한빛 PD가 왜 6개월간의 회사 생활을 노동 착취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는지 조사했다. 고인의 휴대전화에 남겨진 채팅창을 읽고 통화 목록을 추적했다. 발신 내역이 90건 넘는 날도 있었다. 그사이 회사 측과 몇 차례 만남이 있었다. 회사 측은 학대나 모욕 행위가 없었다며 이 PD의 근무태도 불량을 지적했다.

ⓒ윤성희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에서 제보받은 드라마업계 노동 실태에 관한 내용.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 일 하는 거야”


이한빛 PD는 <혼술남녀>의 막내 조연출이었다. CJ E&M이 외주 드라마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방송사 조연출이 현장에서 제작사 스태프와 함께 움직였다. 막내 조연출의 업무는 광범위했다. 한 방송국 드라마 PD 출신은 “누가 할지 ‘애매’한 건 다 한다. 미술·소품·촬영·조명팀 등에서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하는 모든 건 조연출 몫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촬영 현장을 ‘동물의 왕국’에 비유했다. 연출자가 가장 상위 포식자라면 신입 조연출은 그 반대라고 보면 된다. 정규직이라도 마찬가지다. 경우에 따라 연차가 높은 스태프에게도 업무 지시를 해야 한다. 촬영 준비, 영수증 처리, 현장 준비 등 A부터 Z까지 조연출을 맡은 이한빛 PD의 몫이었다. 유족들은 분담할 수 있는 일조차 이 PD가 홀로 맡았다고 주장했다. 업계 종사자들에게 이한빛 PD의 소식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 3년차 방송국 PD는 “소식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아, 너무 이해된다’였다. 종방연까지 마친 뒤 자살을 선택했다는 게, 마지막까지 책임은 다하고 간 것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갑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환멸을 느꼈을 것 같다. 권위적 구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드라마 판에서 정신의 붕괴를 경험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제작 현장에서 고강도 장시간 노동은 기본이었다. 자체 조사 결과 이 PD는 55일 동안 이틀만 쉬었다. 새벽 2~3시에 들어와 한두 시간 자고 나갔다. 업계 은어대로 ‘디졸브’ 상태가 이어졌다. 밤샘 촬영을 계속해, 화면이 교차되듯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는 사이 다음 날이 온다는 의미다.

ⓒ연합뉴스
5월1일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이한빛 PD를 추모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이 PD 자살의 배경에 철저한 따돌림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고인이 남긴 휴대전화 채팅창에 욕설과 비난 글이 남아 있었다. 그가 실종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개인에게 따로 해도 될 말을 단체 창에서 했다. 선임 PD가 보낸 일부 대화가 공개됐다. ‘이 회사에 정직원이고 CJ인이고 하면 니가 일을 더 해야 돼’ ‘진짜 한 대 후려갈길 뻔했다.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지금 나가라. 일이 몰리긴 뭘 몰려. 원래 신입사원은 그런 일 하는 거야.’

애초, 이 PD가 비정규직을 무시했다는 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PD는 세월호 유가족, 기륭전자 노조,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 등에 후원금을 내고 있었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이 적금 먼저 들었으면 했지만 옳은 일이라 말리지 못했다. 이 PD는 한때 인권단체 활동가를 꿈꿀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도 높은 편이었다.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갑작스레 해고된 계약직 스태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유서에는 관리자로서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부분이 남아 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유가족들은 지난 6개월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4월18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청년유니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비롯해 28개 단체가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를 꾸려 함께했다. 회견 닷새 전, 아버지 이용관씨가 갑작스레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간 둘째 아들 이한솔씨와 함께 대책위 활동을 주도해오던 터였다. 의사는 간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아버지 이씨는 매일 밤, 아내가 잠든 걸 확인한 뒤 술을 마셨다고 의사에게 털어놓았다. 이씨는 아내에게 “한빛이 그렇게 갔는데 나까지 이렇게 되어 미안하다”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김씨가 남편 대신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A4 한 쪽 반짜리 회견문을 쓰는 데 3시간이 걸렸다. 국어 교사인 그녀는 ‘유감’이 맞는지 ‘애도’가 맞는지 적확한 단어를 고르느라 고심했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말하자”

지난 4월24일, 서울 신촌 한 문화공간에서 김혜영씨가 아들 또래의 청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제자들, 아들의 친구들,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는 20대가 고인과 김씨 부부에게 위로의 편지를 전했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가정의 아이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 또 이런 일을 겪어선 안 된다. 노력하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 여기는 젊은이들이 꿈을 접고 좌절하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지난 6개월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PD의 지인들에게도 긴 시간이었다. 권준희씨는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PD를 처음 만났다. 권씨가 한 학번 아래였지만 선배인 이 PD는 말을 놓으라 했고 이후 친구로 지냈다. 권씨는 고인이 남긴 글을 모아 추모집을 만들었다. 군대 선임이었던 유지필씨는 지난해 2월 CJ 임직원 카드를 자랑스럽게 내밀던 이 PD를 기억한다. 입대가 늦은 편이었던 이 PD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병장들의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밤새 수정해주기도 했다. 유씨에게는 직접 쓴 드라마 원고를 읽어보라고 건넸다. 이 PD는 군대에서 토익 시험을 준비했고 한류에 대비한다며 인터넷으로 중국어 강의도 들었다. 가족들은 군대에서라도 머리를 비우고 단순하게 살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대학 동기인 강희연씨(가명)는 친구의 죽음 이후 지금껏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 PD는 행사를 잘 기획하고 집행 능력도 뛰어난 친구였다. 이한빛 PD는 2011년 서울대 법인화에 반대해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할 당시 TF팀장으로 활동했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때 동고동락했던 강씨 역시 졸업 후 외주 제작사 PD로 일했다. 이 PD의 입사 즈음, 방송국의 ‘갑질’ 관행에 환멸을 느껴 일을 그만두었다. 이한빛 PD는 생전 친구들에게 SBS <청담동 앨리스>를 예로 들며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강씨는 “바빠서 연락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술 한잔만 같이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후회된다. <혼술남녀>가 술 한잔 기울이며 위로받는 드라마인데 정작 본인은 그러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제작 현장으로 돌아가 친구와 자신을 괴롭히던 관행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대책위는 CJ E&M에 책임 인정과 사과, 책임자 징계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소수의 가해자를 색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을 야기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CJ E&M 관계자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부적절한 것 같다. 공식 입장대로 애도를 표하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겠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교장 승진을 앞두고 연수 중이던 김혜영씨는 4월28일 오전 ‘이한빛 PD 시민 추모문화제’를 알리는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처음이었다. 동료 교감들이 뒤에서 무슨 말을 할지, 연락하면 부담을 주는 게 아닌지 망설여졌다. 공론화된 이후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상처를 확인하는 게 괴로웠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게 아들을 부활시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날 저녁 상암동에 추모 인파가 모였다. <혼술남녀> 제작에 함께한 스태프 중 한 명이 편지를 보내왔다. ‘누군가를 험담하고 밟으며 친목 다지는 현실에 거리를 두고 항의하던 한빛군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늘 최선을 다해 진심 다해 행동했다는 거 기억할게.’ 어둠이 내려앉은 상암동, 참가자들이 하나둘 촛불을 켰다. 맞은편 19층 높이의 CJ E&M 건물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색색의 LED 불빛이 바람에 위태로운 촛불을 압도했다. 유리벽 너머 건물 안, 서너 명이 한때 동료였던 이의 추모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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