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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 앞에서 그들이 통곡하는 이유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집요하게 쫓는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즈음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2017년 05월 17일 수요일 제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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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가 찢겨나갔다. 처음 걱정은 박근혜 지지자였다. 포스터를 만들 때 그들 중 누가 봐도 괜찮도록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박근혜의 모습에 꽃 장식까지 갖춘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죽을 만큼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영화가 처음 공개된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에서 포스터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짐작 이상으로 갈리겠구나 싶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만든 김재환 감독은 성역과 싸워왔다. 방송사에게 영원한 ‘을’인 외주제작사 대표 처지에 <트루맛쇼>(2011년)를 통해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폭로해 미디어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MB의 추억>(2012년)은 심지어 현직 대통령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에게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라며 돌직구를 날리는 영화 <쿼바디스> (2014년)를 보고 나면, 그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작품마다 개봉은 쉽지 않았고, 흥행은 더더욱 난망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센 자를 건드리고, 만들고 나면 꼭 고생하는” 작업을 되풀이해왔다.

김재환 감독이 이번에 마주한 성역은 ‘박근혜’다.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육영수와 박근혜를 따르는 뜨거운 지지자들이다. 지난해 8월15일 육영수 서거일부터 올 3월 박근혜 탄핵 심판 때까지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는 10월26일 박정희 38주기에 맞춰 정식 개봉을 앞두고 최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시사IN 조남진
김재환 감독(위)은 성역과 싸워왔다. 이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다룬 <미스 프레지던트>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긴장이 역력해 보였다. 밥줄이었던 공중파 방송이나 대형 교회를 비판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박근혜 지지자 미화라며 비판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자신을 조롱했다며 반발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영화는 인간극장처럼 흘러간다. 매년 10월26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머리 감고 로션 바른 뒤 의관 정제하고 박정희기념관으로 떠나는 노인,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그렁거리는 국숫집 부부 이야기에 밀착했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탄 전세버스에 동행하기도 했다. 전작에서 보였던 재기발랄한 풍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적잖은 상징과 은유가 숨어 있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탄핵 반대 집회에서 연단에 올라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하고 순박한 어른들이다. 어쩌면 가장 비정치적인 삶을 살아오다 어느 순간 정치적 상징이 되어버린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왜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까?

‘그들’이 가장 빛났던 시절에 대한 자부심


김재환 감독은 박정희 시대야말로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장 미싱 앞과 아랍의 사막에서 자신의 청춘을 다 보냈지만, 적어도 그때는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청춘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박정희 시대에 관한 실질적인 팩트를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다. 그들 내면에는 자신을 ‘산업역군’으로 불러준 지도자와 함께 고도성장 시대를 이끌었다는 자부심, 혹은 판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왜 이 영화 제목이 <미스 프레지던트>인지 알게 된다. ‘미스’는 ‘myth(신화)’일 수도 있고, ‘miss(놓치다, 그리워하다)’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10·26을 이야기하면서 등장인물이 울어요. 그때 그가 우는 건 박정희의 죽음이 슬퍼서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면서 ‘나 정말 고생 많았다’라며 울먹여요. 자신을 박정희와 동일시하는 거예요. 그 시대에 가장 고생한 사람들이 박정희의 죽음을 애도하고 박근혜의 탄핵을 못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퍼요.”

ⓒ시사IN 조남진
<미스 프레지던트> 포스터가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전주 완산구 일대 곳곳에 붙었다. 일부 포스터는 훼손되기도 했다.
영화에는 미국 남북전쟁 때 많이 불렸던 음악 ‘즐거운 나의 집’이 세 번 흐른다. 영화 시작할 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때, 그리고 탄핵 심판 이후 박근혜가 삼성동 집으로 돌아갈 때다. 그의 문제의식은 처음부터 그것이었다. 과거를 붙잡으며 지금껏 박근혜를 지지하는 그들에게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인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거대한 빙하예요. 수면 아래 무엇이 잠복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촬영하면서 저도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이분들은 결국 안 변할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분들을 버리고 가야 하나. 어쩌면 우리가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대화의 기술을 익혀서라도 그들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원래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의 정신분석을 중요한 축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영화 촬영 중에 탄핵 국면이 펼쳐졌다. 국정 농단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굳이 정신분석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관련 전문가 인터뷰 대목을 다 들어내니, 온전히 박근혜 지지자 이야기가 남았다.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2004년부터였다. 김 감독은 당시 총선 관련 다큐를 찍기 위해 한 달 동안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를 따라다녔다. 놀랍게도 그때 이미 박근혜를 신격화하며 절하는 사람을 목격했다고 한다. 2004년은 박근혜와 그 지지자에게 중요한 해였다. ‘차떼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망가진 보수 정당을 일으켜세운 박근혜의 모습은, 그 아버지 서사와 일치했다.

2004년 김 감독이 처음 만난 그들은 생기가 넘쳤다. 메시아가 재림했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적 맹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017년 그들은 쇠약해졌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다. 영화에서 박정희 동상에 절을 올리던 노인은 탄핵 직후 “내 미약한 몸이나마 (던져서) 대항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약자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박정희 동상에 절을 올리던 노인은 탄핵 직후 “내 미약한 몸이나마 대항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일방적이다. 일당 몇만원을 받는 동원 대상으로 보거나,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이라 여긴다. 우리 사회의 노인 혐오 정서와 맞물려 이런 분위기는 점점 더해간다. “우리가 어떻게 이 역사를 청산할 수 있을까요?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정리될까요? 1979년 10월27일 새벽에 박정희의 사망 소식을 듣고 환호한 대학생 가운데 정규재씨도 있었어요. 정규재TV의 그 사람 말이에요. 과거 박정희라면 치를 떨던 어떤 사람은 나중에 박정희가 우리 사회 발전의 밑거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 사람이 전원책 변호사예요.”

영화에는 박정희 동상이 자주 등장한다. 전국 각지의 모든 박정희 동상을 다 찍겠다는 각오로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은 물에 비친 박정희 동상이다. 영화 속에서 어떤 동상은 바로, 어떤 동상은 거꾸로 비친다. 김재환 감독은 물에 비친 박정희 동상을 보고 또 봤다. 눈이 아플 지경으로 이 장면을 보다 문득 박정희 동상이 말을 걸어온다고 느꼈다. “다 끝난 것 같지? 과연 그럴까?”

5월2일 밤 영화제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불길한 예언’을 하나 내놓았다. 지금처럼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할 경우, 어떤 정치세력이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보라, 저들이 당신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표를 모을 겁니다. 촛불집회로 세상이 다 바뀐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요?”

실제로 김 감독은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박사모’가 가장 큰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이 접한 박근혜 지지자 중에는 온건·합리적 보수에 속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탄핵 과정에서 극우 세력이 이들을 다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바른정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미스 프레지던트>가 개봉되는 10월26일 무렵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다. 20일 뒤인 11월14일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바뀐 정권 아래서 퇴행과 반격, 또는 ‘한풀이’가 시작될 공산이 크다. 김 감독은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 개봉 시점을 잡았다. 어지럽게 펼쳐질 공론의 장에서 이 영화가 작은 구실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 감독은 출연진을 포함한 박근혜 지지자를 불러 영화 개봉 전 시사회를 열 생각이다. 감독으로서는 이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장 궁금하다. 5·16 쿠데타가 거론되는 첫 장면부터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갈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면 좋겠어요. 나의 믿음은 과연 믿을 만한가. 그리고 이건 그분들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김재환 감독은 2012년 <MB의 추억>을 개봉할 당시 5년에 한 번씩 대통령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현직일 때 개봉하겠다고 말했다. 비록 현직은 아니지만 <미스 프레지던트>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에 관한 영화도 5년 안에 만들어지리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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