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가 떴다. “4월29일 토요일 오후 12시30분까지 시청역 5번 출구 앞 118호 텐트로 나와달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니 태극기를 든 노인 1000여 명 가운데 단톡방(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의 20~30대로 보이는 9명이 있었다.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선글라스를 썼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국면에서 ‘국민저항본부’로 바꾼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cafe.daum.net/parkgunhye)의 20~30대 회원들이다(리더 이군로씨를 제외하고 이 글에 등장하는 닉네임은 모두 가명이다). 박사모의 ‘2030 박사모 청년 포럼’ 구성원 40여 명은 단톡방에서 정보와 의견을 나눴다. 이날도 단톡방을 보고 모였다. 기자는 탄핵 결정 전날인 3월9일부터 이들이 4월29일 ‘국민저항본부 2030 오픈 채팅방’으로 옮아가기까지, ‘박사모 2030’ 카톡방 일원으로 참여했다.
단톡방 가입 절차는 까다로웠다. 박사모 카페의 ‘★2030박사모청년포럼★’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에 비밀 댓글로 이름과 나이·주소·연락처를 남겨야 했다. 댓글은 박사모 카페 정회원만 달 수 있다. ‘승급’한 뒤 비밀 댓글로 정보를 남긴 지 몇 분 후, ‘박사모/국민저항본부 2030’의 대표를 맡고 있는 리더 이군로씨한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이씨는 “태극기 집회 자주 참여하셨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혼자라서 가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샤이 보수들이 많죠. 저희 청년들은 계몽 활동에 힘쓰는 단체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몇 가지 ‘검증’을 거쳐 단톡방에 입성했다.
“서울에서 애국하시는 전광준님이십니다”라고 리더 이군로씨가 나를 회원들에게 소개했다. 이들은 ‘애국’이라는 단어를 즐겨 썼다. ‘애국청년’ ‘애국시민’ ‘애국활동’ ‘애국보수’…. 이들의 애국 활동 중 하나가 ‘산업화’였다. 처음에는 산업화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들에게 산업화란 “남이 욕하니 따라 욕하지만 정치적 이념이 없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뜻했다. “조금씩 주위분들 산업화시키죠ㅎㅎ 정말 친한 분들부터 시작하면 되요^^ (중략) 궁금하면 또 물어봐요ㅋㅋㅋ 그럼 절대 말해주지 마시구요 직접 찾아보게끔 유도해주세요.” 이들에게 ‘산업화’는 “내 조국”이라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3월9일 단톡방 입성 12분 만에 글이 하나 공유됐다. ‘[여론조사]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라는 제목의 글은 황교안 총리와 자유한국당의 ‘현장 여론조사’ 지지율을 32%로 소개했다(해당 시점인 3월 2주차 자유한국당과 황 총리 지지율은 갤럽 기준 각각 11%, 6.9%였다). 글쓴이는 이 글을 ‘KBS 단톡방’에 올라온 기사라고 했다. 이렇게 이들이 공유한 ‘뉴스’ 중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게 많았다. ‘홍석현은 간첩 중의 간첩’이라는 취지의 글도 그랬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서 퍼온 글들만 대개 일베라고 출처를 밝혔다. ‘2008년 경찰간부 90%, 2007년 경찰공무원 7급 100%가 5·18 유공자’ 따위다. 닉네임 ‘박제우’는 “일베 정치게시판은 꼭 보시기 바래요. 저희가 보고 싶은 뉴스나 이슈 다 올라옵니다. 따로 뉴스 안 보셔도 돼요”라고 단톡방에 글을 올렸다.
탄핵은 언론에 세뇌당한 이들의 책동?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했다. 이들에게 탄핵은 “언론에 세뇌당한” 이들의 책동이었다. “(탄핵 찬성 시민들이) 깨시민인 척 정의니 평화니 좋은 단어는 다 가져가버리는 게 제일 짜증” 난다는 이들에게 단톡방은 “제 또래에 이런 분들 멸종한 줄 알았는데 신기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단톡방은 또한 혐오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들은 “10년 동안 전교조 선동당한 뇌에 우동사리 쑤셔넣은 골빈 좌좀”과 달리 진실을 아는 ‘우파’라고 스스로를 믿으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북한의 김정은을 합성한 ‘적화통1’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공유하고 노란 리본을 “세월충 리본”이라 경멸했다.
탄핵 결정 후 이들의 관심은 차기 ‘대통령 감’으로 옮아갔다. 이들은 단톡방에서 김진태·남재준·변희재·정미홍 등을 ‘그들만의 후보’로 꼽았다. 4월8일에는 조원진 의원이 박사모 등과 창당한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리더 이군로씨도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맡았다. 이들은 조원진 후보 유세가 있을 때마다 일정을 공유해 모였다.
“조원진 의원 대선 나오시면 지지율 웬만큼은 다 빨아들일 거 같은데ㅎ”라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조 후보의 지지율은 1~2%에 머물렀다. 이들에게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비판 대상이다. 그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 주장이 제기되었다. 4월28일 ‘선우’가 “온 힘을 다해 조원진 의원님을 민다면 조원진 의원님이 당선되실 수 있을까요?”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리더 이군로씨는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어도 대법원에서 유죄판결 내리면 끝이다”라며 조원진 완주 논리를 폈다. ‘선우’는 대선이 일주일 남았다며 ‘현실론’을 내세웠다. 결국 ‘선우’는 “2030 청년분들 한분 한분 정말 사랑하고 아껴요”라며 새벽 1시36분 카톡방을 나갔다. 4월28일 저녁 11시부터 4월29일 오전 7시까지 8시간가량 이어진 논의는 ‘조원진 후보로의 단일화’로 잠정 결론 났다. 그사이 5명이 카톡방을 나갔다.
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4월29일은 이 ‘단일화 논의’가 끝난 직후였다. 이날 카톡방 개편 의견이 제기됐다. ‘박제우’는 단일화를 말하는 ‘분탕종자’가 많다며 조원진 후보만 지지하는 카톡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협’은 리더 이군로씨에게 ‘오픈 카톡방’을 제안했다. ‘강퇴’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이날 저녁 10시19분, 리더 이군로씨가 ‘국민저항본부 2030’ 오픈 채팅방과 비밀번호를 공지했다. 다음 날 그가 “이 시간부로 이 채팅방을 나가주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기존 단톡방에서 삽시간에 20명 가까운 사람이 나갔다. 하루에 메시지 300여 개가 쏟아지던 카톡방에 더 이상 ‘1’이 뜨지 않았다. “이념과 철학이 같은 동지”인 이들은 몇 차례 균열을 겪은 뒤 모임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강퇴’가 가능한 오픈 채팅방으로 옮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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