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신은미씨의 행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심 사항’이었다. 신은미씨는 2014년 12월 북한 방문 경험을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은 이를 ‘종북 강좌’라고 비판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신씨는 2015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법무부는 이후 그녀를 강제 출국시켰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몇 번의 북한 방문으로 얻은 일부 편향된 경험을 북한의 실상인 양 왜곡 과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말해 수사 지침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 후 1년10개월이 지난 2016년 10월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 신은미씨를 언급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신은미 좌파 수해 모금. 국민은행으로 모금 1700만원. 미국 모금. 국내 모금 계좌 살아 있다. 현행법으로는 자금 세탁방지 저촉 X, 법률 사유에 의해서. 금융정보분석원. 불법 의심→FIU(아래 그림).’

2016년 8월29일부터 9월2일까지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두만강이 범람해 130명이 넘는 주민이 사망하고 395명이 실종되었다. 신은미씨는 9월 중순부터 10월11일까지 국민은행, 유에스뱅크, 페이팔 계좌를 통해 북한 수재민 지원 기금 모금활동을 진행해 약 3779만원을 모았다. 2016년 9월23일, 신은미씨는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국민은행 계좌로 모인 돈을 곧 중국을 방문할 국내 거주 친척에게 송금하려 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이를 거부했다. 신씨는 〈시사IN〉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국민은행 측은 법적인 근거도 대지 않고 ‘자금활용계획서’라는 걸 요구했다. 법적 자문을 한 결과 개인 계좌에는 자금활용계획서를 요청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북한 방문 경험을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었던 신은미씨(위)의
북한 수해 모금액에 대한 지시가 적혀 있다.

 


신씨는 미국에서 아포스티유(영사 확인을 거치지 않고도 외국 공문서를 인정하는 국제협약) 확인을 거친 공식 위임장을 작성해 법무법인에 국민은행 계좌 관련 권한을 위임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위임장 내용이 미비하다”며 법무법인의 송금 및 인출 요구도 거부했다. 신씨는 2016년 10월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처음으로 국민은행의 송금 거부 사실을 밝혔다. 사흘 뒤인 10월13일, 신씨의 권한을 위임받은 법무법인이 국민은행에서 돈을 인출했다. 관련 기사가 나면서 논란이 일어난 뒤였다.

국민은행 측은 청와대 외압설 부정

그런데 안종범 업무수첩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신씨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일주일 전인 2016년 10월3일에 관련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신은미씨는 “10월1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전까지 언론과 관련 인터뷰를 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뒤 안종범 전 수석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시 내용에 나오는 ‘현행법’ 부분은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의 1의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은행은 ‘불법재산이라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거나, 금융거래 상대방이 자금세탁 행위나 공중협박자금 조달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합당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 이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안종범 수첩에도 나오듯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아 신씨의 인출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은행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신씨의 최초 인출 요구를 막았다. 청와대 외압 여부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자금세탁 방지 내용은 처음 듣는다. 당시 대리인이 가져온 위임 서류가 미비했을 뿐이다. 청와대로부터 연락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특별취재팀 (주진우·김은지·김연희·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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