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창군기념일인 4월25일 오전, ‘전투기 소리’ ‘전투기 굉음’ 따위 용어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에 자주 거론되었다. 서울 강남 지역 상공으로 전투기들이 편대로 비행하면서 울려 퍼진 굉음이 ‘드디어 전쟁이 터졌나’ 하는 공포로 이어진 것이다. 공군은 ‘오는 4월 말 잠실운동장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를 위한 에어쇼 연습 비행’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에어쇼 연습으로 위장한 폭격 준비 아니냐’라는 의혹까지 나왔다.

이유 있는 공포였다. 같은 날 북한은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장사정포 훈련을 실시했다. 6차 핵실험 대신 서울과 수도권에 시간당 1만여 발 포격을 가할 수 있는 장사정포로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다. GDP 기준 세계 10위권인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전쟁 발발 가능성에 전율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북한과의 대화 경로를 차단한 채 강경책으로 일관해왔다. 야권 전체를 ‘종북 세력’으로 몰아붙여 국내 정치권력 투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신기할 만큼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써온 것이다. 같은 기간 북한은 오히려 4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전쟁 능력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5월9일 대선에서 야권이 정권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 정부에서는 국방력 강화와 함께 남북 교류 강화가 다시 대안으로 떠오르리라 예상된다.

ⓒ연합뉴스2006년 6월22일 주한 외국인 기업인들이 북한 개성공단 내 한 의류 제조업체를 살펴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북한과의 교류협력 재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문 후보의 남북 교류협력 공약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는 보수 후보들의 집권보다 오히려 훨씬 ‘위협적’일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겠다며 개혁·개방이란 용어도 금기시해왔다. 문재인 후보는 북한 관련 공약으로 ‘남북관계 재정립과 북한 변화’를 제기하고 있다. 남북한을 ‘하나의 시장으로 경제통합’ 해나가는 방법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이야기다.

그 핵심 수단은 개성공단이다. 문 후보는 개성공단을 지금의 100만 평(약 3300만㎡)에서 2000만 평(약 6600만㎡)으로 확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엄밀히 말하면 확장이 아니다. 2002년 현대아산과 북한 간에 합의되었던 계획의 뒤늦은 실현이다. 당초 계획에는 개성공단을 1단계의 100만 평(현재 공단)에 이어 250만 평(2단계), 2000만 평(3단계)까지 순차적으로 넓혀 나가게 되어 있었다. 이 2000만 평은 공단 800만 평과 신도시 1200만 평으로 나뉜다. 신도시는 100만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거주 시설과 문화·관광·상업지구 등으로 설계되었다.

보수 정권과 보수 정당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북한 측에 내는 세금이나 임금(달러로 지급)이 노동당 정권으로 넘어가 핵무기 개발에 사용됐다고 주장해왔다. 입주 기업들이 낸 세금 규모는 크지 않다. 세율이 14%에 불과한 데다(한국은 20~22%), 상당수 기업은 수익을 낸 뒤 5년 동안 면세 혜택을 입는다. 2010년을 훌쩍 넘겨서야 비로소 입주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북한에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 더욱이 월 150달러(약 17만원)에 불과한 임금은 해당 노동자 가구의 식료품을 해외에서 수입·조달하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최근까지도 북한 내에서는 곡물 등 식료품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았다). 북한 당국이 임금 가운데 노동자들의 식료품 몫을 제외한 뒤 어느 정도를 빼돌려 핵무기 개발에까지 사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AP Photo4월11일 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옆에서 한 남녀가 환전을 하는 모습.
오히려 개성공단이 시장경제를 북한에 전파하는 구실을 해왔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다. 단적인 사례로, 한국 측 입주 기업들이 생산활동을 벌여온 100만 평 부지에서는 마치 시장경제 시스템처럼 부동산 거래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전 국토가 국가 소유다. 부동산을 사고팔 수 없다.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최초로 ‘토지이용권’ 제도를 시행했다. 입주 기업이 북한 국가로부터 토지를 빌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다. 토지를 빌리는 것 자체는 대단치 않게 보이지만, 그 임차 기간이 50년이라면 어떨까. 더욱이 빌린 땅을 다른 기업에 팔거나 빌려주거나 심지어 자금 융통을 위한 담보로 잡힐 수 있다. 양도·임대·저당이 모두 가능하다면, 입주 기업들은 ‘사실상의 소유권’을 누린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토지이용권 활용 경험을 바탕으로 2009년에는 ‘부동산관리법’을 제정했다. 핵심은, 경제활동에 토지를 활용할 권리를 ‘공민(일반 인민)’에게까지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북한에서는 국영 기업소, 협동조합 등 사실상의 국가기관만이 이런 권리를 갖고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북한 내륙으로 시장주의 제도가 전파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성공한 시장주의 제도들 가운데 일부를 이후 개설한 경제특구(황금평·위화도, 나진·선봉)에서 법제화했다. 북한 내륙에서도 생필품은 물론 중간재, 물류, 금융, 부동산 등에서 시장이 자생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들이 수익 창출을 위해 사업을 벌이고 이를 당국이 암묵적으로 용인한 것이다. 한국의 시장경제 운영 노하우가 특구를 경유해서 북한 내륙으로 들어가 시장 발전을 촉진하고 제도화할 수 있다. 북한에는 개성공단 외에도 13곳에 이르는 경제특구가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문재인 후보는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에 시장경제를 확산시켰다”라고 평가했다.

국가 소유 땅을, 개성공단에서는 사고팔았다

심상정 후보 역시 남북의 ‘평화 번영’으로 가는 수단으로 개성공단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한다. 심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함께 ‘개성공단 재개’ 및 ‘2·3단계로의 확대’를 주장했다. 다만 심 후보는 ‘남북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 같은 전망은 제시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간 측면도 있다. 북한 내륙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대한 언급이다. 북한은 대도시 아파트의 경우에도 엘리베이터를 24시간 내내 가동하지 못할 정도로 SOC(도로·철도·항만·공항·발전시설·수도·도시가스 등)가 열악하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주장하는 신창민 한우리통일연구원 이사장의 저서 〈통일은 대박이다〉를 보면, 신 이사장은 한국 GDP의 1%를 “통일까지 조건 없이 매년 지속적으로 북측 SOC 기반 건설에 투입”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의 GDP는 1조4000억 달러 수준인 데 비해 북한의 그것은 300억 달러 내외다. 한국 GDP의 1%(140억 달러)가 북한 GDP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전폭적인 SOC 지원은 북한 인민들에게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풀고 막대한 경제력 격차를 피부로 실감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신 이사장은 내다본다. 심상정 후보는 스케일이 좀 더 크다. 일본에서 한국과 북한을 경유해 러시아·중국에 닿는 철도·도로·가스관 등 국제적 SOC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물론 해외 자본까지 참여하는 초대형 국제 투자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가능한 이야기다.

다른 대선 후보들은 남북 간 경제 교류에 대한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강력한 대북한 제재와 더불어 대화(6자회담과 4자 평화회담)를 병행한다는 노선이다. 안 후보는 “남북관계 개선-북핵 해결-평화체제 수립이 선순환하는 원칙에서 대북정책을 구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그는 햇볕정책 계승이나 개성공단 재개에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4월13일 한국기자협회와 SBS가 공동주최한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안 후보는 개성공단에 대해 “유엔 제재 국면으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과 시기에 협상 테이블을 만들면 거기서 일괄적으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대북정책에 관한 한 일심동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완벽하게 계승하고 있다. 한국에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는 등 군사적 수단은 물론이고 전방위적 대북 제재 및 압박으로 북한을 비핵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민정-민자-한나라-새누리 등으로 이어진 보수 정당이 선거 때마다 내놓기는 했던, 의례적인 남북 교류 방안도 공약집에 전혀 담지 않았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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