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이지 않은 이들에게 모욕당할 때보다 정의로운 이들에게 배제될 때 더 참담했다. 상스러운 욕설과 근거 없는 비난, 비하에는 같이 욕이라도 할 수 있었다. 어차피 보편적인 판단이 아니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목표가 같은 이들이 부주의할 때, 무심히 조롱할 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점잖게 타이를 때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도록 저마다의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이들 덕분이다. 그동안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인 몇몇 여성들을 향한 풍자와 비난과 조롱이 넘쳐났고, 그것이 사건에 관한 것인지 인물에 관한 것인지 여성이라는 성별에 관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혼인 여성 대통령은 ‘미스 박’이라 불렸고, 관련된 여성들에게는 ‘~아줌마’ ‘~년’이라는 말이 호칭처럼 붙었다. 사람들은 구속되는 여성 피의자들의 초라해진 외모를 비웃고, 성적인 루머를 흥밋거리로 소비했다.

여자들이 나라를 망쳤다고 했다. 이제 여성 지도자는 뽑아주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동안 남성 지도자의 과오를 숱하게 보았고, 그들의 폭력에 맞서 싸워온 이들이 그렇게 말했다. 여성들의 성취는 특수한 한 개인의 것이 되는데 일부 여성들의 잘못은 여성이라는 성별의 특징이 된다. 편견을 지적하고 불편한 감정을 토로하는 여성들에게는 비난과 비아냥이 돌아왔다. 그런 이야기는 다음에 하라고 한다. 하, 그놈의 ‘다음에’.

 

 

 

ⓒ시사IN 신선영지난해 5월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OECD 국가 중 ‘유리천장’이 가장 심한 나라로 올해도 대한민국을 꼽았다. 여성 임원 비율은 고작 2%, 여성 임금은 남성 대비 63%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집계했는데도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이 82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이 105명이었다. 이틀에 한 명꼴이다. 여자라서 욕을 먹었고, 여자라서 월급을 덜 받았다. 걸어 다니는 자궁 취급을 받기도 했다. 여자라서 위협을 당했고, 여자라서 죽었다. 여자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다음이 있을까.

오늘도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를 줍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세상이 잔잔한 바다였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크고 작은 해일이 너울대는 바다였다. 해일은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일 뿐이고, 해일이야 오건 말건 목숨 걸고 조개도 줍고 미역도 따야 살아갈 수 있었다. 그 용감하고 단단한 태도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리라 믿는다.

투표의 목표와 의미는 유권자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사람에게 표를 주고, 누군가는 정당에 표를 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치관에 표를 준다. 나는 여성 유권자이고 페미니즘에 투표할 것이다. 5월9일을 기다린다.
 

 

기자명 조남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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