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대선 기간, 미디어 의존도는 높아졌다. 텔레비전 토론이 열리는 날이면 후보들은 대외 일정을 최소화하고 토론 준비에 열중한다. 합계 시청률 최고 38%까지 기록한 텔레비전 토론은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텔레비전 토론 같은 공중전만으로는 부족하다. 백병전에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백병전’이란 각 지역 물밑 선거운동을 뜻한다.
각 정당이 동원할 수 있는 지역조직, 인적 네트워크는 대선의 숨은 힘이다. 법적 허용범위 내에서 유권자와 물리적인 접촉을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가 당의 역량이다. 〈시사IN〉은 공직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각 정당이 얼마나 지역조직이 탄탄한지, 어떤 지역에서 얼마나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지 살펴보았다.
■베이스캠프 있어야 운동을 하지
선거에 투입되는 물적 자원은 크게 세 종류다. 물리적 공간, 사람, 홍보 수단이다.
물리적 공간(사무실)은 선거법상 ‘선거연락소’에 해당한다. 연락소는 지역 선거운동의 거점이다. 법적으로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 공직선거법상 각 정당은 전국에 총 339개(시·도 17곳, 시·군·구 322곳) 연락소를 둘 수 있다. 정당들은 대개 각 지역·당협위원회 사무실을 연락소로 활용하고 있다. 기존 당 조직의 물리적 거점을 그대로 선거에서 이용하는 것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조직력이 약한 정당은 대선을 위해 급히 연락소를 새로 설치한다. 아예 연락소를 만들지 못하는 지역도 생긴다.
4월24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333개, 자유한국당이 332개, 국민의당이 334개, 바른정당이 194개, 정의당이 262개 선거연락소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그림 1〉 참조). 바른정당은 광주와 울산(각각 최대 9개 설치 가능)에 겨우 시·도 선거연락소 한 곳만 두었다. 이 지역 시·군·구 선거연락소는 전무한 상태다. 정의당 역시 총 20개 연락소를 설치할 수 있는 강원 지역에서 겨우 6곳으로 선거를 치른다. 연락소 숫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조직의 열세를 의미한다.
발로 뛰는 ‘선거사무원(선거운동원의 법적 표현)’은 선거연락소별로 ‘사무원 쿼터’가 있다. 각 시·도 선거연락소는 지역 내 시·군·구 수만큼, 각 시·군·구 선거연락소는 해당 구역 내 읍·면·동 수만큼 선거사무원을 둘 수 있다. 연락소를 설치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선거사무원을 따로 둘 수 없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연락소가 적다는 것은, 발로 뛰는 선거사무원 역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보 수단 역시 마찬가지다. 건물에 매다는 대형 플래카드는 그 건물에 연락소가 있어야 설치할 수 있다. 유세 차량도 법적으로 연락소마다 한 대씩만 둘 수 있다. 특정 후보가 특정 지역에 연락소를 두지 않을 경우, 주민과 접촉해 선거운동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다다익선, 지방의원
선거연락소를 모든 지역에 설치했다고 가정할 경우, 각 정당이 법적으로 등록 가능한 선거사무원은 최대 3931명이다. 아무리 선거 자금이 넉넉하더라도, 무급으로 일할 당원·자원봉사자가 많더라도 당이 동원할 수 있는 물적 자원의 ‘최대치’가 제한되어 있다. ‘돈 선거’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당마다 지역별 쿼터 외에 ‘추가로 등록할 수 있는 선거사무원’이 있다. 일종의 ‘플러스알파’인데 선거법상 △국회의원 △국회의원 보좌진 △유급 정당 직원 △지역의회(광역·기초) 의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조건을 갖추는 인물은 지역별로 제한되어 있는 선거사무원 숫자에 포함되지 않고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인적 물량’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서울시를 예로 들어보자. 서울시는 시·도 연락소 1곳, 시·군·구 연락소 49곳을 둘 수 있다. 선거법에 따르면 각 정당은 서울시에 위치한 연락소 50곳에서 총 473명까지 선거사무원을 둘 수 있다. 이 기준만 놓고 보면 서울 시내 모든 지역에 연락소를 설치한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 간 격차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광역·기초의원의 숫자를 따져보면 사정이 다르다(36~37쪽 〈그림 2〉 참조).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 지역 광역·기초의원은 총 266명(시의원 70명, 구의원 196명)이다. 반면 자유한국당 소속은 총 175명(시의원 17명, 구의원 158명), 국민의당 소속은 총 34명(시의원 8명, 구의원 26명), 바른정당 소속은 총 30명(시의원 10명, 구의원 20명)이다. 정의당은 구의원 1명이 전부다. 바른정당(37개)과 정의당(42개)은 선거연락소가 다른 정당(50개)에 비해 적은데 선거운동이 가능한 광역·기초의원 수도 적다. 선거연락소 50곳을 세운 국민의당도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에 비해 광역·기초의원 수가 적다.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수(민주당 32명, 자유한국당 2명, 국민의당 1명, 바른정당 10명)까지 감안하면, 서울 지역 ‘밑바닥 선거운동’은 더불어민주당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회의원·광역의원·기초의원이 많을수록 선거운동의 효과도 커진다. 한 국민의당 소속 경기 지역 기초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다 보면 주민들한테 민원이 들어온다. 돌아다니면서 이 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표를 얻는데, 시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고 없고가 민원 해결에 큰 차이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후보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지역 현안을 곧바로 접수하고 해결하는 활동 전체가 선거운동이라는 설명이다. 텔레비전 토론 같은 공중전이나 여의도 정치권 동향만 봐서는 체감하기 어려운 밑바닥 선거운동의 특징이다.
정책을 홍보하고 설명하는 일도 선거사무원보다 지방의회 의원이 더 믿을 만하다. 정의당 소속 김희서 구로구의원은 “후보의 정책은 사무원보다 구의원이 훨씬 잘 안다. 유권자를 만나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인원이 많을수록,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정의당의 경우 바닥을 훑을 지방의회 의원 숫자가 다른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은 미리 치르는 내년 지방선거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지역 지방의회 의원도) 다들 열심히 할 거다.” 한 국민의당 소속 경기 지역 기초의원은 이번 대선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민과의 대면 접촉을 늘리고, 당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게 지방의회 의원인 자신에게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니 지역조직이 선거운동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 지상전이 안 되면 후보 개인기로
밑바닥 선거전에서 지방의회 의원의 구실이 중요하다 보니, 기존 통념과는 다른 지역구도가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은 단 3명이다. 반면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이 총 23명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국민의당이 호남 정치권을 접수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를 놓고 보면 실상 정반대에 가깝다. 광주(민주당 40명, 국민의당 37명), 전북(민주당 149명, 국민의당 61명), 전남(민주당 174명, 국민의당 99명) 모두 민주당 소속 광역·기초의회 의원이 국민의당 소속보다 훨씬 많다. 한 국민의당 소속 전북도의원은 “도의원 숫자만 따져도 (민주당이 국민의당에 비해) 세 배 정도다. 기초의원 수도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 중앙에서 ‘바람’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지역에서 우리 힘만으로는 끌어올릴 수 있는 지지율에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영남 지역에서는 자유한국당 지역조직의 강세가 여전하다.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 지역 모두 자유한국당이 각 지방의회 내 1당을 유지하고 있다. 경북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의원으로 활동 중인 한 인사는 “자유한국당에 비해 인원 격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선거사무원을 여러 지역으로 분산하기가 어렵다. 선거운동 전술도 게릴라 유세로 전환했다. 적은 인원이 차에 한꺼번에 타고 있다가 사람 모여 있는 곳에 내려서 유권자와 만나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보수 정당인 바른정당 역시 대구·경북에서 열세이긴 마찬가지다. 바른정당 소속 대구·경북 지방의회 의원은 총 20명. 이 지역에서 보수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자유한국당 소속 광역·기초의원은 총 385명에 달한다.
전국적인 ‘물량 싸움’에서 유리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후보가 지지율 2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면대면 선거운동’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안철수 캠프의 한 관계자 역시 “물량 싸움을 하면 아무래도 밀릴 수밖에 없다”라며 텔레비전 토론과 보수 유권자의 전략투표에 기대를 걸었다.
대선은 총력전이다. 지상전(바닥 선거운동)과 공중전(미디어를 통한 전국적인 바람) 가운데 어느 한 축이 무너진 상황이라면 나머지 다른 축이 이를 보완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이 상대적으로 ‘후보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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