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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쿠데타를 쿠데타라 말 못한 이유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 가운데 하나는 ‘5·16 평가’에 관한 것이었다. 5·16은 군사 쿠데타가 아닌 구국의 혁명이라는 인식이 박근혜 정부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특별취재팀(주진우·차형석·김은지·신한슬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5월 03일 수요일 제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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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은 무엇이었을까? 안종범 전 수석은 업무수첩에 세 가지로 정리해두었다. ‘1)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2)5·16에 대한 평가 공통된 인식 3)유신헌법(1972).’ 안 전 수석은 2014년 7월8일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한 말을 업무수첩에 적었다. 특히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당시 최빈국(인도와 함께), 북한보다 못살았음, 반공의식 약화-초등학생도 시위 사회질서 혼란→그 결과 경제성장과 자유와 번영 누리게 되었다→역사적으로 70-80% 박정희 대통령 평가⇒이 정부관을 인식 공유해야(그림 1).’ 같은 내용이 같은 날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도 쓰여 있다.

군사정변으로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는 5·16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에는 유신헌법 또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쓰여 있다(그림 2). 2012년 9월 박근혜 대선 후보가 내놓은 발언과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당시 선거전에 뛰어든 박 후보는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으로 상처와 피해를 입은 가족분들께 사과드린다.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박정희로 대표되는 ‘국정 철학 공유’를 강조하던 2014년 7월8일, 국회에서는 정종섭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5·16 군사 쿠데타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정 후보자는 마치 김 전 비서실장의 지침을 공유한 것처럼 대답을 피했다. 그는 “장관 후보자로서 개인 견해를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제 저서를 참고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2014년 7월8일자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 적힌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위). ‘청와대 대면보고 불필요’라는 문구도 보인다(아래).

짜맞춘 듯 대답하던 장관 후보자들


정 후보자만이 아니었다. 조윤선 전 장관도 2013년 여성부 장관 후보자 시절과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모두 5·16에 대해서 “공부가 안 돼 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총리 또한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이므로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유정복 인천시장도 2013년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이 어렵다”라고 대답했다.

이 같은 국정 철학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참사를 가져왔다. 2014년 7월8일은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로 박근혜 정부 인사에 대한 비판이 커질 때였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며 정홍원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 안대희 후보자와 문창극 후보자가 지명되었지만 모두 논란 끝에 사퇴했다. 두 달 사이 연이은 총리 후보자 낙마로 관가가 뒤숭숭해지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국정 철학’을 설파하며 군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5·16, 유신헌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이를 철저히 조회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와 함께 안종범 전 수석이 적어놓은 내용은 ‘청와대 대면보고 불필요’였다(그림 2).

또 안종범 업무수첩에 따르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청와대 비서실을 총괄하는 업무를 하던 2014년 12월16일 티타임에서 ‘인사는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때는 그해 11월에 터진 ‘정윤회 문건’으로 박근혜 정부가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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