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망쳐 야유받던 어머니 대신 무대에 올라간 어린 채플린은, 화가 난 관객들을 달래기 위해 방금 무대를 망친 어머니의 쉰 목소리를 흉내 내야 했다. 제 상처를 드러내 남을 웃기는 법을 일찌감치 배운 채플린은, 부모의 응원 속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 살 때 아동극단의 일원이 되어 배우로 살기 시작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성공적인 보드빌 배우가 된 채플린은, 스물한 살이 되던 1910년 소속 극단을 따라 미국으로 순회공연을 떠났다. 21개월 순회공연이 끝난 뒤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어머니와 가난의 기억이 서린 영국은 그에게 즐거운 곳이 아니었다. 채플린은 극단이 두 번째 미국 투어를 간다고 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영국을 떠났다. 투어 중이었던 1913년 영화배우로 활약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자 그대로 미국에 정착했다.
가난과 불행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보낸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영화 안에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을 향한 응원을 담아냈다. 영화에서 권위 있는 귀족과 공무원, 사람을 차별하는 경찰, 노동자를 억압하는 자본가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을 조롱하는 주인공은 언제나 힘없고 작고 가난한 ‘찰리’였다. 그는 가난한 고아 소년과 함께 짝을 지어 생계를 꾸리는 거리의 부랑자(〈더 키드〉)였고, 돈 한 푼 없는 주제에 꽃을 파는 시각장애인 아가씨에게 반해 개안수술을 받게 해주겠노라 동분서주하던 떠돌이(〈시티 라이트〉)였으며, 컨베이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밀려난 노동자(〈모던 타임즈〉)였다.
그가 20여 년간 미국에 가지 않은 이유
세상은 그런 그를 사랑하는 동시에 오해하고 미워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이 한창이던 시절,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경고했던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았다. 반공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반대하고 인류애와 평화의 신념을 이야기했던 〈위대한 독재자〉의 후반부 연설 장면을 두고도 공산주의자라고 그를 매도했다. 1952년 영화 〈라임라이트〉를 홍보하기 위해 배를 타고 뉴욕을 떠난 채플린에게 미국 정부는 재입국 허가를 받으려면 사상검증용 인터뷰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채플린은 모욕적 처사라고 반발했고,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을 위해 재입국한 1972년까지 20여 년간 미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전성기를 누리던 20대 시절, 채플린은 휴가차 시골로 내려가던 도중 ‘찰리 채플린 닮은꼴 선발대회’가 열리는 걸 보고 신분을 숨긴 채 참가했다. 떠돌이 분장을 지운 채플린의 맨얼굴을 본 이들은 그가 ‘떠돌이’ 찰리일 거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3등에 그쳤다. 어쩌면 채플린의 삶 전체가 이랬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의 천재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와 해학에 시야가 가려, 그 뒤에 숨어 있는 눈물과 고통을 상상하지 못했다. 반공주의자들이 덧칠한 이미지에 홀려, 일평생 평화주의자이자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의 친구였던 그의 본심을 외면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빈민굴에서 태어난 집시 소년이라 생각했던 이 남자는 한 번도 제 자신이길 포기하지 않았다.
위대한 떠돌이, 찰스 스펜서 채플린의 생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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