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반대합니다.”

지지율 1위 대선 후보가 전 국민이 지켜보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말했다. 자칭 ‘진보 후보’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황당했고 분노했으며 무척 서글펐다. 그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 여러분, 당신들 표는 없어도 됩니다.”

198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3년 전 영국 런던의 성 소수자들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마거릿 대처의 석탄 산업 구조조정에 맞서 광산 노동자가 총파업 투쟁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정부의 탄압, 언론의 왜곡, 여론의 냉대에 부딪혀 노동자가 궁지에 몰린 즈음이었다.

궁지에 몰린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이와 레즈비언이 거리로 나섰다. 뭐라도 도울 게 없을까 궁리하다가 모금함을 들고 외쳤다. “광산 노동자를 도웁시다!” “레즈비언과 게이는 광산 노동자 파업을 지지합니다!”

제법 돈을 모았다. 파업 중인 노조 사무실마다 전화를 걸었다. “어디라고요?” “광산 노동자를 지지하는 동성애자 연합입니다.” “뚜뚜뚜….” 말없이 끊긴 상대의 전화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성 소수자 여러분, 당신들 돈은 없어도 됩니다.”


영화 〈런던 프라이드〉는 그렇게 시작한다. ‘게이가 지지한 투쟁’이라는 평판이 두려워 매몰차게 등 돌리는 노동자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에게 상처입고 분노한 뒤에도 또다시 모금함을 들고 거리로 나선 성 소수자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줄곧 ‘박대’당하면서도 계속 ‘연대’를 제안하는 그들 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단체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근무자의 실수로 덜컥 후원금을 받아버린 노조의 간부 다이(패디 콘시딘)다. 모금을 주도한 청년 마크(벤 슈네처)가 등을 떠밀어 게이들 앞에 선 남자. 떠듬떠듬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건 돈 그 이상입니다. 바로 우정이죠. 승산 없는 전쟁에서 자기보다 힘 좋고 강한 상대를 만나 쫄았을 때, 있는 줄도 몰랐던 지원군을 만난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 겁니다. 그러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손을 잡는다. 동성애자가 내민 손을 노동자가 잡는다. 한 무리의 약자가 또 한 무리의 약자와 힘을 합친다. “당신들 도움은 없어도 됩니다”라는 벽을 넘어 “당신들이 곁에 있어서 참 든든합니다”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과정을 견디고 이겨낸 보람일랑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 또한 영화는 보여준다.

그가 만들겠다는 ‘차별 없는 나라’는 무엇일까

마침내 라스트신. 이 믿기 힘든 이야기가 모두 실화라는 걸 자막으로 말해준다. 그때 성 소수자와 노동자가 맞잡은 손에서 얼마나 의미심장한 변화가 시작되었는지, 한 줄 한 줄 스크린 위에 새겨넣는다.

“그럼요. 동성애 반대합니다.”

〈런던 프라이드〉의 시대로부터 33년 뒤, 그가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한 그날 밤. 내 머릿속에서는 두 차례 대선에서 그가 내세운 두 가지 슬로건이 이렇게 합쳐졌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먼저다’. 그가 만들겠다는 ‘차별 없는 나라’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인 성 소수자들만 ‘먼저’가 아닌 ‘나중’이 되어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편집자 주:논란이 일자 문재인 후보는 “동성애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에 속하는 부분이다. 다만 군대 내 동성애 허용은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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