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사람들이 그의 커밍아웃을 그러려니 하고 넘긴 것은 아니었다. 배역이 남긴 잔상은 ‘게이라서 쁘아송 배역을 그렇게 잘 소화한 거였구나. 게이는 진짜 저렇구나’라는 식의 낙인효과로 이어졌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쁘아송’을 연기한 홍석천이 커밍아웃 1호 연예인이 되어 고정관념을 강화할 것은 또 뭐냐”라는 불만도 있었다. 불만을 말하는 이들도 알았을 것이다. 선택을 기다리는 무명 배우에게 배역을 가려서 받을 수 있는 호사가 허락되었을 리 없고, 우연히 그 배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가 홍석천이었을 뿐이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홍석천은 KBS 토크쇼 〈야! 한밤에〉의 방송 녹화 3시간 전에 섭외를 취소당했다. 동성애자가 아동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아이들 교육에 안 좋다는 근거 없는 이유로 MBC 〈뽀뽀뽀〉에서 퇴출당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 프로그램을 위해 태어난 연기자 같다”는 극찬을 받았던 홍석천이었다.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로 찍은 커밍아웃 영상은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만 편집되어 사용되었으며, 홍석천과 친했던 남성 연예인들 중 상당수는 자신도 마녀사냥에 휘말릴까 두려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주지 못했다. 새 천년이 오면 자신도 당당히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마음에 자기 정체성을 세상에 밝힌 대가로 그는 3년가량 방송계를 떠나 있어야 했다. 2003년 홍석천은 김수현 작가의 SBS 〈완전한 사랑〉에서 커밍아웃한 게이 승조 역으로 컴백했다. 그 이후에도 온전히 방송계에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2013년 JTBC 〈마녀사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커밍아웃 이전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결정적인 이유는 성 소수자를 ‘외국 문화의 유입과 함께 휩쓸려 들어온 좋지 못한 풍조’ 정도로 여기던 한국 사회의 편견이었을 것이다. 동성애가 특정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1960년대 도시화 이후 씨족 부락을 벗어나 익명성을 쟁취하게 된 한국의 성 소수자들이 자생적인 커뮤니티를 이뤄왔다는 사실을 ‘모르쇠’했던 이들에게, 동성애는 ‘쾌락 중심 서구 문화의 무분별한 유입’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동성애는 ‘쾌락 중심 서구 문화의 유입’ 결과?
씁쓸하게도 이와 같은 편견은 일부 종교단체만의 주장은 아니었다. 2007년 3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이하 범민련)에서 발행한 기관지 〈민족의 진로〉 3월호에 실린 ‘실용주의의 해악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남 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 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온 문제들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같은 글에서 “1990년대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방화, 세계의 일체화와 구호가 밀고 들어오던 시점부터” “외국인 노동자 문제, 국제결혼, 영어 만능적 사고의 팽배,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유학과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이기주의의 만연, 종교의 포화상태, 외래 자본의 예속성 심화, 서구 문화의 침투 등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1987년이나 1997년이 아니라 2007년에 나온 주장이었다.
그러니 패션 디자이너야말로 당대의 한국 미디어가 남들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닌 남성을 묘사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직업군이었던 것이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을 만드는, 결정적으로 외국의 영향을 받은 직종.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집약한 직업군이 바로 패션 디자이너였다. 홍석천은 하필이면 게이와 패션 디자이너라는 이중의 편견이 모두 집약된 ‘쁘아송’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불행히도 자연인으로서 했던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쁘아송’ 이미지에 덮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편견과 고정된 이미지를 반복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한국의 미디어는 오랫동안 게이와 트랜스젠더, 드래그 퀸 등의 개념을 섞어 묘사하기 시작했다. 홍석천을 계기로 동성애자의 존재가 가시화되기 시작했지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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