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몇 달 뒤, ‘봄날의책 세계시인선’이 정말 출간됐다. 제목은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로 노르웨이 시인 울라브 하우게(1908~1994)의 시집이다.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북유럽의 현인’으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이다. 그가 생전에 남긴 시 400여 편 중 30편을 추려 묶었다. 이번이 국내에 소개된 하우게의 첫 시집은 아니다. 2008년 하우게 탄생 100주년을 맞아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실천문학사)가 출간된 바 있다. 여느 시집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일부 눈 밝은 독자와만 만난 후 절판의 순서를 밟았다.
농부와 대장장이에게 쓸모 있는 ‘시’
하우게의 시는 쉽다. 여기서 ‘쉽다’는 말은 전적으로 상찬이다. 하우게는 시 ‘베르톨트 브레히트’에서 그에 대해 “그런데 그의 시는 너무 쉬워서/ 현관에 놓인 나막신처럼/ 바로 신으면 되었지”라고 썼다. 하우게의 시 역시 마찬가지다. 인구 1000명 남짓의 노르웨이 울빅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그곳을 떠난 적 없는 하우게의 직업은 정원사였다. 그의 시는 꼭 그 직업을 닮았다. 하우게에게 시는 농부에게, 대장장이에게, 목수에게 “쓸모 있다 말을 듣는 것”(‘시’ 중에서)이다. 그는 자연의 편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독해하려 했다. 이를테면 농장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고양이다. “당신이 방문했을 때/ 고양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이 농장에서/ 그 녀석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고양이’ 중에서)라고 쓴다. 그것이 하우게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4월25일 출판기념회에서 ‘나뭇잎집과 눈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등 하우게의 시 네 편을 낭독한 허은실 시인은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노르웨이의 소설가 크나우스고르의 감탄이야말로 하우게의 시를 설명하는 문장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우게는 1994년 ‘옛날 방식’으로 죽었다. 그 어떤 병증도 없었다. 단지 열흘 동안 먹지 않는 방식으로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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