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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에 기적이 펼쳐진다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5월 12일 금요일 제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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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시각장애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아마 앞이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에게 시각예술인 그림책을 읽어준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과 저는 함께 그림책을 보고 나눌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어린이들은 어떻게 그림책을 보았을까요?

저도 해외 도서전에 가는데 제 맘에 딱 맞는 그림책을 찾기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캐나다 출판사 ‘400번의 구타’ 대표 시몽은 그림책 마니아입니다. 또한 시몽은 그림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어주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저는 시몽에게 정말 재미있는 책을 보여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러자 시몽이 그림책 한 권을 내놓았습니다.

글 없는 그림책이었습니다. 책을 펼치자 온갖 등장인물이 가득 찬 공원이 나타났습니다. 시몽은 제게 한 사람을 선택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맨 왼쪽 하단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힘겹게 걷고 있는 할머니를 가리켰습니다. 시몽이 책장을 넘겼습니다.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 곤살로 모우레 글, 알리시아 바렐라 그림, 이순영 옮김, 북극곰 펴냄
다음 페이지에서 할머니는 어지럼증을 느끼고 손에서 장바구니를 놓칩니다. 할머니는 가로등에 기대섰다가 마침내 중심을 잃고 쓰러집니다. 할머니는 가로등에 간신히 기대고 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모두 제 갈 길을 가느라 바쁩니다. 그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지나쳐갔던 한 노인이 돌아와 할머니 손을 잡아준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등장인물을 따라 열두 장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드라마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시몽에게 당장 이 책을 계약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몽은 빙긋 웃으며 그 책은 자기네 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책이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입니다. 스페인의 SM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한국 사람인 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캐나다 사람 시몽으로부터 소개받은 것입니다. 붉은 물고기는 스페인의 공원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헤엄치며 기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국에 돌아와서 벌어졌습니다. 스페인어판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를 받고 보니 커버 안쪽에는 편지 한 통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책 속 등장인물에 관한, 일곱 편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문학작품이었습니다. 바로 이 책의 기획자이자 글 작가인 곤살로 모우레의 작품이었지요.

알리시아 바렐라가 그린 그림 열두 장과 곤살로 모우레가 쓴 글 일곱 편이 만나 한 권의 아름다운 그림책이 만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은 사람들 사이를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붉은 물고기는 사랑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눈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몸에 있는 눈이고 또 하나는 우리 마음에 있는 눈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진심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이와 앞을 볼 수 있는 이가 함께 그림책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담긴 진심은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소원을 한 가지씩 말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앞을 보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린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일이 잘되는 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에는 곤살로 모우레와 알리시아 바렐라의 진심이 보입니다. 곤살로 모우레와 알리시아 바렐라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의 기적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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