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실린 사진을 들여다보다, 문득 힙합 아티스트 ‘가리온’의 정규 2집 〈가리온 2〉가 떠올라 꺼내들었다. 〈그날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는 시간을 역진하는 사진집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한 날, 서울 광화문에 모여든 사람들이 책의 첫 장을 채웠다. 사진 속 사람들은 환호한다. 그러다 절규한다. 확신에 찬, 용기 있던 얼굴에는 점점 불안이 내려앉는다. 플레이 버튼을 눌러둔 앨범도 서사를 역진한다(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3관왕을 수상한 이 앨범 역시 역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음울한 4번 트랙 ‘복마전’이 흘러나올 때쯤, 책에는 최순실이 등장한다. 이화여대 학생 시위, 백남기 농민 장례식,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성주 주민의 절박한 표정도 이어진다. 폐쇄된 강정마을과 개성공단을 지나 노동자의 고공 농성과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군의 장례식 사진(245쪽)이 등장한다. 2016년 〈시사IN〉 송년호 ‘올해의 인물·사진’에도 실린, 정운 사진가가 촬영한 그 사진이다.
밀양, 진도 팽목항, 4대강,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 사망 사건을 지나면, 잠시나마 웃는 이들의 얼굴이 등장한다. 박정희 생가를 찾은 이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에 환호하는 이들. 마지막으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벽보가 눈 내리는 거리에 매달려 있다. 5년 전 그의 선거 벽보에는 아련한 구문(舊聞)이 달렸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 앨범도 끝을 달려 마지막 곡이 흐른다. “끝은 없어 밖은 더 복잡하게 만든, 검은 속을 감춘 저 사람들의 말뿐(‘그리고 은하에 기도를’ 가운데).”
지금은 승리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지만, 흐릿해진 지난 4년간 환부는 여전히 곪은 채로 남아 있다. ‘광장을 기억하고, 광장에서 기억한다’는 이 사진집과 함께 시간을 거스르다 보면, 다시 오늘에 집중하게 된다. 치유해야 할 상처와, 수습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박근혜 정부를 반추하는 가장 강렬한 시각적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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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를 위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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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시인)
사과에도 기술이 있다.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복잡하겠지만, 생각처럼 복잡하지 않은 게 또한 사과의 기술. 사과는 단순하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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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려운 책을 또 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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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인 (앨피 대표)
불과 10여 년 전이다. 페미니즘 책을 내면서 ‘뭐하러…’ 하는 눈길을 받은 것이. 다 끝난 얘기를, 그것도 창업 초기 돈 없어서 쩔쩔매는 출판사가 보태냐는 안타까움이었으리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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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 [새로 나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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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편집국
10대와 통하는 선거로 읽는 한국 현대사 이임하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열심히 투표권을 챙기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그들이 여는 세상은 분명 더 조화로울 거라는 희망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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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도올, 차별금지법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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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소설가)
김용옥의 〈도올의 로마서 강해〉(통나무, 2016)는 지은이가 2007년부터 꾸준히 출간해온 성서 강해 작업의 일환이다. 바울의 〈로마서〉를 강해한 이번 책은 특히 눈길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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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은 멀고 자격증은 가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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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메디치미디어 편집부장)
15년 전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친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슨 무슨 지도사가 붙은 민간 자격증 공부는 하지 마라.” 충고 덕분이었는지 나는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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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권과 몰래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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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사진가)
요즘 한국 사회를 흔드는 이슈 중 하나가 ‘몰래카메라(몰카)’이다. 매번 수만명의 여성들이 모이는 집회의 피켓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구호도 몰카 얘기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몰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