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딜레마’가 돌아왔다. 5년 전인 2012년 대선 레이스에서도 ‘안철수 현상’을 결국 잠재우고 안 후보를 사퇴로 내몰았던 바로 그 딜레마다. 안철수(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층은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히 이질적이어서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렵다.

2012년의 안철수 후보는 ‘새 정치’와 ‘정권교체’라는 지지층의 두 갈래 요구를 조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2012년 안철수 캠페인은 ‘새 정치’에 방점을 두고 출발했다. ‘범야권 후보’로 묶일 행보는 철저히 피했다.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 테이블을 최대한 회피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표를 직접 공략하는 대신, 본선 승리 가능성을 내세워 야권 지지층에 전략적 지지를 압박했다.
 

ⓒ연합뉴스4월19일 KBS 초청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대선 후보들이 생방송에 앞서 토론할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다른 후보들은 문재인 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안보관에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


이 구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정권교체 여론은 야권 후보라는 규정을 회피하는 안 후보에게 피로감을 느끼고 문 후보 쪽으로 쏠렸다. 안철수 후보는 2012년 11월5일 문재인 후보에게 양자회담을 제안하며, 회피하던 후보 단일화 테이블을 펼치는 방향 전환을 선택한다. 먹히지 않았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전통 야권 표는 돌아오지 않았고, ‘새 정치’로 대표되는 무당파의 이탈만 불렀다. 이질적 지지층의 요구에 오락가락 대응하면서 이들을 묶어내는 데 실패한 2012년 안철수 캠페인은 결국 후보 사퇴로 귀결됐다.

2017년의 안철수 지지층은 2012년과 놀라울 정도로 다르다. 지지 기반은 젊은 층에서 중·노년층으로 바뀌었다. 이념적으로도 중도·무당파와 진보파의 조합에서, 보수파와 전통 야권 지지층의 조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안 후보의 지지층은 섞이기 어려운 지지 성향의 위태로운 조합이다.

2017년 안철수 후보는 대안을 찾아 헤매는 ‘보수 표’와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 야권 표’를 조화시켜야 할 처지다. 안 후보 지지층의 높은 이질성은 ‘반(反)문재인’이라는 접착제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안 후보는 자강론과 “더 나은 정권교체”를 내세우며 중도의 길을 걸으면서, 보수적인 유권자층에 다가가기보다는 전략투표를 압박하는 노선이 기본이었다. 2012년 캠페인에서 좌우 방향만 반대로 바뀌었을 뿐 구도는 유사하다.

이 구도가 흔들린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4월17일 이후 일주일 동안, 거의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안 후보의 지지율은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안 후보의 지지율은 37%(4월 둘째 주)에서 30%(4월 셋째 주)로 빠졌다. 지역별로는 보수 표심의 집결지인 대구·경북(48%→23%)과, 유권자가 가장 많은 인천·경기(38%→28%)에서 낙폭이 컸다. 연령별로는 세대 대결 선거에서 최대 격전지인 50대가 가장 크게 흔들렸다(51%→40%).

여성 표의 이탈이 특히 두드러지는데, 4월 셋째 주 조사에서 남성은 35%가 안 후보를 지지한 반면, 여성은 25%가 안 후보를 지지했다. 유력 대선 주자 지지율의 성별 격차가 10%포인트나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보수 적통을 내세우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지지율도 미묘하지만 일관된 상승세다. 보수 표가 홍 후보로 결집한다면 안 후보는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

여론 추이가 심상치 않자, 안철수 캠페인은 중도 표 구애를 일시 중단하고 보수 표 구애로 돌아섰다. 2012년 캠페인의 급격한 전환과 방향만 반대일 뿐 성격은 비슷하다. 이번에 안철수 캠페인이 선택한 전선은 안보관 문제였다.

 

 

 

 


4월19일 KBS 텔레비전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될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라며 북한을 ‘주적’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인 4월20일부터 안 후보와 국민의당은 ‘주적론’으로 문 후보를 비판했다. 안 후보는 4월20일 “국방백서에 주적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북한은 주적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엄연히 국방백서에 주적이 북한으로 나온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문 후보의 안보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안보관 공세가 안철수 후보에게 덫일 수도

일단 사실이 아니다. 국방백서에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만 나와 있다. 북한을 포괄적으로 지목하지도 않았고, ‘주적’이라는 표현도 없다. 정치 노선으로 봐도 낯선 풍경이다.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국민의당이 대선 과정에서 ‘북한 주적론’을 내걸며 안보관 공세를 펼쳤다.

더 큰 딜레마는 따로 있다. 2012년 후보 단일화로의 방향 전환이 지지층 내의 이질성을 더 부각시켰듯, 안보관 공세 역시 같은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 안철수 지지층 내에서 안보 이슈에 대한 태도가 대단히 이질적이다.

4월11~12일 〈시사IN〉·칸타퍼블릭 대선 여론조사에서 북한 문제 해법으로 제재와 교류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물었다(아래 표). 응답자의 46.1%가 제재 강화를, 44.5%가 교류 강화를 선호해 전체 여론은 거의 반반으로 나뉘었다. 예상할 수 있듯 문재인 지지층은 교류 강화 쪽으로 상당히 쏠려 있다. 66.6%(교류 강화) 대 27.7%(제재 강화)였다. 문제는 안철수 지지층이다. 북한 문제의 해법으로 제재 강화를 선호하는 응답이 57%로 다수이지만, 교류 강화를 선호하는 응답도 34.7%로 만만치 않다(〈시사IN〉 제501호 ‘문재인의 덫 안철수의 무덤’ 기사 참조).

북한·안보 이슈는 ‘보수+전통 야권층’이라는 지지층 이질성이 분출할 가능성이 특히 높은 이슈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애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전장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는 미래지향적 이슈로 대선판을 주도하면서 지지층을 통합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지지율 하락 추이가 심상치 않은 국면에서, 안철수 캠페인은 지지층의 이질성 분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보수 표에 다가가는 길을 택했다. 일종의 도박이다. 안 후보는 2012년 자신을 좌절시켰던 바로 그 딜레마 앞에 다시 섰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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