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을 어떻게 평가할까? 〈시사IN〉의 교육 칼럼 ‘학교의 속살’ 필자들이 모였다. 대선 교육 공약과 함께 한국의 미래 교육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방담은 4월21일 〈시사IN〉 편집국에서 진행됐다.
대선 후보 교육 공약 총평을 들려달라.
이중현(남양주 조안초등학교 교장):그동안 우리 교육이 교육답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교육 안에서만 찾으면 잘못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학력 간 임금 격차 때문이다. 이 격차가 유지되는 한 입시 경쟁 교육이 완화될 수 없다. 대선 후보 가운데 심상정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그걸 지적했다. 심 후보는 교육 공약 안에 학력 간 임금 격차 해소를 이야기했고 문 후보는 노동 공약에서 공정임금제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다만 심 후보는 원인 진단이 정확한 데 비해 그것과 초·중등 교육 간의 연계성이 약하다. 문 후보는 노동 공약을 교육 부문으로 직접 연계시키는 것이 좀 약했다.
조영선(영등포여고 교사):교육정책으로 입시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공약만 따져봐도 엇박자이지 않나. 문 후보는 입시에 대한 부담 완화를 외치면서, 예체능 교육 내실화 방안으로 예체능을 입시에 반영한다고 했다. 로드맵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돈 많은 계층이 두려워하는 입시제도가 뭘까? 나는 없을 것 같다.
해달(필명·대치동 입시학원 강사):안철수 후보의 교육부 폐지 공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히려 교육부 업무가 너무 외주화되어 일관성이 없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다시 내부로 끌어들여서 유기적으로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치적으로 말이 많으니까 없애고 새로운 걸 만들겠다니 ‘나, 표 한번 받아볼래요’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대진(필명·대학 교직원):대학 교직원이 느끼기에는 교육부의 권한과 개입 정도가 엄청나다. 정부 부처 입김 때문에 학교는 옴짝달싹 못한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폐지된다고 학교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각 학교들이 준비가 돼 있는지는 또 의심스럽다.
조영선:교육 공공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교육 주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내용이 좀 명확해야 한다. 교육부를 폐지한다면서 교육이 시장에 넘어갈까 봐 염려스럽다. 국가교육위원회냐 교육부냐 이런 조직 구성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 정부가 교육 주체의 자율성, 학교 민주화에 대한 철학이 어떤가가 중요하다.
입시 위주의 경쟁 교육을 끝내겠다며 후보들이 여러 공약을 발표했다.
해달: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능이 축소되든, 논술이 사라지든, 자사고를 폐지하든 사교육 시장은 크게 타격을 받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하자면, 한 학년이 600명이고 제가 있던 학원에 그중 200명이 다녔다. “너희 똑같은 거 들어봤자 뭐하냐”라고 했는데, 이 아이들 처지에선 학원 안 다니는 400명이 되는 게 불안한 것이다.
이중현:나는 사교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사교육이 없는 나라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학력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 그러니 대학 진학률이 우리처럼 높지 않다. 다음으로 일제고사 식의 학교별 평가가 아니라 학생 하나하나의 성장을 기록하는 교사별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런 유럽의 시스템을 검토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할지라도.
이대진:유럽 사례를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뿌리 깊이 형성된 교육에 대한 어떤 관점이 있다. 문재인 후보도 교육 공약을 발표할 때 “교육을 통해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듯, 부모들은 내 자식이 나보다 더 잘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육에 투자하고 사교육을 시키고 더 좋은 대학에 보내려 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기 어렵고 다른 사람한테 하대받고…. 이런 측면에서 사교육 문제가 어떤 입시 제도의 변화로는 궁극적 해결이 안 될 것 같다.
조영선:사실 진짜 학생들에게 필요한 말은 ‘상승하지 않아도 괜찮아’이다. 금수저가 되지 않아도 괜찮을 만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초점이 돼야지, 흙수저를 어떻게 금수저로 만들 것이냐를 놓고 얘기하다 보면 흙수저·금수저의 차별이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청년·노동 정책과 분절해 교육 공약을 볼 때 답답하다. 예를 들면 후보들이 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마이스터고, 특성화고라며 사기를 쳐서 우수한 아이들이 많이 갔다. 그 아이들이 지금 산업 실습 현장에 나와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라며 자살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과 복지 시장을 구현해놓지 않고 학생들을 일찍 산업 현장에 투입시키는 건 어떻게 보면 교육적 책임을 방기하는 짓이다.
안철수 후보의 학제개편안은 어떻게 보나?
이대진:가장 눈에 띄는 교육 공약이긴 한데, 사실 껍데기 공약 같다. “입시 교육과 보통 교육의 고리를 끊자는 게 제 복안입니다”라고 안 후보가 이야기했는데, 학제만 바꾼다고 입시 교육과 보통 교육의 고리가 끊기나?(일동 웃음) 직업학교 쪽으로 가기 싫어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중학교 때부터 입시 준비를 할 것이다.
조영선:맞다. 자유학기제 할 때 아이들 얼마나 치열한데. 학원 다니는 애들 더 열심히 다닌다.
이중현:거대한 토목공사 계획 같다.
이대진:교육판 4대강 사업인가?(일동 웃음)
이중현:학제개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 검토가 있었고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소요 예산과 사회적 경비를 생각하면 선택하기 어렵다고 본다.
고교학점제, 수강신청제와 같은 공교육 내실화 방안들은 실제 현장에서 실현 가능할까?
조영선:취지는 무색해지고 교사 구조조정만 되지 않을까?(웃음) 학점제 하게 되면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게 담임 제도인데, 이 제도는 양면성이 있다. 개인적으로 담임제가 교사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사고(事故)를 막는 값싼 보육 시스템이다. 과연 값싼 보육 시스템을 포기하고 학점제로 갈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중현:어떤 제도든 그 제도 활용에 따라서 양면성을 가질 수 있다. 다만 취지를 살리도록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해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선택을 보장하려면 많은 교사가 필요할 것이다. 이때 강사가 아닌 정규 교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검토되면 좋겠다.
해달:좋게 활용하면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받을 수 있지만, 나쁘게 전망하면 수강생이 안 찰 경우 그 수업을 비정규직 교사로 돌릴 게 뻔하다. 결국 교사를 어떤 존재로 보느냐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교사가 과목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인교육을 하는 전문가라는 존중이 확보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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