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저 공기청정기가 있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뭔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구구절절 해명을 이어갔다. 다른 한 곳도 마찬가지였다. “공기청정기는 있지만”으로 시작한 보육교사는 “놀이터를 가려고 아이들 옷까지 입혔는데 전국 평균 수치가 좋지 않다는 보도를 접하고 도로 주저앉았다”라며 길게 해명을 이어갔다.
미세먼지를 취재하며 접한 순간들이다. 어린이와 노인, 임신부는 미세먼지 취약계층이다. 이 중 아이들이 생활하는 어린이집에 이런저런 대처법을 묻다 공기청정기 질문까지 나왔다.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따지려던 게 아닌데 주눅 든 표정으로 답하자 머쓱해졌다. 문득 어느 인터넷 카페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공기청정기나 미세먼지 측정기를 놔주고 싶은데 유별난 엄마로 볼까 봐 두렵다는 사연이었다. 엄마들도, 일선 보육 현장도 예민해지고 있었다. 미세먼지가 불러온 재앙의 시대, 불안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일주일간 휴대용 미세먼지 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곳곳을 측정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차피 숨 쉴 공기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 마시나 덜 마시나 나쁜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다. 막상 수치를 접하고 보니 예민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수치가 오를 때마다 우울감이 함께 치솟았다.
나 역시 유별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 건 미세먼지 관련 토론회에서였다. 한 환경부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미세먼지 모니터링 애플리케이션은 믿을 만한 측정기로 잰 게 아니다. 국내 미세먼지 농도가 과장되어 알려졌다”라고 말했다. 마침 그 ‘믿지 못할’ 휴대용 측정기를 지니고 있던 터라 뜨끔했다. 측정소 위치도 제각각인 데다 서울이나 수도권을 제외하면 너무 띄엄띄엄 있어서 공식 수치를 신뢰하기 어려운 심정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한 전문가는 “최근 농도가 심해진 건 대기가 정체되어서, 쉽게 말해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과 대기의 영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미세먼지 수치에 웃고 울며, 점점 날 선 순간이 늘어나는 사람들과 토론회에 자리한 정부 관계자들의 간극이 컸다. 나도 ‘유별난’ 사람이 된 것처럼 주눅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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