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셰프와 만화가의 만남! 〈알랭 파사르의 주방〉은 예술 경지에 오른 미식의 세계를 자유분방하게 보여준다. 아무렇지 않게 그려낸 그림 속에 미식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다.

이미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는 우리에게도 차고 넘친다. 음식이란 생존과 직결되는 가장 기본 문화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먹방·혼밥·집밥과 같이 음식 콘텐츠와 연관된 말은 어딘가 외로움이 묻어난다. 음식보다 먹는 사람과 관계에 더 집중하는 뉘앙스다.

〈알랭 파사르의 주방〉은 조금 다른 관점의 그래픽노블이다. 최고의 셰프이자 예술가로 인정받는 ‘알랭 파사르’가 추구하는 ‘미식’의 정체를 만화가 크리스토프 블랭이 관찰해서 기록했다. 그의 레스토랑은 20년간 미슐랭 별 3개를 유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메인 요리에서 고기를 빼버렸다는 것. 그래서 부주방장은 알랭 파사르를 ‘정원사’에 비유한다.

“보세요, 색깔은 창작의 중심축입니다. 노란색, 주황색, 초록색 재료들을 배치해보세요. 색을 갖고 놀면서 요리도 창조하는 거지요.” 알랭 파사르가 보라색 바질, 보라색 세이지, 밝은 자주색 양파, 보라색 어린 아티초크 등 온통 보랏빛 재료를 주방에 펼쳐놓고 한 말이다. 요리에 대한 그의 태도와 철학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알랭 파사르의 주방〉 크리스토프 블랭 지음, 차유진 옮김, 푸른지식 펴냄

최고의 셰프가 되면 대부분 주방에서 멀어진다는데, 파사르는 여전히 자기 손으로 요리한다. 그는 눈으로 채소의 색을 감상하고 냄새를 맡으며 맛을 상상한다. 셰프가 창조의 중심에 맛이 아니라 ‘색’을 두는 것이 재미있다. 그날그날 가장 신선한 재료를 준비해서 배치한 후 마치 화가처럼 관찰하거나, 지나가는 요리사에게 예쁘지 않으냐며 자랑하기도 한다.

알랭 파사르의 미식은 색과 맛, 향과 같은 세련된 감각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구현하기 위해 근본적인 토대를 마련한다. 식자재를 시장에서 사지 않고 직접 농장을 꾸리는 것이다. 농장 3개를 사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관리한다. 어떤 농장은 전통 방식을 따르는 반면, 어떤 농장은 현대식 농법을 실험한다.

농장을 다루는 태도에도 요리와 같은 철학이 드러난다. 파사르는 결코 땅을 채근하지 않는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웬만해서는 땅도 갈지 않는다. 다양한 작물을 필요에 따라 섞어 기르면서 자연스럽게 땅이 균형을 잡도록 시간을 들인다. 흙, 햇볕, 자연 그리고 시간이 만든 아름다운 채소를 어떻게 낭비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듯 당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길 바란다’는 파사르의 태도에서 진정한 미식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알랭 파사르의 주방〉을 그린 크리스토프 블랭은 〈해적 이삭〉으로 2002년 앙굴렘 세계만화축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파사르 못지않게 재능이 넘치는 만화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매우 자유로운 형식을 취한다. 칸도 없고, 사건이나 중심 이야기도 없다. 알랭 파사르의 레시피와 주방 요리사들, 농장의 모습을 약간 과장되면서도 유려한 스타일로 그렸다.

익숙한 만화 형식이 아니어서 자칫 산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논픽션으로 세계 최고의 셰프가 미식을 추구하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노력을 담은 그래픽노블이다. 어떻게 요리 하나에 저런 정성을 들일 수 있을까 싶은데, 100쪽이 채 안 되는 이 그래픽노블을 완성하는 데도 3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유럽의 시간은 아마 우리하고는 다르게 흐르나 보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온라인콘텐츠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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