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도 기술이 있다.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복잡하겠지만, 생각처럼 복잡하지 않은 게 또한 사과의 기술. 사과는 단순하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도 사과는 늘 어렵다. 몰라서 못하는 일도 있지만 알고도 못하는 일이 있는데, 내게 사과는 후자에 속하는 일 같다. 아 하면, 어 대신 일단 ‘으응?’부터 하고 보는 건 분명 소갈머리의 문제일 테다.

최근 한 사람에게 때 놓친 사과를 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다투고 돌아와 두 번 다시 보지 않던 무무 씨였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당시의 나로서는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으므로 내 처지에서 상대의 속마음을 재단했다.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꽁해졌고 꽁한 마음은 무무와 모모 씨를 향한 책망으로 바뀌었다. 모모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무무의 애인으로 나는 둘의 교제를 적극 응원하며 그들을 연결한 사람이었다. 모모는 애인 무무의 편이었다(당연하잖은가!). 못마땅했다. 둘 다. 이후로 나는 무무와 모모를 사이좋게 내 친구 목록 밖으로 내보냈다. 아쉬울 것이 있었지만, 없고자 하면 없을 것도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얻기는 어려워도 버리기는 쉬웠다.
 

ⓒ윤성희

그런 무무와 모모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연락을 끊은 지 두어 해 만이었다. 누군가가 결혼을 선택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놀라운 일이지만, 놀랍게도 어디 잘 사나 보자라는 마음 대신, 왠지 둘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누군가는 그런 마음이 반어적인 것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늙어서 그런다고 했고, 누군가는 대인배인가? 의문스러워했고, 누군가는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서 나오는 거라고 했다. 다 맞는 말. 그런데 다른 하나가 더 있었다. 이제 사과할 때가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시차의 마음. 사과는 타이밍이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런 마음은 생각할수록 어려워진다. 연락처를 수소문해 문자를 보냈다.

‘조금 더 일찍 연락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때나 그 이후나 내가 옹졸했다. 사과할게.’

사과에는 일방통행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상대의 준비 없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해오는 이성적·감정적 호소는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무무에게 사과를 전하며 조심스레 덧붙였다. ‘너의 편에서 거북스러운 연락일 수도 있을 텐데….’

얼마 뒤 무무에게서도 답장이 왔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주고받는 마음을. 당연한 마음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사과하고 사과를 받는 두 사람의 마음을. 나는 무무의 답장이 진심이길 바라나 진심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다. 사과는 받는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기대했으나 모모에게서는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모모에게도 한번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알아오고도 모모가 나를 자신의 친구 목록에서 내보냈을 때는 자기 뜻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어떤 지점이 있어서일 것이다. 모모는 정말 착한 사람이니까 아마 이번에도 언젠가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리라.

결국, 나는 둘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무무와 모모가 자신들의 결혼식에 나를 초대했다면 그리고 내가 그 초대에 응했다면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더 잘 사과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므로. 결혼식은 화해하려 애쓰는 장소나 시간이 아니라 화해를 기대하는 장소이자 시간이다.

모든 결혼은 지금까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를 위한 것이다. 결혼은 사랑의 뿌리가 될지언정 사랑의 열매가 되지는 못한다. 사과 역시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과란 지금부터 뿌리를 새로이 내려보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썩은 뿌리를 잘라내보자는 전언. 그러므로 결혼보다 사과가 어렵고 결혼보다 사과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한다. 이제 무무와 나와의 관계에는 뿌리가 없다.

기자명 김현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