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연 할머니. 1937년생 소띠. 스무 살에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로 시집온 뒤로는 줄곧 ‘봉정댁’으로 불린다. 1935년 돼지띠 “할배”를 만나 이곳에서 아들 셋, 딸 둘을 키웠다. 다섯 중 넷은 이제 타지에 산다. 떠나보낸 자식들의 빈자리만큼 할머니 얼굴에는 주름이 내려앉았다.

4월12일 봉정댁 도금연 할머니는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 난 도로를 가로막고 앉았다. 광케이블을 싣고 사드 배치 예정지인 롯데성주CC골프장(이하 롯데골프장)으로 향하는 트럭을 막기 위해서다. 도금연 할머니를 비롯한 소성리 할머니 10여 명이 맨 앞줄에 앉았다. 소성리를 찾은 청년과 활동가 30여 명도 자리를 잡았다. 빨강색, 자주색, 노란색, 봄꽃보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었지만 할머니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요 며칠 언론은 계속해서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1차선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경찰 병력이 할머니들을 에워쌌다. 원래도 눈물이 많은 장경순 할머니가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내 이래 많은 경찰은 처음 봐. 내가 10까지 셀 수 있는데, 경찰버스가 너무 마이 와서 그 다음으로는 몬 셌어.” 하늘에서는 컨테이너를 매단 시누크 헬기가 잇따라 골프장 쪽으로 사라졌다. 낮고 무거운 소음이 대지 위로 내려앉았다. 할머니들은 헬기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저렇게 헬기로 나르니까 막지도 몬 하고 아주 화가 나서 미쳐뿔갔다.” 도금연 할머니가 막대기를 휘두르며 말했다. “일로 오면 이걸로 때리삘 낀데.” 이날 골프장으로 향하려던 트럭은 결국 할머니들에게 막혀 돌아갔다. “우리가 이겼다!”라는 도금연 할머니의 농담에 잠시나마 웃음이 번졌다.

ⓒ시사IN 조남진4월13일 사드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군 소성리 마을 상공으로 미군 헬리콥터가 물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도금연 할머니의 고향은 경북 성주군 초전면 봉정리다. 소성리와 산 하나를 경계로 마주보는 옆 동네인데도 할머니는 소성과 봉정을 엄밀하게 구분했다. 올망종망 어린 자식들을 달고 친정에 들르곤 했지만 “어마이, 아바이”가 돌아가신 뒤로는 발길을 끊었다. 그 이후 소성리는 도금연 할머니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소성리에서의 삶은 단순했다. 봄이면 마을을 둘러싼 산에 올라 고사리·달래순을 뜯고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채취했다. 롯데골프장이 들어선 산도 그중 하나다. 특히 두릅이 많이 났다. 4월 중순이면 새순이 돋아난 두릅을 한창 따러 다닐 때다. 그러나 올봄 소성리 ‘부녀자’들은 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롯데골프장에 사드 기지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경찰 병력은 지난 2월부터 골프장으로 오르는 길목을 막고 통행을 금지했다.

지난해 9월30일, 성주군 성산포대가 ‘최적지’라며 사드 부지로 발표했던 국방부는 초전면 소성리 롯데골프장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주변에 민가가 적다’는 점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소성리에는 70여 가구, 주민 166명이 산다. 대부분 도금연 할머니처럼 고령 노인들이다. 인접한 김천 농소면, 남면까지 합치더라도 주민 수는 2100여 명에 불과하다.

ⓒ시사IN 조남진도금연 할머니(사진)는 140㎝ 될까 말까 한 체구를 이끌고 사드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소성리 할머니들의 삶은 복잡해졌다. 오전 10시 마을회관으로 출근해 다함께 모여 점심을 먹고 해질녘 집으로 돌아가는 일과에 촛불집회가 추가되었다. 할머니들은 밤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성주 읍내로 향했다. 읍내까지는 차로 30분 거리다. 할머니들의 이마에는 ‘사드 배치 반대’ 머리띠가 둘러져 있었다. 도금연 할머니는 140㎝가 될까 말까 한 작은 체구를 이끌고 사드 반대 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소성리 할머니들이 사드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서울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광화문 집회도 가고, 청계천을 따라 행진도 하고, ‘사드 부지를 제공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대치동 롯데상사 본사도 방문했다. 도금연 할머니는 “내 소원은 사드 치아뿌리는 것배께 없다”라고 말했다.

도금연 할머니가 막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인지, 사드는 어느새 코앞까지 와버렸다. 지난 3월6일 주한 미군은 미국 텍사스 포트블리스에 배치되었던 사드 발사대와 요격미사일을 오산기지에 이동시켰다. 핵심 장비인 X-밴드 레이더도 3월 말 국내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드 발사대는 현재 성주 근처인 경북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있다.

촛불집회 참석자 100여 명으로 줄어

롯데골프장으로 사드 부지가 변경된 이후, 김항곤 성주군수는 사드 배치 찬성으로 돌아섰다. 성주군은 ‘대구~성주 간 경전철 건설’ 등의 내용이 담긴 보상안을 확정했다. 조만간 국방부에 사드 부지를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달라는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사드배치반대 성주투쟁위원회는 성주읍에 마련한 ‘평화나비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창때 2000여 명에 달했던 참석자는 100여 명으로 줄었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은 “국방부도 그렇고, 군청도 그렇고 주민 수 적고, 어르신들만 있다고 사드를 소성리에 몰아넣을라 칸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사람이 있다’ ‘최고의 무기는 평화’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하라’ 등의 글귀를 지키는 일은 이제 소성리 할머니들 몫이다.

온종일 헬기 소리가 소성리 하늘과 땅을 뒤덮었던 4월13일, 국방부는 “불도저, 굴착기, 물탱크 등 사드 배치 작업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를 모두 이송했다”라고 밝혔다. 내내 씩씩했던 도금연 할머니도 이 소식에 낙담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포기해야 카나” 도금연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한탄을 내뱉었다.

저녁 7시30분 할머니를 태우고 읍내로 갈 차가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평화나비광장에 도착한 도금연 할머니는 능숙한 솜씨로 ‘사드 배치 반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촛불을 밝혔다. 두 주먹을 불끈 쥔 할머니가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275번째 촛불집회였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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