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중이 묻는다. “저는 형편에 따라 다르게 지급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전 선별주의인가요?” 보편 복지를 옹호하는 강사를 향한, 무척이나 솔직한 질문이다.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계시네요, 말씀의 취지를 이해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지 논쟁은 사실상 2010년 보편·선별 복지 담론에서 본격화되었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는 모든 후보가 복지국가를 약속하는 상황으로 급진전했다. 그런데 정치적 진영 논리가 첨예하게 작동하면서 논쟁이 선악 이분 구도로 진행된 면이 있다. 보편 복지 시각에서 선별 복지는 사람을 차별하는 제도로, 선별 복지 시각에서 보편 복지는 예산을 함부로 쓰는 비효율적 제도로 간주되었다. 시민들의 생각은 한층 더 복잡했다. 복지가 권리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인식하면서도 부잣집 아이들, 부자 노인들까지 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마음속에 맴돌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비슷한 논쟁 구도가 펼쳐진다. 지난 3월 방송 토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현재 하위 70%에게 적용되는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말하자 이재명 후보가 반박했다.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제공해야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민주당의 정체성에 맞는다며 “모든 65세 이상에게 지급하느냐, 아니면 70% 노인에게만 지원하느냐는 철학의 차이”라고 꼬집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대상을 더 좁힌 공약을 내놓았다. 하위 50% 노인에 한해 기초연금을 차등 인상한다. 이재명 후보의 눈으로 보면 더욱 선별주의로 기운 방안이다.

근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보육료를 5분위로 차등 지원하는 공약을 내놓았다. 현행 방식은 모든 아동에게 연령별로 동일액을 지원하는데, 이 공약은 최상위 20%는 제외하고 최하위 20%에게는 지금보다 두 배 제공하는 하후상박 방식을 적용했다. 유사한 논쟁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반값 등록금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계층을 따지지 않고 등록금의 절반을, 박근혜 후보는 80% 계층까지 소득에 따라 차등 지원하자고 제시했다.

 

ⓒ연합뉴스4월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빈곤 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 대선 후보의 '기초연금 30만 원 공약'이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기초생활 수급 노인들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어떤 방식이 우리에게 적절할까? 아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차등 지원은 보편주의와 상충하는가? 보편주의는 위의 다양한 복지 설계도를 어떻게 이해할까?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델로 손꼽히는 스웨덴의 사례를 보자. 스웨덴은 1998년 이전까지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에게 제공하다가 이후 하위 계층에게만 적용하는 최저연금 방식으로 개편했다. 국민연금이 일정액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부족한 금액만큼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한다. 그 결과 현재 노인 중 약 40%만 기초연금을 받는다.

이는 선별주의로 후퇴한 것일까? 기초연금 프로그램만 보면 그렇다.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여기서 기초연금 개별 ‘제도’를 넘어 노후소득 보장 ‘부문’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스웨덴 노인들은 현재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으로 구성된 공적연금 이원 체계에서 두 연금을 합해 최저연금액을 보장받는다. 이 금액이 상시노동 평균소득자 월급의 24% 수준, 스웨덴 1인 최저생계비의 약 2배에 해당한다. 상시노동자 평균소득 기준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기초연금 급여율이 6%이므로(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기준 10%), 우리보다 4배 높은 금액이다. 결국 기초연금만 보면 선별주의이지만 노후 소득 보장 시야에서는 모든 노인이 최저생계비의 2배 이상을 공적연금으로 보장받는 보편주의로 볼 수 있다. 노인의 삶에 절실한 의료·주거·공동체망까지 포괄하는 사회 ‘체제’ 수준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편주의 핵심은 모든 시민을 포괄하는 ‘권리’로서 복지

우리나라에서 보편·선별 복지 논쟁이 등장한 지 어느새 8년째다. 무상급식·무상보육·기초연금이 시행되고, 시민들이 해당 복지의 강·약점도 체험하고 있다. 아쉬운 건, 보편·선별 논쟁이 처음 출발할 때의 방식, 즉 여전히 개별 제도에 머문다는 점이다. 물론 이 수준에서도 논의가 필요하고 대상에 따라 균등한, 혹은 원리를 혼용한 방식이 제시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보편주의 여부를 따지는 건 제한적이다. 보편주의의 핵심은 모든 시민을 포괄하는 ‘권리’로서 복지이다. 이 권리 보장은 개별 ‘제도’보다는 ‘부문’ ‘체제’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종합적이고 실질적이다. 여러 수준의 시야에서 보편주의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기 바란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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