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아는가. 찬란한 봄날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통영항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옛날 뱃사람처럼 충무김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해질녘엔 ‘다찌집’에서 해산물 안주에 술잔을 기울였던가. 그렇게 남쪽 바다의 정취에 흠뻑 취했던가.

통영은 항구다. 이순신 장군이 1593년 통영 앞바다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기 훨씬 이전부터, 100년 전 작곡가 윤이상이 유년기를 보낸 시절에도, 21세기 들어 동피랑마을이 철거 위기에 처했을 때도 통영은 항구였다.

ⓒ윤성희동피랑마을에 올라 바라본 강구안. 바다가 육지로 쑥 들어온 지역에 생긴 통영항은 천혜의 피항지다.

바다가 육지로 쑥 들어온 지역에 생긴 통영항은 예로부터 항구로서는 최적이었다. 고깃배가 무시로 항구를 드나들었고, 짠 내 물씬 풍기는 선창가에는 곳곳에서 생선 말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런 강구안을 바라보며 박경리는 글을 쓰고, 이중섭은 그림을 그렸다.

그런 통영이, 사라지고 있다. 낡고 오래된 것,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이 설 자리를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다. 통영을 사랑했던 시인 백석의 이야기처럼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우는’, 그리하여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풍경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통영은 더 이상 항구가 아니다.

“어민들더러 죽으라는 이야기냐”

발단은 ‘통영항 강구안 친수시설 조성사업’이다. 강구안은 동쪽으로는 동피랑마을이, 서쪽으로는 서호시장과 다찌집이 있는 통영항의 중심부다. 통영항의 백미라 해도 좋을 이곳 강구안에 오는 6월부터 개발 열풍이 몰아친다. ‘도심 속 노후 항만을 새로운 개념의 친환경 미항으로 개발한다’는 것이 이 사업의 목적이다.

사업 핵심은 이렇다. 첫째, 강구안 일대를 공원화한다. 둘째,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광장 등을 만들기 위해 차량 진입을 막는다. 기존 주차 시설도 없앤다. 셋째, 이곳에 정박 중인 어선을 외곽의 대체 항구로 이동시킨다. 가장 논란이 되는 건 항구를 드나들던 어선 500여 척을 외곽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다. 항구를 공원화한 사례는 많지만, 어선까지 내보낸다는 계획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사업을 추진하는 곳은 경상남도, 통영시, 그리고 해양수산부 산하 마산지방해양수산청(마산해수청)이다. 국비 413억7200만원이 들어간다. 이미 2009년부터 기본설계가 마련되는 등 10년 가까이 사업 추진 절차를 밟아오다 올해 들어 본격화했다. 오는 6월 시행사를 정하고, 여름께부터 착공에 들어가 2020년 완공할 예정이다.

ⓒ윤성희강제윤 시인은 통영시 개발 정책에 맞서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사업이 통영 밖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한 시인의 언론 기고를 통해서다. 강제윤 시인(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한국일보〉에 ‘어선들 쫓아내고 관광 미항 만든다는 마산해수청’이라는 글을 썼다. 유서 깊은 강구안에서 어선을 내보내겠다는 것은 역사 문화를 말살하고, 혈세를 낭비하는 전시행정이라고 꾸짖었다.

마산해수청은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정부기관이 외부 기고자의 칼럼에 해명자료를 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마산해수청은 강구안 내 정박 중이던 어선을 이동시킬 대체 부두 건설을 이미 완료했으며,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영의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친수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해명자료에는 빠진 것이 있었다. 해명자료를 보더라도, 왜 어선을 항구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공원화를 진행하되 어선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것 아닐까. 마산해수청 관계자는 “항구가 너무 더럽다”라고 답변했다. 어선 정박으로 인해 해수 오염이 심하고,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에 대체 부두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관광 미항’을 만드는 데 어선이 걸림돌이라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통영판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4월10일 통영 강구안에서 강제윤 시인을 만났다. 전남 보길도가 고향인 그는 통영에 반해서 2011년부터 동피랑마을 창작공간에 살고 있다. 그동안 〈통영은 맛있다〉   〈걷고 싶은 우리 섬-통영의 섬들〉 등 통영의 맛과 멋을 담은 책을 펴내는 한편으로 윤이상 생가 터 보존, 국가무형문화재 추용호 장인의 전통공방 철거 반대 운동 등 통영시 정책에 맞서는 활동을 펼쳐왔다.

그런데 지난 2월 통영시는 강 시인에게 동피랑 창작공간에서 나가달라고 통보했다. 1년에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입주 조건을 어겼다는 지적이었다. 이미 주소지까지 통영으로 옮긴 강 시인은 통영시장에 대해 비판적 활동을 펼친 것에 대한 보복이라며 버티는 중이다. ‘통영판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었다.

강제윤 시인과 함께 동피랑마을에 올랐다. 평일인데도 마을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마을 전망대에서 강구안을 굽어보던 강 시인은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저 어선이 정박한 풍경을 보세요. 요즘도 강구안에서는 배고사를 지내는 풍경을 볼 수 있어요. 그 풍경 자체가 문화이고 역사입니다. 어선이 없는 항구가 어떻게 관광 미항입니까.”

마을에서 내려와 강구안 ‘싼판’으로 향했다. 싼판은 부두에서 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부잔교를 말한다. 어선이 이곳에 배를 대고 상인에게 물고기며 해산물을 넘긴다. 방금 앞바다에서 놀래기를 잡아온 고깃배에서 한 상인이 값을 치르고 있었다. 그에게 앞으로 어선이 정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큰일 납니다. 쉽게 못할 겁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상인들은 조만간 어선이 항구 바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어떤 이는 화장실 개선사업 정도를 벌이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주민설명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는 행정당국의 설명이 무색했다. 한 상인은 “큰 태풍이 오면 멀리 삼천포 배들이 피해 들어올 정도로 강구안은 천혜의 피항지다. 강구안 밖으로 나가라는 건 어민들더러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되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성희통영 강구안 ‘싼판’에 고깃배가 들어왔다. 한 상인이 생선을 넘겨받고 있다. 상인들은 조만간 어선이 항구 바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이미 조성이 완료된 대체 항구는 통영시 미수동과 당동, 두 군데에 있다. 강구안에서 직선으로 3㎞ 가까이 떨어진 거리다. 통영시 관계자는 “강구안이 천혜의 피항지인 것은 맞지만, 통영 전체가 지형상 태풍으로부터 안전하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설령 이 말이 옳다 해도 문제는 더 있다. 지금은 시장 상인들이 강구안에 정박한 배에서 직접 생선을 넘겨받아 손수레 등으로 끌고 간다. 항구가 이전하면 꼼짝없이 활어차로 운반할 수밖에 없다. 상인들로서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100년 넘은 극장은 주차타워로

통영시는 이런 점을 고려해 기존 싼판을 콘크리트로 다시 짓고, 어선이 잠시 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당장 숨통이야 트이겠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선으로서는 싼판을 들렀다 다시 항구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신설 싼판도 결국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생선 좌판, 해산물 건조대 등 항구 특유의 풍경도 사라진다. 이 ‘낡고 더러운’ 것들이야말로 강구안 친수시설 사업에서 행정당국이 손보고자 했던 1순위였다. 차량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만큼 장을 보러 이곳을 찾는 외지인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 항구 기능이 사라짐에 따라 자칫 강구안 내 시장도 활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나온다.

통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항구 풍경만이 아니다. 얼마 전 통영세관 비즈니스센터 옆에 들어선 수군 조형물 광장은 100년 이상 된 근대건축물 여러 채를 헐고 만든 콘크리트 공간이다. 1914년 지어져 통영 문화예술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던 봉래극장은 10년 전 철거돼 이제 공영 주차타워가 될 운명에 처했다.

ⓒ윤성희철거가 예정된 추용호 장인의 공방은 1868년 지어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윤이상 선생 생가 터와 맞닿아 있다.

주민들 반대해도 통영시장은 ‘마이웨이’

강구안에서 1㎞ 남짓 떨어진 윤이상 기념공원에 가면 더욱 기가 막힌 풍경이 있다. 공원 바로 옆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추용호 장인이 1년 가까이 노숙 농성을 벌이는 중이다. 통영시가 소방도로를 내기 위해 추 장인의 공방을 철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공방은 1868년 삼도수군통제영 시절에 지어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공방이 통영 출신 세계적 음악가인 윤이상의 생가 터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윤이상 기념공원 옆에 도로를 내기 위해 정작 윤이상 생가 터를 훼손할 수 있는 일을 벌이는 꼴이다. 강 시인은 “기념공원에 윤이상 선생의 독일 집 주차장까지 복원해놓았으면서 정작 생가 터는 훼손하겠다는 것이냐”라고 울분을 토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추석 때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용호 장인을 만나는 등 정치권까지 관심을 보였지만 통영시의 도로 개설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통영 난개발의 정점은 호텔 사업이다. 통영시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 인근에 있는 발개마을은 주민 9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2013년 날벼락이 떨어졌다. 통영시가 재미동포 2세가 운영하는 미국 스탠퍼드호텔 그룹과 호텔 건립 협약식을 맺었다. 호텔은 마을 바로 뒤편 언덕에 짓기로 했다. 마을은 호텔 소유 공원이나 주차장이 될 운명에 처했다. 주민들이 격렬히 반대했지만 사업은 착착 진행됐다.

통영시가 마을 땅을 사들여 스탠퍼드호텔에 우선 매각한다는 협약 조항이 알려지면서 특혜 논란도 일었다. 심지어 호텔 주변에 새로운 숙박시설이 들어설 경우 스탠퍼드호텔과 사전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논란은 커졌지만 호텔은 이미 올여름 완공을 앞두고 있다. 19층 높이에, 객실 300개에 달하는 국제 규모 호텔이다. 당장 통영 내 호텔·펜션 등 숙박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모든 논란의 중심에 있는 통영시는 ‘마이웨이’다. 웬만한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인다. 지역에서는 통영시와 특정 건설회사의 유착설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지역 정치권의 한 인사는 “난개발 시정으로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는 통영의 가치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라고 말했다.

ⓒ윤성희통영국제음악당 인근에 건축 중인 19층 높이, 객실 300개 규모의 스탠퍼드 호텔(아래). 현재의 강구안과 대체 항구의 위치(맨 아래).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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