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파일을 들고 기자들 앞에 섰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대서특필. 곧 역풍을 맞았다. 내부고발자가 사기범·성폭행범 전과자였다는 기사가 폭로 내용을 덮었다. 검찰과 재벌, 언론의 부당 거래가 은밀하게 작동했다. 영화 〈내부자들〉의 안상구(이병헌)는 그렇게 파렴치범이 되었다. 영화 속 픽션일까?


2007년 10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첫 기자회견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삼성은 ‘돈을 노린 폭로’라고 물타기했다. 삼성그룹의 홍보 최고 책임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차명 계좌는 없다. 개인 간 거래’라며 거짓말을 했다. 메이저 언론사는 그대로 받아썼다. 경찰은 김 변호사 가족이 운영한 노래방에서 주류를 판매했다고 확인해주었다. 언론은 ‘퇴폐 영업’이라고 부풀렸다. 경찰과 재벌, 언론은 그렇게 김 변호사를 파렴치범으로 몰았다. 파렴치범의 폭로이니 그 내용도 허위라는 공격이었다. 김 변호사는 기자회견장에서 말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봐달라.”

2017년 박근혜 게이트를 폭로한 고영태씨가 체포되고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체포 전부터 그는 ‘안상구’였다. 사기, 불법 경마 도박 사이트 운영 사실이 줄줄이 보도되었다. 고씨의 무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검찰의 처신은 정치적이었다. 검찰은 처음에 그를 내부고발자로 보았다. 탄핵 반대 세력 쪽 여론 눈치를 살폈다. 검찰은 고씨의 손가락 지문까지 살펴보았다. 검찰은 출석 통보를 하려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고씨를 체포했다. 거짓말이다. 검찰은 몰랐을 것이다. 주진우·김은지 〈시사IN〉 기자가 고영태씨가 검찰과 출석 날짜를 조율하며 통화할 때 옆에서 지켜보았다.

검사 앞에 앉아본 이들은 “검사와 하나님이 동격”이라고 말한다. 검찰을 취재해본 기자들은 이 말에 수긍한다. 유무죄는 법원이 가린다. 피의자를 법원에 보낼지 말지는 검사가 결정한다. 기소를 하면서도 형량이 가벼운 죄목으로 할지 무거운 죄목을 적용할지도 검사 손에 달려 있다. 힘없는 이들에게 검찰권은 엄정하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처럼 힘 있는 이들에게 검찰권은 엉성하다(32~34쪽 기사 참조). 검찰의 행보를 보면 〈내부자들〉이나 〈더킹〉 속 이야기가 픽션만은 아니다. 고영태씨가 풀려나면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 한잔” 사주고 싶다. 결과적으로 지난 제494호 “검찰이 우병우를 구속시킬 것이다”라고 쓴 ‘편집국장의 편지’를 바로잡는다. ‘우병우는 살았고 검찰은 죽었다’는 말이 다름 아닌 검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5월9일 선거로 들어설 새 정부가 하나님과 동격인 검찰을 주권자 곁으로 내려만 놓아도 절반은 성공한 정부다.

※ 지난 제500호 ‘김경수의 시사터치’와 관련해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고 최동원 선수의 어머니와 그 가족, 최동원 선수를 아꼈던 팬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시사IN〉은 제작 과정을 다시 되돌아볼 기회로 삼겠습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