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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운운이 불편한 이유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7년 04월 20일 목요일 제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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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 레이스에 나선 거의 모든 주자가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듣기가 거북하다. 대통령 선거전도 유행을 타는지 지난번에는 모든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합창하지 않았던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당선한 대통령이 전형적인 과거형 정경유착 비리를 저지르고 쫓겨나고야 말았다는 게 웃프다. 이번에는 모든 주자가 대한민국이 첨단 사이버 기술에 올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마당이니 ‘다음에는 또 어떤 굴뚝형 부패를 목격하게 될까’ 걱정해야 하는 걸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만두자마자 그렇게 건져내기 힘들었던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걸 바라보면서 4차 혁명 운운에 대한 거부감은 더 커졌다.

재난에도 미덕은 있는 법이다. 재난은 그 사회의 무대 뒤편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분장을 지우고 연출을 하지 않은 사회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세월호 역시 안티에이징 시술을 받은 듯 겉모습만 멀쩡한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하나하나 무참하게 끄집어내는 중이다.

세월호가 들춰낸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말하기에 앞서 분명히 밝혀둘 게 있다. 세월호는 침몰하지 않았다. 바람도, 안개도, 파도도, 암초도, 빙산도, 그 어떤 외부 요인도 없었다. 반란이나 테러, 화재, 폭발 같은 내부 요인도 없었다. 세월호는 말 그대로 넘어갔다. 쉽게 말해 5000t이 넘는 대형 선박이 정해진 항로를 따라가다 맥없이 뒤집힌 것이다. 이 배는 침수되고 나서 물먹은 종이배처럼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3일 가깝게 떠 있었다. 세계 해양사고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우일 그림
박근혜 게이트 수사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지난 정권의 수뇌부가 세월호 참사에 거의 비정상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끝내 운명의 그날 7시간 동안 무얼 했는지 해명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친박 의원들과 극우 단체까지 동원해 무리하게 유가족을 공격한 게 단순히 대통령의 태만과 정권의 무능을 덮기 위해서만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정미홍씨처럼 세월호라면 이성을 잃는 사람들이 주장하듯 결코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세월호 전복은 아직 사고인지 사건인지조차 확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체 인양은 결정적인 흉기를 찾아낸 것과 같다. 진상 규명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 정권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독립 기관에 조사를 맡겨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의 강력한 견제와 압박 속에서 검찰이 건성으로 진행한 수사 결과를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유가족이 3년 동안 그 모든 핍박을 견디며 거리를 떠돈 이유는 단 하나. 내 피붙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세월호를 인양한 후 해양수산부가 끊임없이 또 유가족의 속을 뒤집는 걸 보면서 이런 유의 조사는 반드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진상 규명의 길은 멀지만 세월호는 지금 상태 그대로도 우리에게 숱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리라고 말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해운 안전 시스템을 땜질하는 이상의 처방이 우리 사회에는 필요한 게 아닌지 묻고 있다.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다른 소중한 것들은 모두 비용이나 낭비라고 여기며 살아온 결과를 좀 들여다보라고 윽박지른다. 대선 후보들이 여전히 성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한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서 얻을 교훈은 없다고 호통치는 것만 같다. 내가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걷지도 못하면서 매번 날겠다고 큰소리치는 격이 아닌가.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비슷한 사고의 재발조차 막지 못했다. 당장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의 실종자 가족이 또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은가.

‘목걸이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가 결정한다’

독일의 수공업자들은 말하곤 한다. ‘목걸이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가 결정한다’고. 마찬가지로 다리의 하중을 결정하는 것도 각 교각 사이의 평균 강도가 아니다. 하중이 어느 한 곳의 지지 능력을 넘어서는 순간 다리는 무너진다. 나머지 교각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가장 약한 구간 하나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평균 강도를 올리는 데 집착해왔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 지표를 끌어올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환상 속에서 살았다. 고속 성장이라는 신화에 취해 약한 고리를 외면하거나 애써 무시했다. 약한 고리에도 관심을 쏟는 게 바로 공공의식이다. 전 세계에서 공공성의 위축을 부른 세계화 바람이 거세진 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는 더욱 가냘파졌다.

여름 한철 빼고 여객선을 이용하는 이들은 섬에 사는 어민뿐이다. 연안여객업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자생하기 힘든 구조이다. 공공성이 짙은 업종이라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세계 최고의 선박 생산 국가에서 어째서 세월호 전복과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의아해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정부는 선박회사가 새 배를 건조하면 비용의 반을 댄다. 우리나라에선 오로지 선박회사 책임이다. 그러니 일본에서 낡은 배를 들여올 수밖에 없다. 선원의 임금을 후려치거나 과적을 일삼는 불량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이 업종은 녹색성장이니 창조경제니 하는 견고한 고리와는 거리가 멀다. 재난을 키우는 관피아(유관 단체로 자리를 옮긴 퇴직 관료)의 서식지가 되기 십상인 사각지대다. 이런 방치와 도덕적 해이는 공공성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만연해 있다. 우리가 익히 경험했듯이 메르스 사태나 경주 지진 때 정부와 유관 기관들이 애처로울 정도로 허둥대지 않던가.

대한민국 사회가 위태롭게 돌아간다는 사실은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눈치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이공계 고등학교 졸업자가 성적순으로 무조건 의대로 진학한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하도 자연스러워 이제는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지경이다. 대졸자건 고졸자건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현상은 또 어떤가. 진로를 선택할 때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용감해야 마땅한 젊은 세대의 날개가 꺾였다. 평균치에서 아래로 멀어질수록 극도로 위험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죄악은 평균을 깎아먹는 일처럼 보일 지경이다. 대기업과 일반 기업 간, 업종 간 임금 격차가 극심하고, 비정규직 비율이 너무 높아 대한민국의 젊은이 대다수가 불확실성이라는 덫에 빠져 허우적댄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에 폭격을 퍼부을 때 미군은 민간인 사상자를 가리켜 ‘부수적 피해자’라고 부른다. 의도하지 않은, 뜻하지 않은 희생이 발생했다는 뜻에서다. 미군이 수행하는 작전은 너무나 중요해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들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용어다.

사회학자들은 이 말을 빌려 지금 전 세계의 약자는 부수적 피해자가 될 위기에 몰렸다고 말한다. 빈부 격차의 심화로 약자가 점점 더 고통의 나락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뜻에서만은 아니다. 실제로 약자가 재난에서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면 불평등이라는 사다리의 맨 밑바닥에 자리한다는 것과 재난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 사이에는 친화성이 높아졌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흑인과 빈민이 압도적으로 많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나는 언제 사다리의 밑바닥에 떨어져 목숨마저 위태로워질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역시 부수적 피해자라고 여긴다. 서울 강남 학생들이 세월호에 탔다면 유가족이 그 고통을 받고 선체를 인양하는 데 3년이나 걸렸겠느냐는 일부의 탄식에 공감한다. 대한민국에서 불평등은 사회병리 현상과 친화성이 깊다.

사회학자들은 현대를 이중 위험 사회라고 부른다. 지진·태풍·경제위기·전쟁과 같은 과거형의 위험과 기후변화에 따른 농업 수확 감소 및 광우병이나 조류독감과 같은 국경을 넘나드는 미래형 위험에 동시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과거형의 위험을 관리하는 데도, 미래형의 위험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데도 유능하지 못하다. 오죽하면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위험 국가라고 말했겠는가.

언제라도 한반도를 덮칠 미래형 위험은 수두룩하다. 당장 중국발 황사와 우리 사회의 대기 감시 소홀이 합작한 미세먼지 피해는 재난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이나 일본의 좀 더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1년 중 75일이나 야외 활동을 자제해야 하며 그 기간은 계속 길어질 것이다.

날로 노후화해가는 원자력발전소는 영원한 골칫덩이다. 대선 후보 가운데 독일처럼 노후화한 원전은 폐기하고 새로운 원전은 짓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이들이 있는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본은 체르노빌급의 원전 사고를 당하고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중국은 우리와 인접한 해안에 원전 수십 개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 200기의 원전을 이미 지었거나 지으려고 계획 중이다. 미세먼지도 원전도 우리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아니 운명은 누가 과거형과 미래형의 위험을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수 있다. 운이 나쁘면 차기 대통령은 재난 관리에 임기를 모두 보내야 할지 모른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국민의 공공의식이 강한 나라가 재난 대처에도 능하다. 참여나 이타심, 관용과 같은 사회 지향 가치를 삶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나라의 국민이 재난을 잘 극복한다. 하지만 한국 국민은 경쟁이나 성공과 같은 시장 지향 가치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적대적인 이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과 스웨덴처럼 공공지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탈물질 성향이 강하다. 한국은 반대로 ‘가방끈’이 길고 돈이 많을수록 오히려 물질 지향적이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다리 상층부의 공공의식이 낮다는 뜻이다. 밉든 곱든 전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든 게 세월호가 부린 가장 큰 조화다. 과연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이 각성할 수 있을까. 문제가 뭔지 알게 된 것만 해도 어딘가.

참고한 활자:<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한울), <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 (생각의길), <세월호는 왜?>(조선뉴스프레스), <부수적 피해>(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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