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 된다황상민 지음, 푸른숲 펴냄대선 전 ‘줏대와 소신이 있다’며 노무현 후보에게 열광하던 유권자들은 왜 집권 이후 같은 행동을 하는 그를 ‘품위가 없다’며 헐뜯었을까? 심리학자인 저자는 배우자와 대통령을 고르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장밋빛 기대가 싸늘한 실망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상대의 인품이나 능력에 문제가 있어서? 아니면 제왕적 대통령제처럼 제도가 잘못돼서? 저자에 따르면 이는 결국 ‘심리’의 문제다. 그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뀐 것이다. 그런 만큼 ‘누가 유력하지?’를 따지기보다 유권자가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이재명· 반기문 등에 투사된 유권자의 욕망을 분석한 대목이 흥미롭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기시다 슈 지음, 권정애 옮김, 펄북스 펴냄사자의 욕망은 개체 보존과 종족 보존이라는 ‘현실’에 밀착되어 있다. 이와 달리 인간은 재미로 다른 생명을 살상하고, 임신과 전혀 별개의 목적으로 섹스를 즐긴다. 한평생 펑펑 낭비해도 100분의 1도 쓸 수 없는 규모의 재산을, 단지 소유하기 위해 축적한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소유하며 갈망하는 비현실적이고 반자연적인 동물이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반자연적인 존재를 ‘유환론(唯幻論)’이라는 틀로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명쾌하고 기발하게 설명한다.성도착에서 혁명, 전쟁, 종교, 화폐, 심지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라는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현상과 기본적인 세계관들이 어떻게 “환상에서 비롯되는지” 읽다 보면 고정관념이 파괴되는 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라이팅하우스 펴냄최근 중국 문학청년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등극한 작가 겸 가수인 다빙이 거리에서 노래하며 중국 대륙을 떠돌던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이른바 ‘강호 삼부작’ 가운데 한 권이다.덩샤오핑의 1가구 1자녀 정책 이후 태어난 ‘바링허우(1980년 이후) 세대’가 주인공들. 모두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 외동으로 곱게 자라나 ‘소황제’로 불리던 바링허우들이, 양극화되고 모순으로 가득한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진’ 현대 중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2015년 출간 이후 한 달간 중국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현지에서 26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유머와 공감으로 무장한 다빙의 이야기들’이다.

왕의 도주주명철 지음, 여문책 펴냄 박근혜 게이트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일부 호사가는 그녀의 ‘망명’을 점쳤다. 비슷한 상황에서 망명을 시도한 이가 있다. 프랑스 루이 16세다. 도도한 혁명의 물결에 저항할 수 없었던 그는 1791년 6월20일 자정 튀를리 궁전에서 몰래 나왔다. 야반도주는 30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저자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5권인 〈왕의 도주〉는 루이 16세의 30시간 도주 실패 사건을 다뤘다. 이 사건으로 왕정 폐지 여론이 들끓었다. 그의 도주 실패는 프랑스 혁명의 전진을 위한 ‘원료’가 됐다. 1793년 1월21일 그는 결국 처형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만약 해외 망명을 시도했다면?’이라는 가정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요즘 상황과 겹쳐, 술술 읽힌다. 

자기 앞의 생윤정모 지음, 문학과행동 펴냄〈고삐〉의 작가 윤정모 장편소설. 3년간 구상하고 1년간 연재, 다시 1년간 퇴고를 거친 촛불 민주주의 시민혁명의 전사. 소설은 일제 말기 강제징병을 거부하고 지리산에서 항일투쟁을 벌인 용하의 아버지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해방과 미소 군정, 분단과 한국전쟁에 이르는 과정이 CIA 비밀문서와 실존 인물의 수기를 토대로 펼쳐진다.이어 박정희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권하 온갖 범죄와 음모,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과 북 체제의 변화, 김대중 납치와 살해 기도, 광주민주화 운동과 6월항쟁, 박정희의 반역사적 체제로 회귀한 박근혜와 촛불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의 운동 전사가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서사, 밀도 있는 문체로 그려진다.

문학의 기쁨금정연·정지돈 지음, 루페 펴냄침묵, 침묵, 다시 침묵, 또 침묵…. 두 사람은 한 계간지의 연재 원고를 위해 마주앉아서 종종 침묵을 나눈다. 매 계절 신인 혹은 신인에 가까운 한국 작가의 단행본을 두고 깊이 있는 대화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니까 ‘새로운 문학은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대화. 그런 게 가능할 리가. 두 사람은 마감을 앞두고 자주 앓는다. “우리 어떡하지. 저 정말 글을 못 쓰겠어요.” 한탄이 이어진다. 일종의 문학평론이긴 한데, 에세이·대화·서간문 등 형식에 갇히지 않고 종횡무진 이어지는 ‘아무 말 대잔치’에 가깝다. 자주 웃기고, 때로 다정하고, 대개 솔직하다. 비평서를 읽으면서 폭소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으니 ‘재밌다’라는 말을 부디 믿어주길 바란다. 어찌됐든 이들이 언급한 작품들을 굳이 읽어보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ahnph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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