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훨씬 더 북쪽으로 올라와버렸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변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장 바다로 달려가 첨벙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포로는 자유롭지 못하니까.

모두 바다를 향해 서라고, 그가 말한다. 모래사장에 배를 깔고 엎드리라고, 그가 명령한다. ‘그’로 인해 ‘그들’이, 바다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리긴 해도 조금씩 바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게 끝까지 기어가 닿을 푸른 바다 생각에 미소가 번질 법도 한데 그들 중 아무도 웃지 않는다. 곱고 따뜻한 모래톱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잔뜩 겁에 질려 있다.


1945년 5월의 해변이기 때문이다. 독일군이 5년 동안 점령했다 떠난 덴마크 땅에 독일군 포로들이 엎드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어가고 있는 바닷가 가득 지뢰가 묻혔기 때문이다. 아무 장비 없이 그걸 다 일일이 맨손으로 파내야 한다. 지뢰를 묻어본 적도 해체해본 적도 없는 10대 소년병들이 그 위험천만한 일을 떠맡았다. 곱고 따뜻한 모래톱에 배를 깔고 엎드린 아이들이 잔뜩 겁에 질린 이유. 5월의 푸른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아이들 입가에 끝내 미소가 번질 수 없는 까닭.

쾅, 쾅, 쾅. 잇단 폭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아이들의 슬픈 바닷가로 단숨에 관객을 데려다놓는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로 잡힌 독일 소년병 이야기다. 독일군이 연합군 상륙에 대비해 덴마크 서해안을 따라 심어놓은 각종 지뢰가 220만 개. 종전 뒤 독일군 포로 2600여 명이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되어 절반 이상이 숨지거나 크게 다쳤는데, 대부분 소년병이었다는 게 역사의 증언이다.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명백한 포로 학대이자 아동 학대. 적국에 대한 앙갚음으로 정당화하기에는 희생된 소년병 수가 너무 많았고 아이들 나이는 너무 어렸다.

그중 ‘스캘링겐 반도’에 매설된 지뢰 4만5000개를 제거하는 소년병 열 명 남짓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석 달 안에 임무를 마치면, 그때까지 운 좋게 죽지 않고 버티면, 모두 집으로 보내주겠노라 약속한 덴마크 군 지휘관 칼(롤란 묄레르)이 아이들을 통솔한다. 나이만 어릴 뿐 독일군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혹여 자비를 베풀 마음 따윈 없었다. 그러나 함께 보낸 시간의 두께가 늘어나는 만큼 서로에게 품은 적의(敵意)의 부피가 차츰 줄어가는 초여름의 바닷가. 독일 군복을 입었을 뿐 여리고 꿈 많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결국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군복을 입어도 꿈 많은 아이라는 사실

이윽고 끝이 보이는 어느 날. 잔뜩 겁에 질린 아이를 토닥이는 칼. “날 따라 말해. 거의 다 끝났다. 나는 곧 집에 간다. 알겠지? 눈물 그쳐. 강해져야 한다. 할 수 있지? 이제 거의 끝났어.” 그러나 칼이 약속한 ‘거의’와 ‘곧’의 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아이들의 전쟁은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른다. 영화는 100분 만에 끝나지만 영화가 남긴 여운은 파란 하늘 위 한 줄기 비행운처럼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을 가로지른다.

지우고 싶은 역사는 원래 잘 지워지지 않는다. 감추고 싶은 역사는 자꾸 드러나게 마련이다. 영화 때문이다. 수치(羞恥)의 가치를 믿는 예술가의 집요한 노력 덕분에 인간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부끄러운 과오’를 다행히 잊지 않는다.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라는 베트남 작가 바오닌의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영화 〈랜드 오브 마인〉. 애틋하고 아름다운 라스트신 때문에 특히 더 오래도록 기억될 이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였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