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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두 알 값이 한 달 월급인 나라

중앙아시아는 세계 공중보건의 사각지대다. 전쟁과 가난으로 슈퍼결핵이 창궐하고 있다. 하지만 약값이 부담스러워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경없는 의사회가 이곳에서 의료 구호 활동을 펴고 있다.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파키스탄/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4월 12일 수요일 제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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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난은 인류에게 질병을 가져다준다. 그중 결핵이 가장 오래되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10대 사망 원인 중 하나다. 최근에는 약에 내성이 생긴 슈퍼결핵(다제내성 결핵)까지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 국제결핵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 세계에서 48만명이 슈퍼결핵을 앓고 있다.

세계 공중보건의 사각지대가 바로 중앙아시아다. 타지키스탄은 옛 소련의 통치에서 벗어난 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5년간 내전을 치렀다. 이슬람 세력과 친소련 세력이 서로 정권을 잡으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약 3000명에 이르는 고아가 수도 두샨베 거리에 내몰렸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채 추위와 싸우던 이들 사이에 결핵이 퍼졌다. 지금 20~30대가 된 이들의 결핵 발생 빈도가 상당히 높다. 슈퍼결핵 환자도 계속 느는 추세이다.

두샨베 소아결핵병원에서 만난 주피아(18·가명)는 슈퍼결핵 환자이다. 전쟁 후 가난과 혼란 속에서 새엄마 손에 자란 주피아는 결핵 판정을 받고도 제대로 약을 복용하지 못했다. 약을 먹다 말다 하면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매일 정확하게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슈퍼결핵 판정을 받고 병원 내 격리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학교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슈퍼결핵 환자라는 것이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라고 말했다.

ⓒ이주사랑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키르기스스탄 오슈의 한 병원에서 슈퍼결핵(다제내성 결핵) 환자(오른쪽)가 진료를 받고 있다.
키르기스스탄 오슈의 한 병원에서 만난 우르탐 씨(34·가명)도 슈퍼결핵 환자이다. 그는 키르기스스탄의 많은 가장들이 그렇듯 러시아로 노동을 하러 떠났다. 20대 중반 러시아에서 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지만 숨겼다. 약도 공급받기 어려워 치료는 뒷전이었다. 그렇게 방치한 결핵이 그의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확연히 줄고 나서 귀국해 다시 약을 복용하려 했으나 슈퍼결핵 판정을 받았다. 그는 “러시아 기차 안에서 기침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때는 결핵이 이렇게 무서운 병인 줄 몰랐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아빠이기 때문에 다시 기차를 탈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병원에서 만난 나세르(18)도 슈퍼결핵 환자이다. 그의 고향 마을 발루치스탄에서는 항상 정부군과 탈레반의 교전이 벌어졌다. 부모는 나세르가 아홉 살 때 결핵에 걸린 것을 알았으나 약을 타러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위험했다. 약을 살 돈도 없었다. 슈퍼결핵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생활하는 지금 몸무게는 40㎏ 안팎이다. 침대에는 객혈 자국이 선명했다. 이튿날 기자가 다시 방문했을 때 그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담당 의사 인티사르 씨는 “병세가 나날이 악화되어간다. 나도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 결핵약이 듣지 않기 때문에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격리뿐이다”라고 말했다.

결핵은 보균자의 기침과 콧물 혹은 비말로 전염되는 병이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 어디로든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만큼 결핵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결핵이나 슈퍼결핵 보균자를 통제하기 힘들다. 특히 중앙아시아 국가의 많은 노동자들이 러시아로 품을 팔러 간다. 인근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내전으로 의료 공백 상태나 마찬가지이다. 인근 국가인 파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으로 도망친 아프간 난민 사이에서 결핵이 번진다.

ⓒ국경없는 의사회/div>타지키스탄의 진료소를 방문한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가 결핵 환자 및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벨평화상 상금으로 ‘액세스 캠페인’


약값이 비싼 것도 슈퍼결핵 등장과 확산에 한몫했다. 타지키스탄처럼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이 70달러에도 못 미친다. 약값 대기가 벅찰 수밖에 없다. 한 알에 아무리 싸도 4유로(약 4800원), 슈퍼결핵 치료제의 경우 한 알에 32유로(약 3만8000원)에 달한다. 이 약들을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선진국병’에 필요한 신약은 계속 개발하지만 ‘후진국병’ 약 개발에는 소홀하다. 가난한 나라는 비싼 약품을 구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에볼라나 메르스 특효약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나마 슈퍼결핵 치료제인 베다퀼린이나 델라마니드가 수십년 만에 개발된 것만 해도 다행이다. 하지만 한 달 월급이 약 두 알 값도 안 된다. 너무 비싸서 일반 환자가 개별적으로 구입하기는 불가능하다.

작은 물꼬나마 튼 것은 국경없는 의사회였다. 1999년 노벨위원회는 긴급구호의 최전선에서 뛰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이 단체는 그 상금으로 거대 제약회사들에게 후진국형 질병의 약값을 낮춰달라는 ‘액세스 캠페인’을 시작했다. 지금 슈퍼결핵 약값이 떨어진 것도 그 덕분이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결핵 퇴치를 위한 진료 활동을 벌인다. 타지키스탄에서는 보건 당국과 협의해 슈퍼결핵 환자와 소아결핵 환자를 돌본다. 이 단체는 델라마니드를 활용해 다제내성 결핵(MDR -TB)과 광범위 내성 결핵(XDR-TB)을 성공적으로 치료한 사례를 보여주며 타지키스탄 정부에 신약을 도입하라고 꾸준히 설득했다. 그 결과 타지키스탄 보건부는 국경없는 의사회가 면세로 신약을 들여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중앙아시아에 델라마니드와 베다퀼린이 처음 도입돼 결핵 환자 치료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약을 보급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아직 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가 더 많다. 중앙아시아 산악지대 구석구석에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약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들 중에는 민간 방식으로 해결하려다 증상이 악화되는 이들도 있다. 키르기스스탄 남부 도시 오슈 종합병원에서 만난 율리아 씨(36)가 그런 경우다. 약 부작용으로 옆구리가 많이 아프고 구역질에 시달린다는 율리아 씨는 민간요법에 관심이 많다. “교도소에서 결핵에 걸려 나온 이웃이 있는데 개를 잡아먹고 몸무게가 늘어났다. 나도 약 복용을 중단하고 그 방법을 써볼까 고려 중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국경없는 의사회 키르기스스탄 지부 소속 의사 오마르 씨(41)는 “민간요법에 현혹되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부터가 커다란 도전이다. 10세 이하 소년의 소변을 받아 마시거나 이름 모를 풀 따위를 먹기도 한다. 그러다 나중에 슈퍼결핵 환자가 되어 다시 나타나면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들은 환자들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일명 ‘푸드 패키지’라 불리는 음식을 제공한다. 결핵 환자들에게는 영양 보충이 필수이다. 영양 보충이 잘 되면 약 부작용도 줄어든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헌신적인 활동은 조금씩 효과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중앙아시아의 전체 결핵 발생률을 낮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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