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폭발적이었고, 쇠락은 순식간이었다. 서울 종로에서 전남 장흥까지, 전국 곳곳에서 앞다퉈 생겨나던 한 외식업체는 이제 몰락을 앞두고 있다. ‘대만(타이완) 카스테라’는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 산업 사상 가장 단기간에 흥했다 쇠한 상품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발단은 미디어의 비판이었다. 3월12일 채널A 〈먹거리 엑스파일〉은 국내에서 성업 중인 대만 카스테라 업체를 비판했다. 달걀·밀가루·우유·설탕 외에 어떤 것도 넣지 않는다고 선전한 것과 달리 식용유와 일부 첨가제를 사용한다는 것이 방송의 골자였다.

즉각 반박이 잇따랐다. 식품학자, 맛 칼럼니스트 등이 〈먹거리 엑스파일〉의 ‘공포팔이’를 문제 삼았다. 카스테라의 촉촉함과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식용유 사용이 일반적인데, 이를 잘못된 일처럼 보도했다는 항변이었다.

ⓒ윤성희경기도 부천에서 ‘대만 카스테라’를 판매해온 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채널A 〈먹거리 엑스파일〉 방송 이후 폐업에 접어들었다.

미디어는 춤을 췄다. 〈먹거리 엑스파일〉 방송 직후 대만 카스테라의 식용유 사용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다 전문가의 반론이 나오자 이번에는 시청률에 급급한 〈먹거리 엑스파일〉의 선정성을 문제 삼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3월26일 〈먹거리 엑스파일〉은 타이완 현지 취재까지 강행하며 후속 방송을 내보냈지만, 식용유 논란 자체를 해명하지는 못했다. 타이완 현지에서 역시 식용유를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카스테라가 아닌 시폰케이크라 부른다는 점 정도가 새로운 이야기였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방송 이후 대만 카스테라 업체는 직격탄을 맞았다. 하루아침에 매출이 10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었다는 가맹점주의 절규가 터져 나왔고, 급기야 문을 닫는 업체까지 생겨났다. 한 개그맨은 〈먹거리 엑스파일〉 방송 이튿날 서울 명지대 인근에 대만 카스테라점을 개업했다는 슬픈 사연을 털어놓기도 했다.

〈먹거리 엑스파일〉로 인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MSG(L-글루타민산나트륨) 사용 여부를 ‘착한 식당’ 선정의 중요한 척도로 삼거나, 일부 지엽적인 문제를 물고 늘어진다는 비판이 있었다. 2014년 5월 방영된 ‘벌집 아이스크림’ 편의 경우 대만 카스테라 사태의 전초전 격이었다. 당시 방송은 ‘벌집 아이스크림’에 올려 먹는 일부 벌집의 원료가 양초를 만드는 파라핀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업체 종사자들은 일부 업체의 행위라며 반박했지만, 사실 관계와 상관없이 벌집 아이스크림 업체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먹거리 엑스파일〉은 종합편성채널 채널A 개국 직후인 2012년 초부터 방영을 시작했다. 이후 채널A의 대표 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착한 식당’을 통해 양심적인 외식업자를 조명하는 등 일부 긍정적 구실이 있었음에도 어느덧 음식업계의 공적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대만 카스테라 논란을 취재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만 카스테라가 몰락한 직접적 이유가 〈먹거리 엑스파일〉 탓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프랜차이즈 창업 전문가인 장정용 한국창업경제연구소장은 “이 바닥을 아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대만 카스테라가 오래 못 갈 아이템이라고 봤다”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연합뉴스1월6일 열린 제43회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서 예비 창업자들이 업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대만 카스테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 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진입 장벽이 너무 낮았다. 달걀·밀가루·우유 정도 레시피에 오븐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단일 상품이다. 누구라도 일주일 정도만 배우면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다. 둘째, 순식간에 너무 많은 유사 프랜차이즈가 난립했다. 신규 브랜드가 잘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소성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대만 카스테라는 제 살 깎아먹기로 과당경쟁에 돌입했다. 셋째, 한창 붐이 일 때쯤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로 달걀 값이 폭등해 마진율이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창업 1년 안에 내리막길을 걸을 게 분명했던 차에 방송이 ‘확인사살’을 했다는 것이다. 장 소장은 “프랜차이즈 본사 역시 이게 1년짜리 아이템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역시 같은 맥락의 지적을 했다. 그는 “〈먹거리 엑스파일〉이 일부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본사에는 좋은 핑계가 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몇몇 프랜차이즈 본사가 반짝 특수를 노린 ‘단기 아이템’으로 대만 카스테라를 들고 나왔는데, 인기가 시들해질 때쯤 〈먹거리 엑스파일〉이 뺨을 때려줬다는 것이다.

창업 초기 특수 누리고 권리금 받고 빠지기도

실제로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업체는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업체는 3월 말 현재 전국에 17개나 된다. 단수이대왕카스테라, 스린대왕카스테라, 대만대왕카스테라단수이, 대만언니대왕카스테라, 대만삼촌대왕카스테라, 대만아재대왕카스테라 등 비슷비슷한 상호가 차고 넘친다. 마니아가 아니고서는 브랜드 구별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특허청 상표출원 정보를 조회해보면 3월 말 현재 대만 카스테라 상표 출원 업체가 30여 개에 이른다.

이 많은 프랜차이즈 업체 대표들은 이 상품이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걸 모르고 사업을 시작한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만 카스테라가 언제 어떻게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대만 카스테라 열풍은 타이완 여행 붐과 함께 왔다. tvN 〈꽃보다 할배〉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타이완의 색다른 볼거리와 먹거리가 조명되면서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 카스테라의 본고장인 단수이 지역은 한국에서 인기를 끈 타이완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후 여행 블로그 등을 통해 대만 카스테라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타이완 현지인에겐 대만 카스테라가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는 점이다. 중화권을 오가며 현지 문화와 상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허은선씨(‘캐리어를 끄는 소녀’ 대표)는 “한국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아이템이었다. 타이완 친구들 가운데는 대만 카스테라를 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이들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아시아권 여행 가이드북 작가인 전명윤씨(필명 환타) 역시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황남빵 정도의 위상이라고 보면 된다. 가끔 특별할 때나 접하는 아이템인데, 어느 날 남의 나라에서 크게 터진 셈이다”라고 말했다.


대만 카스테라가 어떻게 한국에 들어오게 됐는지 업계에서도 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없다. 저마다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5월 SBS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카스테라 장인이 ‘원조’라는 이야기도 있고, 몇 해 전 타이완 공차(Gong Cha)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온 젊은 사업가가 대만 카스테라를 함께 가져온 것이 시초라는 이야기도 있다.

확실한 것은 대만 카스테라의 ‘폭발’ 시점이 지난해 하반기라는 점이다. 실제로 대만 카스테라 업체 17곳 가운데 13곳이 2016년 하반기 이후 사업자 등록을 냈다. 이들 프랜차이즈 본사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맹점 모집에 나서면서 전국에 카스테라 매장 400여 곳이 문을 열었다. 서울 대학로 등 번화한 상권에는 상호만 다른 대만 카스테라 가게 4~5곳이 문을 열었다.

이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취재 결과 3년 전 타이완 여행에 나섰다가 카스테라에 꽂힌 부부, 지역 대도시에서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를 열었던 사업가, 백화점에 지역 특산품을 납품하던 유통업자 등이 대만 카스테라 프랜차이즈를 창업한 인물들이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생과일주스 업체가 뛰어들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에는 바이럴 마케팅을 주업으로 하는 광고기획 업체 사업자도 있었다. 바이럴 마케팅은 블로거 등을 동원해 인터넷에 소문을 내는 마케팅 기법이다. 주로 ‘인터넷 맛집 소개’ 등에 이용된다.

문제는 처음부터 반짝 특수만을 노리고 사업에 뛰어든 업체가 있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업계를 잘 아는 관계자는 “일부 본사의 경우 이미 치즈케이크 같은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려 한다”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카스테라 프랜차이즈 론칭 초기부터 이미 업종 변경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야 ‘사업 다변화’겠지만, 가맹점주 처지에서 보면 ‘먹튀’나 다름없다. 물론 프랜차이즈로 한탕 사업을 노리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 이후 자기 업체의 레시피를 공개하며 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프랜차이즈 대표도 있다.

일부 가맹점주는 이런 흐름을 꿰고 움직이기도 한다. 잘나갈 것 같은 아이템을 눈여겨보았다가 창업 초기에 반짝 특수를 누린 뒤 남에게 권리금을 받고 되파는 것이다. 사정 모르고 막차를 탄 이들만 피해자가 되는 구조다. 프랜차이즈 전문가들은 사전에 꼼꼼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보통 예비 창업자는 사업 전망을 밝게 포장하는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의 마케팅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요즘처럼 단기 아이템이 유행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사IN 윤무영서울 강남구 논현동에는 백종원씨가 대표자로 되어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이 밀집한 ‘백종원 거리’가 있다.

이런 구조에서 프랜차이즈 본사라고 해서 다들 배만 불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영업 홍수 속에서 프랜차이즈 본사도 과당경쟁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통계가 말해준다.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12년 1810개였던 외식업 프랜차이즈 본사의 수는 2016년 3219개로 크게 늘었다(위쪽 표 참조). 4년 동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프랜차이즈 본사 가운데 외식업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2년 67.5%에서 2016년 75.4%로 늘었다. 외식업 브랜드 수 역시 2012년 2246개에서 2016년 4017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가 난립하면서 각종 브랜드도 늘어난 것이다. 그 결과 한 달에 가맹점 하나 늘리기 어려운 프랜차이즈 업체도 수두룩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 규제하라는 주장도

1~2년 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순댓국집의 경우 프랜차이즈 업체가 23곳이나 된다. 이 밖에 부대찌개가 20여 개, 스몰비어는 40여 개에 이른다. 프랜차이즈 업체 한 곳이 여러 브랜드를 소유한 곳도 적지 않다. 성공한 외식 경영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백종원씨의 경우 자신이 대표자로 되어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만 19개다. 국밥집부터 맥줏집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그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밀집한 ‘백종원 거리’가 있을 정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외식 프랜차이즈 사업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개 프랜차이즈 본사가 너무 많은 브랜드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행을 좇아 프랜차이즈가 난립하는 구조에서 본사가 사업 지속성을 책임질 수 있게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는 “사업 다변화는 소비 주기가 짧아진 시대의 생존전략이다. 일부 반짝 특수만을 노리는 업체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대다수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프랜차이즈 정책은 진흥 일변도다. 프랜차이즈 산업을 자영업 문제의 활로로 보고 있다. 프랜차이즈 정책을 관장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난립 문제는 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정부가 개입하는 건 시장 논리에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대만 카스테라는 퇴로로 접어들었다. 조개구이, 찜닭,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처럼 과거 한때 반짝했던 먹거리의 전철을 밟고 있다. 어느 순간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추억의 음식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프랜차이즈 상품들이 요란한 성공과 쇠락을 거듭할까. 확실한 것은 흥망성쇠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리라는 점이다. 매번 그 후폭풍은 길고 잔인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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