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변 퍼포먼스 같았다. 무력시위로 보였다. 새로 산 텔레비전으로 뉴스를 봤다면, 자신의 헤어스타일에 대한 곱지 않은 여론을 알 텐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청와대 퇴거부터 구속까지 ‘그놈의 올림머리’를 계속했다. 헤어스타일과 화장을 담당하는 정송주·정매주 원장 자매가 매일 삼성동 자택을 드나들었다.

헤어스타일은 자유다. 다만 유가족뿐 아니라 이제 시민들도 그 올림머리에서 4·16 참사를 떠올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재에 낸 의견서를 그대로 인용하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014년 4월16일 오후 2시50분 구조 보고가 잘못되었다고 최종 확인했다. 박 전 대통령도 오후 3시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지시했다. 이때라도 곧바로 출발했어야 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오후 3시35분에서 3시55분까지 20분간 정송주 자매에게 머리단장을 맡겼다(이 의견서에 담긴 주장도 진실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지도자가 보인 태평함이 지금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유가족뿐 아니라 전 국민이 배가 수장되는 장면을 생중계로 봤다. 발을 동동 구르고,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 시각 박 전 대통령은 그놈의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올림머리는 무능 정부의 상징이 되었다. 그 헤어스타일을 피할 법한데 박 전 대통령은 검찰에 나올 때도, 법원에 출석할 때도 보란 듯이 고수했다.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 올림머리는 사실 언론이 키워주고 만들어줬다. 야당 대표 시절 헤어스타일을 조금이라도 바꾸면 언론은 ‘전투 스타일’ ‘육영수 스타일’이니 의미 부여를 해주었다. 언론계 은어를 빌리면 ‘빨아주고’ ‘쪼찡’해준 것이다. 직접 10분 만에 올림머리를 손질한다는 측근들의 말도 사실로 포장해 보도했다. 당시 보수 언론이 ‘슈퍼스타 박근혜’를 띄우자, 옛 직장 선배였던 서명숙 〈시사저널〉 편집국장(현 제주올레 이사장)은 2004년 이런 칼럼을 쓰기도 했다. “과거를 연상케 하는 머리 스타일로 표를 얻으면서 과거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루 두세 시간을 머리에 투자하면서, 집안 살림하랴 새끼들 키우랴 한 철에 한 번 미장원 가기도 버거운 서민 여성들의 삶을 어찌 짐작하랴.” 13년 전 이미 올림머리 운명을 정확히 내다본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3월31일 새벽 4시50분부터 서울구치소에서 입감 절차를 밟았다. 몸에서 쇠붙이를 모두 뗐다. 수인 번호 503번이 올림머리를 고정시킨 머리핀을 뺀 날, 세월호가 1080일 만에 귀항했다. 금요일에 돌아온 세월호를 보며,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었다. “우리 애들한테 사과도 안 했어.”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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