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을 말했더니 누군가 묻는다. “호메로스가 뭐예요?” 사람 이름인지 아니면 책 제목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리스 신화와 트로이 목마는 들어봤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탄생시킨 작품과 저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또 궁금하지도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리라. 책깨나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서양 정신의 효시이자 가장 오래 읽힌 작품으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치켜세우지만, 그 이유를 대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이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러한 게으름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애덤 니컬슨 지음정혜윤 옮김세종서적 펴냄
이 책의 저자에게 호메로스가 운명처럼 다가온 건 중년이 되어 떠난 한 여행이었다. 거대한 폭풍과 사투를 벌이며 400㎞의 험난한 항해를 마친 후 펼쳐 든 〈오디세이아〉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때 그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이야기라고. 오디세우스는 지중해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욕망을 항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과 인간의 조건에 대해, 그 어떤 책에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진실이 이 서사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깨달음이 그를 후려쳤다. 이 서사시는 그 순간 경전이 되고 말았고, 그는 그 의미를 추적하기 위한 긴 방랑을 시작한다.

이 고단한 여정을 통해 저자는 호메로스의 작품이 죽음을 관통해서 항해하는 인간의 냉혹한 운명을 웅변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그 안에서는 무자비함·변덕·무심함·이기심·기만이 넘실대고 폭력과 공포가 인간의 의지를 무자비하게 갉아먹는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인간을 기다리는 건 결국 죽음이지만 고통을 겪을지언정 결코 무릎을 꿇지 않는 단호한 의지에서 우리는 희망을 읽는다. 어쩌면 고전은 대다수에게는 쓸모가 사라진, 과거의 유산에 대한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에게 고전은 여전히 많은 것을 속삭인다. 고전, 즉 죽은 자와의 대화는 그래서 소중한 것이 아닐까?

기자명 강훈 (세종서적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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