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소문난 뒷골목이 있다. 어둑하고 좁은 길, 올해로 꼭 10년 된 전설의 맛집 같은 곳. 좁은 가게 안에는 고작 몇 명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나마도 오늘 하루 준비된 재료를 소진하면 지체 없이 문을 닫아버린단다. 그럼에도 그 맛을 꼭 보고 싶은 손님들은 줄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궁금증만 더하는 소문난 집. 2007년 3월17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블랙’에서 첫 공연을 올리고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쓰릴미〉 얘기다.

〈쓰릴미〉는 미국 원작의 뮤지컬로, 1924년 미국 시카고에서 천재적인 지능을 지닌 두 청년이 지적 유희를 위해 어린아이를 살해한 실제 사건이 모티브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변론으로 유명한 그 사건. 원작이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상업적인 브로드웨이 연극에 반발한 실험적인 작품을 의미하며 공간적으로는 뉴욕 브로드웨이 외곽의 소극장 거리 그 자체)에서 초연을 올렸을 때, 신선한 소재와 뛰어난 작품성 면에서 언론은 호평했지만 흥행은 그럭저럭했다.

ⓒ이우일 그림
한국 초연 당시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충성도 높은 반복 관람객을 의미하는 ‘회전문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최고의 뮤지컬 스타이자 대극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 류정한이 초연에 캐스팅되어 작품성과 흥행성을 견인한 덕이 컸다. 그해 류정한은 제13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흥미롭게도 “류정한을 보러 갔다가 김무열도 얻어왔다”는 관객들의 반응과 함께 신인급 배우 김무열이 뮤지컬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다 보니 ‘스타의 산실’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지창욱·강하늘 같은 유명 배우뿐 아니라 최근 JTBC 〈팬텀싱어〉로 이름을 알린 백형훈·윤소호, 대학로 연극과 뮤지컬에서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강필석·김재범·전성우·이재균·문성일 등이 〈쓰릴미〉를 거쳐갔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는 동안 〈쓰릴미〉는 기존 배우들과 함께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며 매년 무대에 올라오는 스테디셀러 공연이 되었다. 특히나 이번 10주년 공연에는 초연 배우인 김무열·최재웅이 오랜만에 포함됐는데, 가장 정석의 연기를 보여주는 이 두 사람의 공연 회차는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회 매진됐다.

매끈하게 마감되지 않은 빈틈에서 공연의 결이 달라진다

어두운 무대 위 남자 둘과 피아노 한 대. 시선을 사로잡는 화려한 볼거리도, 가슴을 울려대는 웅장한 음악도 없다.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사이코패스 드라마, 주인공은 동성애자인 두 청년. 이들이 어린아이를 죽인 엽기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한국에서 10년 넘도록 팔리는 이유가 뭘까. 배우 김무열은 “원작이 지닌 약간의 허술함”이라 답했다. 빽빽하게 차 있거나 매끈하게 마감되지 않은 빈틈은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공연의 결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배우마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노선이 실제로 조금씩 다르기도 하거니와, 같은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이 “일부러 그랬을까, 실수였을까” “사랑했을까, 사랑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어떻게 사랑했을까”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한다.

이는 매혹적인 빈틈을 만들어준 연출자와 배우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연 당시 김달중 연출가는 극중 인물명 ‘네이슨’ ‘리처드’를 ‘나’와 ‘그’로 바꾸고, 미국 지명을 폐기해 한국에서도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로 바꿨다. 배우들 역시 번역 작업에 직접 참여해 작품을 탄탄히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원작자인 스티븐 돌기노프는 한국 공연에 호평을 했으며, 일본은 오리지널판이 아닌 한국판 라이선스를 수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관객에게 놀라운 체험을 선사한다. 34년 전의 일화를 담담히 꺼내기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억 속의 ‘그’가 눈물나게 반가워지고 만다. “보고 있음에도 그립다”라는 문장이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 방화와 살인에 대한 열망이라는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감정에 흥분되고, 범죄자인 그들의 불안에 심장이 벌떡인다. 극의 클라이맥스에서는 단 몇 마디 말과 몸짓에 두 사람의 역학관계며 세계관이 전복된다.

〈쓰릴미〉는 이해되지 않는 감정에 대한 육체적인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극이다. 90분의 공연이 끝나면 주인공들이 느낀 온갖 감정을 대리 체험한 듯, 심장이 두근거리고 목과 어깨가 딱딱해진다. 온통 어두침침한, 그 안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들이 다 같고도 다른 소리를 하는 골목 안 소문난 가게. 진짜가 여기 있다. 

기자명 중림로 새우젓 (팀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