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거의 모든 문명과 사회에서 사랑받은 동물이야. 심지어 콜럼버스가 발을 딛기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이나, 영국인들이 발을 디디기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도 개는 유일한 가축이다시피 했지. 그러다 보니 인류 역사에는 수많은 개들이 등장한다. 네가 어려서 읽은 세계 명작들만 돌이켜보렴. 〈플란더스의 개〉 파트라슈, 명탐정 홈스와 씨름했던 〈배스커빌 가의 개〉, 늑대개가 등장하는 잭 런던의 〈흰 엄니〉, 〈명견 래시〉 등 개가 주연한 작품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아마 문학작품에 최초로 등장하는 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개 아르고스가 아닐까.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사정상 늙은 거지로 변장하고 있었는데 그를 알아본 건 늙은 개 아르고스뿐이었어. 오디세우스가 전쟁터로 떠난 이후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아르고스는 벼룩투성이 몸으로 소똥 위를 뒹굴면서도 주인이 오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주인과 재회한 날 조용히 숨을 거뒀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옛 주인을 홀로 알아본 개 아르고스의 이야기처럼 인간과 맺어진 개 이야기는 수없이 많고, 세계사를 수놓은 위인·영웅들의 친구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개의 사연도 부지기수야.

ⓒWikipedia히틀러가 그의 애견 블론디의 재롱을 지켜보고 있다. 블론디는 독일산 셰퍼드다.
몰티즈라는 종이 있어. 지중해에 있는 몰타 섬을 원산지로 하는 작고 귀여운 개인데 카르타고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이 배에 태우고 다니며 각지로 퍼뜨렸다고 해.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인들도 몰티즈를 좋아했고 이후 중세를 거쳐 근세에도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 몰티즈의 열렬한 애호가 가운데 한 명이 16세기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였어. 그녀는 복잡한 사정으로 고국 스코틀랜드를 떠나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보호를 받았는데 가톨릭교도로서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반란을 기도했다는 혐의를 쓰고 단두대에서 처형돼. 그녀는 가톨릭의 상징인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무지막지한 도끼를 든 사형 집행인에게 “진심으로 여러분을 용서하노라. 이로써 내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노라” 하고 유언을 남긴 후 기품 있게 죽음을 맞이하지. 그녀의 목이 잘려 나간 뒤 시신을 수습하려던 이들은 기겁을 했어. 그녀의 치마폭 사이에서 몰티즈 한 마리가 기어 나와 사람들을 향해 사납게 짖었던 거야. 메리 여왕의 아들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돌아올 잉글랜드 왕관을 탐내 어머니의 죽음을 묵인했다. 메리 여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반역자로 몰기도 했어. 하지만 몰티즈만은 주인의 옷 속에 숨어 최후를 함께했고 죽은 뒤에도 그녀를 지키고자 사람들에게 대들었던 거란다.  

2008년 6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디언 래크먼 국제담당 논설 주간은 그의 블로그에서 색다른 주장을 했어. “독재자는 개를, 민주적 지도자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즉 안하무인인 독재자는 주인에게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개를 좋아했고, 링컨이나 처칠 등 ‘민주적’ 지도자는 주인에게 복종하기보다는 ‘자유로운 기질’을 지닌 고양이를 더 좋아했다는 논리였다. 세계사를 바꾼 무자비한 정복 군주 칭기즈칸이 평생 개를 두려워했고, 〈삼총사〉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프랑스의 막강한 권력자 리슐리외 추기경이 유명한 고양이 애호가인 걸 기억한다면 꼭 올바른 명제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유별난 애견가 가운데 독재자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야.

‘개조차 사랑할 여유가 없는 분이었구나’

그중 한 명으로 청나라 멸망의 주역이라 할 서태후를 들 수 있겠다. 단순히 기르는 개를 아낀 정도가 아니라 황실견 사육장을 만들고 황실의 개들, 즉 오늘날 우리가 시추, 페키니즈 등으로 부르는 개들의 혈통을 연구하고 보존할 만큼 지대한 애정을 쏟았지. 그 사정을 엿볼 만한 진풍경 하나를 소개해볼게. “어느 날 아침 조회를 기다리던 대신들은 뛰고 자빠지고 구르며 태후(太后)의 처소로 달려 들어가는 태감(太監, 내시)의 황급한 모습을 보았다. 천재지변이나 반란이 발생한 줄 알았다. (중략) 태감의 보고는 태후가 귀여워하는 흑옥(黑玉)이 새끼를 네 마리 낳았다는 것이었다(〈중앙일보〉 2007년 10월13일, ‘개와 옥을 사랑한 서태후’ 김명호).”  

ⓒ청와대 제공2015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태어난 진돗개 새끼 5마리와 포즈를 취했다.
독재자는 아니지만 독재자의 처조카로 한없는 귀염을 받으며 대륙의 하늘이 낮다 하고 설쳤던 사람이 있어. 공산화 이전 중국을 다스리던 장제스 총통의 처조카 쿵링쥔이라는 여자였지. 우연히 장제스의 생명을 구해준 이래 장제스는 그녀가 누구를 두들겨 패든 무슨 욕심을 부리든 눈감아줬다고 해.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그 즉시 영국령인 홍콩에도 칼을 겨눴어. 장제스는 홍콩에 피란 가 있던 중요 인물들을 내륙의 임시 수도 충칭(중경)으로 데려오기 위해 비행기를 보냈지. 그런데 그 비행기가 충칭에 내렸을 때 중국인들의 눈은 커지고 입은 벌어졌어. “(쿵링쥔) 집안의 보모들이 물건 보따리를 들고 내리자 깜짝 놀랐다. 맨 마지막에 쿵링쥔이 애견 17마리와 함께 나타나자 다들 제 눈을 의심했다. 기다리던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한길사 펴냄).” 이 천둥벌거숭이 조카는 이모부가 정성스럽게 작성한 중요 인물들 대신 자신이 아끼는 개들을 잔뜩 태우고 온 거야.

역사상 일부 권력자들, 독재자들은 언제 자신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사람보다, 도무지 배신할 줄 모르는 개를 더 아끼는 경우가 많았어.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소련군이 베를린을 향해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던 즈음 이렇게 외쳤지. “온 세상이 나를 속이고 배신하고 떠나려 한다. 내 친위대마저 나를 실망시켰다.” 세상을 폐허로 만들고 수천만 목숨을 앗아간 자신의 책임은 온데간데없이 오로지 남들이 자신을 배신했고 그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망발이었던 셈이야. 그는 독일산 셰퍼드를 좋아했어. 가난했던 젊은 시절 형편이 안 돼 키우던 셰퍼드를 처분했으나 그 개가 어찌어찌 자신에게 돌아왔던 감격을 잊지 못해서였다지. 패망한 히틀러는 내내 애지중지하던 블론디라는 이름의 셰퍼드에게 손수 독약을 먹이고 자신도 애인과 함께 목숨을 끊는다. 사람 목숨 따위에는 개의치 않은 악마였지만 마지막 가는 길만은 교감을 나누던 개와 함께 간 거야.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황실 개한테는 산해진미를 먹였다는 서태후든,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몰티즈를 품고 있었던 메리 여왕이든, 중국을 통치하는 이모부가 정성 들여 작성한 중요 인물 명단은 코 풀어버리고 자신의 애견 열일곱 마리를 당당히 데리고 온 쿵링쥔이든, 아끼던 개와 함께 목숨을 끊은 아돌프 히틀러든 공통점이 있다면, 사람에 대한 도리를 내팽개치거나 뭇 사람에게 버림받았을망정 자신의 개들만은 배신하지도, 배신당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일 거야. 그런데 얼마 전 세계사적인 예외가 발생했다. 청와대를 떠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때 선물로 받아서 귀하게 기른다고 다짐했던 진돗개 가족을 나 몰라라 하고 떠나버린 거야. 원래 개를 싫어했는데 이미지 관리를 위해 개를 끌어안고 미소를 지었던 거라면 참 서글픈 일이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강해 군견으로 쓰기도 어렵다는 (주인을 쉽게 바꾸지 않으므로) 진돗개들에게는 더더욱 안 된 일이지만, 저분은 개조차 사랑할 여유가 없는 분이었구나, 그럴 감정조차 남아나지 못했던 분이었구나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그리고 메리 여왕의 몰티즈와 히틀러의 블론디, 서태후의 시추와 페키니즈가 저세상에서 짖어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이맛살을 찌푸리게 되는구나. “멍멍! 뭐 이런 개 같은 일이!”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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