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기자가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 “아 송호근 교수 무지 세게 말했다. ㅠㅠ.” 편집국에서 ‘아재 유머’의 대가로 통하는 그가 눈물 이모티콘까지 보낸 건 이례적이었다. 이 기자가 노동시장 개편과 관련한 기획안을 내며, 노동계에 던지는 쓴소리가 포함될 텐데 괜찮겠느냐고 우려했다. 나는 ‘대선 어젠다 점검’ 시리즈 기획으로 더 키워보자고 했다.


지난해부터 비정기적으로 ‘2017 대선 어젠다 점검’ 시리즈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해 9월 제468호 ‘누구나 받는 기본소득’이 첫 번째였다. 그다음 제492호 ‘영리한 재정정책’, 지난 495호에 ‘노동시장 개편’ 어젠다를 던졌다. 각 후보의 공약 점검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어젠다를 던져보자는 취지였다. ‘뻔한 기획’, ‘뻔한 결론’은 피하자는 공감대가 있었다. 기본소득도 도발적으로 먼저 제기했다. 다행히 그 뒤 기본소득 논쟁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펼쳐졌다. 재정정책 어젠다 점검도 마찬가지였다. 보수나 진보 쪽 모두 ‘국가부채를 경계하는’ 공리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노동시장 개편 어젠다도 ‘재벌 개혁만 되면 노동시장도 개선된다’는 뻔한 도식을 피하고 싶었다. 진보 진영 담론 안에서 금기시되다시피 한 대기업 노동조합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유다.

기사를 내면 2주 뒤에 반응이 온다. 2주 뒤에 기사가 온라인에 풀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기자 개인뿐 아니라 〈시사IN〉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까지 모두 눈여겨보았다. 고맙고 반가운 쓴소리다. 다만 우리가 던진 어젠다 자체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반론이 있다면 앞으로 지면에 소개하며 논쟁을 이어갈 작정이다.

8년 전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할 때였다. 부장검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검사가 먼저 기자에게 ‘콜’을 하는 건 이례적이다. 부장검사 방에 올라가니, 그는 “사표를 쓰겠다”고 했다. 그는 몇 달 전부터 한 사건 처리를 두고 수뇌부와 틀어져 있었다. “그래도 버텨보시지. 굳이 왜?” 속에 없는 질문을 했다. 그는 “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고 싶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자식을 거론하며 어떤 다짐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해 그의 아들은 법대에 진학한 대학 신입생이었다. 선배 법조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했다. 정치 검찰의 행태가 드러나곤 할 때면 검찰을 떠나 변호사가 된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때마다 그는 “검찰 재직 때 일은 거론하고 싶지 않다”라며 정중히 취재를 사양했다.

그를 이번 지면에서 다시 만났다. 검찰 개혁과 관련한 대선 어젠다 점검의 일환으로 김은지 기자가 인터뷰한 임수빈 변호사가 바로 그다. 영업 때문에, ‘친정(검찰)’에 쓴소리를 내는 검찰 출신 변호사는 많지 않다. 잘못된 검찰 수사 관행에 대해 논문까지 썼다니 임 변호사의 문제 제기가 반갑다. 그의 쓴소리 또한 공론화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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